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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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현직 교사 작가가 (자그마치) 7년 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는 소설이다. 7년의 여정 속에서 주인공도 여러 번 바뀌었다는 비화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윤옥'이 주인공이 아닌 <지켜야 할 세계>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윤옥'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이 문학적으로 값진 경험이었다는 의미다.

소설은 '윤옥'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윤옥'의 현재의 선택이 어떠한 과거에서 비롯된 것인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다. '윤옥'은 아픈 경험들을 겪은 인물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을 잃는 경험, 아끼던 제자가 동료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경험 등 보통의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든 경험들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과 주변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강직한 인물이다.

소설평 중에서는 이러한 '윤옥'의 강직함이 다소 평면적인 인물상이라서 아쉬웠다는 뉘앙스의 평가가 있었다. (+ 평가 직후, 지난한 시간을 돌파해 나가는 데 따르는 일이라 한편으로는 이해되기도 했다는 서술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윤옥'의 이러한 강직한 성정이 이 소설에서 신의 한수라고 생각했다. 소설 자체가 굉장히 서늘하고 고통스러운 경험들로 가득한 소설이기에, '윤옥'마저 단단함을 갖추지 않았더라면 독자로서 소설을 따라가기 버거웠지 않았을까 싶다.

어떠한 원고가 좋은 시기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출판사를 만나고, 출간까지 이어져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참 힘든 여정이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것을 해냈다. 이보다 시의적절할 수가 없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윤옥'은 국어 교사다.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는 그 어느때보다 '교사 인권'이 뜨거운 감자에 올라 있지 않나. 실제로 소설을 읽으며 교사 인권과 관련된 여러 뉴스들이 떠올랐고,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작가 또한 그 뉴스들을 염두하고 있는 듯 보였다. 우리의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많은 소설이다.

✒️ 문장 수집

한 인간을 저토록 가여운 괴물로 만들어버린 세상과 그 세상의 힘에 휘둘리는 인간의 유약함에 화가 났다. 윤옥 혼자 어찌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어서 더 밉살스러웠다.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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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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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북스 서포터즈(필독단) 2기 활동을 통하여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나는 '혐오표현금지법'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책은 '혐오표현금지법'에 동의하지 않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번 달의 필독단 활동 도서로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나와는 다른 견해를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회적 현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중요하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책을 고른 의도'를 만족시켜주는 책이었다.

본문을 이용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이 책은 "혐오표현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오표현의 위험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p. 324)" 책이다. 책은 혐오표현금지법이 '법'으로서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법 제정에 있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계속하여 상기한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한국판 도서에 특별 수록된 '저자와의 대담' 지면의 내용이 무척 유익하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며 한국의 혐오 문제와 관련된 담론을 이어나가는데, 두 지식인의 대화가.... 너무나도 흥미롭다.

'혐오'에 대하여, '혐오 표현'에 대하여, '검열'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생각할 점이 참 많았던 책.

✒️ 문장 수집

우리 중 그 누구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과 함께 단단히 자리잡은, "암묵적"이거나 무의식적인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p. 36)

우리 모두는 특별히 혐오스럽거나, 불온하거나, 두려움을 주는 관점을 일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가지각색이다.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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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소녀
마쓰자키 유리 지음, 장재희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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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매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여섯 개의 소설이 담긴 소설집이다. 여성은 히어로일 때도 있고, 히로인일 때도 있다. 소설집은 비교적 소프트한 SF와 비교적 하드한 SF가 혼재되어 있는 형태다. <슈뢰딩거의 소녀>와 <펜로즈의 처녀>가 후자의 케이스다.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았던 것도 이 두 개의 작품이다.

표제작 선택이 좋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작품 자체가 좋아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작가의 의견이 잘 반영된 것 같다는 점이 좋아서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실제로 작가님께서도 <슈뢰딩거의 소녀>가 소설집의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본의 원작 표지에서는 <슈뢰딩거의 소녀>의 등장인물인 '아이'로 추정되는 여자 인물 한 명만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 표지에서는 '아이'와 '구레나이(동일작 등장인물)'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이'와 '구레나이'의 연대를 인상깊게 읽은 독자로서, 좋은 해석이 가미된 표지라고 생각했다.

다음은 각 소설에 대한 짧은 코멘트다.

***

<예순다섯 데스> _ 주인공 무라사키는 국가 인구 조절 사업으로 인하여 예순 다섯에 죽어야만 하는 이들이 마음 편히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직업을 가진 예순 넷의 여성이다. 매력적인 중년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무라사키와 '사쿠라(무라사키의 양녀)' 사이의 우정과 사랑이 좋았다.

<이세계수학> _ 수학 시험을 망친 여고생이 "수학이 사라졌으면 좋겠어!"라고 외치자, 수학이 보급화되지 않은 이세계로 소환되는 이야기다. 키치하다면 키치하고, 유치하다면 유치하다.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꽁치는 쓴가, 짠가> _ 미래 시대의 초등학교 5학년 주인공이, 기후 변화로 오래 전에 사라진 '꽁치'구이의 맛을 복원해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근미래에는 저렇게 사라지는 '맛'들이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인 만큼 참 귀여운 소설.

