처음 식물 - 아피스토 식물 에세이
아피스토(신주현)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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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에세이 <처음 식물>은 초보 식물 집사에게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지만, 고수의 품격으로 무궁무진한 식물의 세계를 안겨주었다.



만년 초보인 이유

화분은 갑자기 내 손에 주어지곤 한다. 친구가 선물한 화분,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화분, 식물원에 놀러 갔다가 입장권과 바꿔서 들고 온 화분, 카페에 들어갔다가 사 온 화분, 분갈이할 화분 사다 산 화분, 흙 사러 갔다가 사 온 화분. 그렇게 화분 열몇 개를 키우고 있고 죽인 식물도 그 정도인 수준에서 찾아보는 내용은 내 화분 안 죽이기가 목표였다. 그마저도 제때 찾아보지 않으면 화분은 한 달 안에 색이 변하고 어느새 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식물이 죽으면 또 전혀 다른 식물을 만나곤 하니 나는 당연히 만년 초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초보인 시절이 있어도, 모두 초보로 남지는 않는다. 아피스토 식물 에세이를 읽다 보니, 무한하게 확장하는 생명력 강한 식물처럼, 온 분야에 깊게 뿌리내린 식물 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읽는 시간이 무한대로

<처음 식물>의 저자 아피스토(신주현)님의 이야기는 열대식물에서 시작해서, 다양한 이유로 여러 식물 집사님과 만난 일화가 에세이에 포함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글을 읽다 보면 이야기 속 식물의 모습이 궁금해지고, 사진이 없어서 갈증이 나는데, 그런 글 끝에는 QR이 있었다. QR로 링크된 영상을 보면 식물들의 모습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러면 또 또 다른 정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음 챕터를 읽기까지는 의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처음에는 어반 정글에 꽂혀서 몇 시간씩 서칭을 하고, 덩굴 식물 매력에 빠졌다가 그다음엔 수초, 또 곧 테라리움. 예상치 못하게 테라리움은 정말이지 너무 예뻐서 정신이 혼미했다. 식물 집 사계의 인플루언서, 미처 검색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사이사이 유용한 정보

여러 분야와 관련된 글 말고도, 중간중간 식물 집사를 위한 유용한 정보도 계속 있었다. 검색을 하다 보면 만나고 싶은 화분, 장만하고 싶은 가드닝 용품도 많았지만 대부분은 참고, 식물 등에 대한 정보를 보다가 예전부터 사려고 했던 식물 등은 하나 구매했다. <처음 식물>의 또 다른 장점은 섣불리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데에도 있다. 키우고 있는 식물이 다양한 만큼, 식물마다 상태도 환경도 각양각색인 만큼 유용한 정보는 끝이 없지만, 사실 중요한 건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 식물>은 식물을 좋아하는 것을 느슨한 연결고리로 삼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읽고 나니 각 분야에 처음의 사랑과 열정을 나눠 받은 느낌이다.



그리고 새로운 화분, 처음 시작하는 수초나 테라리움이 늘 초보가 되게 하더라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도전하는 마음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작은 정원, 곁에 둘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게라도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의 경이와 여유를 바라본다.

늘 처음처럼 식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긴 <처음 식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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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열린책들 편집부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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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세계문학 첫 문장 111> - 진정한 선물도서, 또 한 번의 리뷰

뜯기 아깝지만 조금씩 뜯는 중

한 번 뜯으면 멈출 수 없다 - ?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제본으로 펼침도 좋고, 넘겨보기에도 매력적인 책이다.

책을 훑어보던 동거인은 첫 문장으로 퀴즈대회를 하자는데 - 감히 나는 생각지도 못한 활용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용도로 쓰기에는 너무 아깝다.

첫 문장은 그런 책이 아니야!라고 하고 혼자서 어쨌든 결국은 뜯지 않을까, 뜯는다면 언제, 뜯은 엽서의 보관은 어떻게, 여러 생각을 해 보았다.

막상 뜯어야겠다고 생각하니, 더 신나는 엽서책이다. 여러모로 선물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선물은 모름지기 팍팍 뜯어 써야 하는 법. 팍팍 찢으며 뜯을 일은 아니니, 어쨌든 한 장 뜯는데, 예상보다도 부드럽게, 구겨짐 없이 한 장의 엽서가 되는 느낌도 너무 좋았다.

