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대해 큰 관심은 없지만 우연히 검색해 본 이 책의 평가가 칭찬 일색인 것을 보고 궁금해져 어쩐지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좋은 책은 뭘 읽던 좋으니까. 아침에 출근 할 때 마다 운전해서 갈까 아님 지하철 타고 책 읽으면서 갈까 조금 고민했다. 오래 읽을 수록 앞부분의 기억이 소실 돼 책 읽는 즐거움이 확실히 반감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빨리 좀 읽어 치우고 싶어졌다. 800여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이라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운동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동의 근대사라니 꽤나 따분할 것 같지만 인물 중심으로 서술돼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쓰였는데도 중동에 대한 내 밑천이 워낙 없어서 흡사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는 것 마냥 인물 관계도만 떠올리기도 벅찼다. 끊었다 읽을 때 마다 리셋되는 나의 기억. 이런 고충 다들 알고 있지…? 모든 책에는 마지막 페이지가 있다!는 일념으로 읽어 나갔다. 완독만이 목표라는 듯. 마치 보잉 747기의 조립 설명서를 차근차근 읽고 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아니 대체 일개 소시민일 뿐인 내가 왜 이런 외교 정치 공학의 메커니즘까지 상세히 알아야 되는거지! 갑자기 짜증이 솟구칠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부품이 하나 하나 끼워 맞춰지고 짜잔 완성된 모습을 보았다. 현대에도 중동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은 약 100년 전 이른바 유럽 열강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다툼을 벌인 결과라는 것. 그리고 또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 인간들의 한계로 어리석은 결정들이 쌓여온 결과라는 것. 과연 세계사란 그런 모든 인간들의 삶의 총합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감상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이후로 제일 오래걸려 읽은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가부장제의 강간문화를 마르고 닳도록 고발하는, ‘백래시’에 버금가는 역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전시강간 챕터는 정말 읽기 괴로울 정도라 여러번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다.
이 소설은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첩보원으로 활동했던 나치의 부역자 하워드 캠벨의 삶을 다루고 있다. ‘첩보원이자 부역자’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을 통해 전쟁의 야만이 인간들의 삶을 어떻게 뒤틀어 놓는지 보여준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법 하지만 진지할 지언정 전혀 심각하지 않다. 소설 전반을 통해 흐르는 주된 정서는 냉소적 유머라 할 수 있을텐데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 키득거릴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런 특유의 문체를 통해, 그가 쓴 인간에 대한 실망은 알고보니 인류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