<살 좀 찌면 안 되나요> _ 국가적으로 비만인을 통제하는 세계관이다. 비만인들 5명을 대상으로 다이어트 데스 게임 공영 방송을 하는데, 그에 대한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

<슈뢰딩거의 소녀> _ '매 분기점들마다 세계선은 무수히 갈라진다'라는 개념이 기본 베이스가 된다. (멀티버스라고 본다면 멀티벌스이지만, 소설에서는 멀티버스의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는 다양한 세계의 '구레나이'와 '아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어떤 세계의 '구레나이'는 '살아있길 잘했다'라고 말하는데, 어떤 세계의 '구레나이'는 모진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 모습이 병렬되어 서술된다는 점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펜로즈의 처녀> _ 자신이 살고있는 섬을 위해 희생하는 여자가 있는 '지구의 이야기'와, 우주 문명을 유지할 에너지를 얻기 위해 희생하는 여자가 있는 '우주 끝의 이야기'. 이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소설이다. 가장 마음에 든 소설.

***

나이가 어린, 정말 '소녀'인 등장인물들이 다수 등장하는 소설집이다. 아주 개인적인 첨언으로, 청소년 소설이나 영어덜트 소설로 프레이밍해서 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의 디스토피아를 살아내려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 문장 수집

"나는 널 버리지 않아. 절대로 안 버려. 마지막 날까지 너와 함께 있을게." (p. 38)

"널 잊지 않을게. 우주가 종말을 맞는 그날까지." (p.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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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 - 한 달에 한 권 시와 그림책
이화정 지음 / 책구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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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향한 293페이지 분량의 사랑고백

✒️ 서평

한 달에 한 권씩 시와 그림책을 읽는 독서 모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실제로 모임에서 이야기 나눈 발제들이 매 꼭지 시작 전에 적혀있다. 독서 모임을 운영 중인 한 사람으로서, 다른 독서 모임의 발제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즐거웠다. 독서 모임 운영에 참고하면 좋을 듯한 발제들도 많았다. 👍

"시보다도 난해한 삶. 그 한 가운데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쉬고 싶을 때 여백이 많은 시집을 펼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하면서도 시를 읽으면 안심이 되었다." (p. 11)

이 문장이 특히 마음을 울렸다. 나의 생각과 정말 똑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 난해한 삶 속에서 함께 '난해'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참 위안이 되지 않나. 이렇게 나의 생각을 똑 떼어서 적은 것 같은 문장을 만나서 기뻤다. (책의 순기능!)

이 책은 총 293페이지다.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작가는 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적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작가의 '시 사랑'에 점령당한 책이다. '시를 왜 좋아하나요?'라는 추상적 질문에 이렇게 조목조목 사랑의 이유를 읊을 수 있다는 것에서 시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진다.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자 고민 중인 이들이 가이드 삼아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가가 시를 정말로 정말로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서 바라보면, '대체 저게 뭐길래 저렇게까지 사랑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며 사랑의 대상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니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시 사랑에 전염되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시를 사랑했지만, 이 책을 읽고 시를 더욱 사랑하게 된 기분이다.

✒️ 문장 수집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 나아가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는 존재로 바꾸어 가는 것. 나에게는 책, 글, 삶 자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모든 것으로 만드는 동력이다. (p. 92)

인생의 어느 중요한 시절 누군가의 환대와 선의가 두고두고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다. (p.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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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위한 변론
송시우 지음 / 래빗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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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100인의 변론단) 활동을 통하여 가제본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 서평

가볍고 경쾌한 템포의 소설집이다. 수록작 중 [인어의 소송]과 [선녀를 위한 변론]은 각각 '인어공주'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고전 작품을 비튼 현대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운 소설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유독 마음에 들었던 소설은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와 [모서리의 메리]였다. 두 작품 모두 강아지가 중요도 높은 조연(이자 해결사)으로 등장하는데, 강아지의 따스함과 인간의 따스함을 둘 다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래는 각각의 소설에 대한 코멘트다.

[인어의 소송] _ 인어공주 이야기를 비틀어서 탄생한 소설이다. '바다 마녀와 인어의 계약은 불공정 계약이다'라는 현대적 시선이 독특했다. 왕자를 '낭만적인 결혼만이 진정한 결혼이다'라고 생각하는 캐릭터로 설정한 점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선녀를 위한 변론] _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비틀어서 탄생한 소설이다. 어릴적부터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읽으며 '선녀가 무척 가엾다'라고 생각해왔었는데, 그 지점을 제대로 꼬집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 _ 직장 동료를 데이트 폭력의 늪에서 나오게 해주고자 분투하는 매력적인 여성 히어로 주인공 나오는 소설이다. 여성이 여성을 구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답다. 주인공의 반려견 '타미'의 활약이 돋보인다.

[모서리의 메리] _ '개'라는 종의 천선적 무구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모서리를 좋아하는 강아지 메리가 특유의 선함으로 살인을 막는 이야기다. 참 따듯한 이야기. (사람에 대한 선한 기대가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알렉산드리아의 겨울] _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을 근간으로 하는 소설이다. 실제 사건이 뚜렷하게 연상되는 소설이라서 개인적으로는 잘 맞지 않았다. 작가의 말에 적혀있는 내용을 보니, 살인 사건에 잠재된 '악'에 대하여 오래도록 고민하신 흔적이 엿보였다.

무겁지 않은 미스터리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문장 수집

📎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여자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집이다. (p. 139)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해요. 사람도...... 개도...... 종을 초월해서. 불안은요. 존재의 안식을 빼앗죠......." (p.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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