처음 뜯은 엽서는 전자책으로 읽고 있는 <변신>




 

전자책보다 엽서 한 장에 더 마음이 가는 걸 보면, 나는 아직 종이책이 맞는 걸까?

하지만 전자책으로 세계문학을 읽으면 또 다르게 좋은 점도 많다.

가장 유용한 건 색인이 가능하다는 점 - 무슨 표현을 어디에서 봤더라 생각하며 검색 기능으로 전자책을 검색해서 찾을 때, 기기를 사용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듣기 기능! 읽기 속도와 음정을 나에게 맞게 조정해두고 운전할 때에나 자기 전에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 없을 때에도 책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게 전자책이 아닐까 한다.



갑자기 전자책을 리뷰하는 것도 같지만 -

전자책으로 읽으면서 엽서 책을 짝꿍 삼을 수 있으니, 전자책 읽기에 활력이 생겨서 너무 좋다.




막상 뜯기 시작하니 다 읽고 리뷰 쓴 책을 모두 골라서 뜯어보고 싶은 충동이 살짝 일었지만, 막상 읽고 있는 책을 뜯으니, 보관이 애매하다. 일단, 다시 엽서책 사이에 살포시 끼워두었는데,

아무래도 다 읽은 책을 뜯어서 다이어리에 보관할지, 세계문학 용 수첩을 만들어 보관할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듯. 그리고 나에겐 엽서책을 마스킹 테이프로 붙이고, 첫 문장이 있는 뒤 페이지에 포스트잇으로 짧은 리뷰를 붙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권 읽기를 하면서 좀 더 여유롭게 활용해 볼 생각이다. (결국은 보류는 아니고 - 그래도 이 정도면 방법을 정한 듯!) 전권 읽기 현황은 286권 중, 1권부터 순서대로 쓴 리뷰는 7권까지 완료, 순서대로 읽기는 10권을 읽기 중, 신간과 그전 사이사이 읽은 책들이 20권은 넘으니.... 물에 컵이 반이 있을 경우 반이나 있다고 좋아하는 마음가짐을 증폭시켜, 전권 읽기는 순항 중이다!

우선, 다음 번 전권 읽기 리뷰 때는 엽서책의 엽서를 꼭 활용하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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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바깥 일기 + 밖의 삶 - 전2권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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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이야기로 사회의 단면을 폭넓게 보여주는 글을 쓰는 아니 에르노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근 15년의 기록이기에, 글쓰기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수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차이점은 <바깥 일기>에서는 상황을 묘사하고 아주 조금씩의 생각을 포함한다고 하면, <밖의 삶>에서는 감정을 드러낸다는 정도였다.

예를 들어, <바깥 일기>에서는 괄호 안에 아래와 같이 썼다면,

(내가 현실에서 늘

문학의 징표들을 찾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p.48

<밖의 삶>에서는 어떤 날의 기록 끝에 격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나는 증오심이 들끓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쓴다).

p.78

하지만 시종일관 건조하고 간명한 문체는 읽을수록 담백했고, 아니 에르노의 색깔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내면에서 자신을 찾는 방법이 아닌 바깥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도 궁금했는데 -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을 읽고 나니, 바깥을 보는 시선을 연마하고, 밖의 삶으로 자신의 삶을 비추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기록을 반복하며 자신의 문체와 표현법을 갈고닦고, 자기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웠다.

앞으로도 일상을 기록하면서 종종 다시 펼쳐서 천천히 음미하며 읽을 생각이다.

똑같은 문체를 배우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나에게 딱 맞는 내면과 바깥, 안과 밖의 거리감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 일기장이 몇 권 있지만, 다시 읽어보면 낯 뜨거울 뿐인데, 조금은 다른 기록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기록을 계속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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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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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에 이어 익숙하게, 빠르게 읽은 <밖의 삶>

다 읽고 역자 해설을 보면서 아차 했다. 느리게 읽어야 하는 책이었는데. 앞으로 돌아가 조금씩 다시 읽으면서 쓰는 서평-

이어지는 7년의 기록

<바깥 일기>와는 달리 기록한 날짜가 있고, RER 고속전철 타고 다니는 일상 풍경을 습관적으로 기록한 것 같다. 전철 안의 대화, 사람들의 모습들, 여기저기에서 구걸하고 있는 노숙인이 나온다. 아니 에르노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의 묘사와 생각이 건조하고도 날카롭게 겹쳐진다.

