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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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1985년부터 7년간의 기록을 모은 <바깥 일기>

사회적 자아를 찾는 예리한 시선이 만들어지는 과정 - 띠지의 문구인 '사회적 현실의 단면을 저며 내는 칼'을 볼 수 있었다.



내면이 아닌 바깥을 향하는 시선

나를 알고, 나를 찾고, 내면을 바라보는 방향성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그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과연 쓸만한 게 있는지 종종 회의적이다. <바깥 일기는> 아니 에르노의 글이 궁금해서 선택하기도 했지만,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읽게 되었다.

유사한 책으로 제목을 보는 순간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가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두 책을 비교해서 보니 <외면 일기>는 외부에서 촉발된 상념을 적고 있다면, <바깥 일기>는 훨씬 풍경 스케치에 가까운 단백한 서술이었다. 아니 에르노는 결코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는데, 무엇을 무슨 단어로 쓰는 지가 이미 관점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1996년에 쓴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결국, 그 텍스트 안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나 자신을 투영했다. 텍스트에 새겨 넣을 말과 장면의 선택을 무의식에서 결정하는 강박과 기억에 의해.

p.10



7년의 기록

7년의 기록이라기에는 다소 불성실한 기록이다. 서너 장 분량의 해도 있고, 많은 분량의 해도 있다. 전철역의 낙서, 열차 안의 사람들, 슈퍼마켓, 문화 센터, 철물점, 미용실의 풍경을 묘사하거나 그곳의 인물을 묘사하는 짤막한 글이 이어진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경험에 위계란 없다."(p.9)의 말을 떠올리며, "장소나 사물이 자아내는 느낌과 사유는 그것들의 문화적 가치와 무관하며, 대형 슈퍼마켓 역시 콘서트홀만큼 의미와 인간적 진실을 제공한다."(p.9)는 의미를 조금씩 깨달으며 읽어나갔다.

조금 산만하기도 한데,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배경이 신도시라는 데 있는 것 같다. 파리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세르지퐁투아즈는 역사와 흔적이 새겨지니 도시가 아닌, 몇 년 만에 무에서 솟아난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굳어진 풍습이나 문화보다는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아니 에르노가 담백한 풍경을 그려서 그런 점이 부각되는 것이겠지만, 만일 배경이 역사와 배경이 강한 도시였다면, 그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소모되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주변을 기록하기

문득 나도 내 주변의 풍경을 <바깥 일기>처럼 그려 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막상 글을 써보면 쉽지 않은 작업이다. 오히려 평소에 별생각 없이, 순간순간의 기분과 흘러가는 상념 속에서 살아왔던 걸 알 수 있었다. 신랄해지는 평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적다가 정작 스쳤던 진실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포착할 수 있는 진실의 단면을 <바깥 일기>를 읽으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모든 관찰이 모여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정의하고 나의 자아와 뗄 수 없는 사회적 자아를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니 에르노만의 시선을 이리저리 보는 재미도 있는 책이었다.



<바깥 일기> 그 후 7년의 기록인 <밖의 삶>은 또 어떻게 다를지 기대하며 읽어 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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