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의 삶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깥 일기>에 이어 익숙하게, 빠르게 읽은 <밖의 삶>

다 읽고 역자 해설을 보면서 아차 했다. 느리게 읽어야 하는 책이었는데. 앞으로 돌아가 조금씩 다시 읽으면서 쓰는 서평-

이어지는 7년의 기록

<바깥 일기>와는 달리 기록한 날짜가 있고, RER 고속전철 타고 다니는 일상 풍경을 습관적으로 기록한 것 같다. 전철 안의 대화, 사람들의 모습들, 여기저기에서 구걸하고 있는 노숙인이 나온다. 아니 에르노의 시선이 머무는 곳, 일상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들의 묘사와 생각이 건조하고도 날카롭게 겹쳐진다.

정치적인 내용, 전쟁, 테러,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이런 시사적인 내용을 쓸 때는 일상의 내용에서보다 좀 더 감정이 드러난다. 이런 내용에서조차 감정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면, 단순한 사건 기록, 또는 가식에 불과했을 것 같다. 건조한 문체에 언뜻 언뜻 비치는 감정이 보다 강렬하게 느껴졌다.




포착 - 기록 - 느낌

읽으면서 기록 방법을 뜯어보기도 했다. 먼저 포착한 상황을 간단히 기술, 그리고 '나라면'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 상황이 가진 사회적 함의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그리고 약간의 상상, 또는 실제적인 의미로 여겨지는 것들을 쓴다.

<바깥 일기>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또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일상을 묘사해 보지만, 금방 또 좌절한다. 읽기는 쉬워도 잘 안 써지는구나. 아니 에르노는 한 번에 쓰고 딱 덮은 기록들일까? 문장의 수정 없이? 7년 정도 쓰면, 그리고 또 7년을 쓰면 좀 더 나을까? 하지만 <바깥 일기>와 <밖의 삶>은 습작이 아니고, <바깥 일기>를 처음 쓸 당시에도 아니 에르노는 이미 문학 교수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내공으로 가득 찬 문장들이다.


문체와 정체성

아니 에르노의 문체는 작가의 정체성과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무엇을 어떻게 쓸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작가로서, 여러 가지 상황의 묘사를 보는 일이 더 의미가 있었다. 자신의 언어로 다양한 일상을 쓰기, 여러 생각들을 포착하고 표현하기, 그 대상에 제한이 없고, 표현 방법엔 현란한 기교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깥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 각자의 언어를 개발하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