정치적인 내용, 전쟁, 테러,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런 시사적인 내용을 쓸 때는 일상의 내용에서보다 좀 더 감정이 드러난다. 이런 내용에서조차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면, 단순한 사건 기록, 또는 가식에 불과했을 것 같다. 건조한 문체에 언뜻 언뜻 비치는 감정이 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포착 - 기록 - 느낌

읽으면서 기록 방법을 뜯어보기도 했다. 먼저 포착한 상황을 간단히 기술, 그리고 '나라면'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상황이 가진 사회적 함의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그리고 약간의 상상, 또는 실제적인 의미로 여겨지는 것들을 쓴다.

<바깥 일기>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또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묘사해 보지만, 금방 또 좌절한다. 읽기는 쉬워도 잘 안 써지는구나. 아니 에르노는 한 번에 쓰고 딱 덮은 기록들일까? 문장의 수정 없이? 7년 정도 쓰면, 그리고 또 7년을 쓰면 좀 더 나을까? 하지만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습작이 아니고, <바깥 일기>를 처음 쓸 당시에도 아니 에르노는 이미 문학 교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내공으로 가득 찬 문장들이다.


문체와 정체성

아니 에르노의 문체는 작가의 정체성과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무엇을 어떻게 쓸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작가로서, 여러 가지 상황의 묘사를 보는 일이 더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언어로 다양한 일상을 쓰기, 여러 생각들을 포착하고 표현하기, 그 대상에 제한이 없고, 표현 방법엔 현란한 기교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 각자의 언어를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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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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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1985년부터 7년간의 기록을 모은 <바깥 일기>

사회적 자아를 찾는 예리한 시선이 만들어지는 과정 - 띠지의 문구인 '사회적 현실의 단면을 저며 내는 칼'을 볼 수 있었다.



내면이 아닌 바깥을 향하는 시선

나를 알고, 나를 찾고, 내면을 바라보는 방향성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과연 쓸만한 게 있는지 종종 회의적이다. <바깥 일기는> 아니 에르노의 글이 궁금해서 선택하기도 했지만,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유사한 책으로 제목을 보는 순간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두 책을 비교해서 보니 <외면 일기>는 외부에서 촉발된 상념을 적고 있다면, <바깥 일기>는 훨씬 풍경 스케치에 가까운 단백한 서술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결코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는데, 무엇을 무슨 단어로 쓰는 지가 이미 관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1996년에 쓴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 텍스트 안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나 자신을 투영했다. 텍스트에 새겨 넣을 말과 장면의 선택을 무의식에서 결정하는 강박과 기억에 의해.

p.10



7년의 기록

7년의 기록이라기에는 다소 불성실한 기록이다. 서너 장 분량의 해도 있고, 많은 분량의 해도 있다. 전철역의 낙서, 열차 안의 사람들, 슈퍼마켓, 문화 센터, 철물점, 미용실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그곳의 인물을 묘사하는 짤막한 글이 이어진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경험에 위계란 없다."(p.9)의 말을 떠올리며, "장소나 사물이 자아내는 느낌과 사유는 그것들의 문화적 가치와 무관하며, 대형 슈퍼마켓 역시 콘서트홀만큼 의미와 인간적 진실을 제공한다."(p.9)는 의미를 조금씩 깨달으며 읽어나갔다.

조금 산만하기도 한데,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배경이 신도시라는 데 있는 것 같다. 파리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세르지퐁투아즈는 역사와 흔적이 새겨지니 도시가 아닌, 몇 년 만에 무에서 솟아난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굳어진 풍습이나 문화보다는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아니 에르노가 담백한 풍경을 그려서 그런 점이 부각되는 것이겠지만, 만일 배경이 역사와 배경이 강한 도시였다면, 그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소모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주변을 기록하기

문득 나도 내 주변의 풍경을 <바깥 일기>처럼 그려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막상 글을 써보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히려 평소에 별생각 없이, 순간순간의 기분과 흘러가는 상념 속에서 살아왔던 걸 알 수 있었다. 신랄해지는 평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적다가 정작 스쳤던 진실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포착할 수 있는 진실의 단면을 <바깥 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관찰이 모여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정의하고 나의 자아와 뗄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에르노만의 시선을 이리저리 보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바깥 일기> 그 후 7년의 기록인 <밖의 삶>은 또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며 읽어 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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