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이트노블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활자화 된, 그저 가볍고 쉬운 얘기들인 줄 알았는데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을 읽고 그것은 내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쿠라가 동급생 히나모리에게 시급 300엔의 사신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신 아르바이트는 6개월 이라는 근무기간 동안 미련이 남아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사자(死者)들의 미련을 풀어주고 저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는데, 사자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미련을 풀기 위한 추가시간을 갖게 된다.

 

사쿠라와 히나모리가 사신 일을 하며 사자들의 미련을 풀어주고 성장하는 가벼운 이야기겠거니, 나 또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자들과 그들로 인해 조금씩 성장하는 사쿠라의 모습은 나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생각보다 무거운 이야기를 담았지만 술술 잘 읽히는 가독성 좋은 문체 덕분에 금세 읽었고 삶과 죽음,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말이 어떨지 예측했으면서 책장을 덮고 내가 느낄 감정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구나...

 

라이트노블에 대한 내 편견을 깨주고 잔잔한 감동과 깨달음 준 고마운 책이다.

 

-

들떴다.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은 들뜨면 대번에 방심한다. 내일도 분명 좋은 하루를 보낼 거라고 착각한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을 계기로 앞으로의 인생도 펴지리라고 자만한다. 아무 근거도 없이. -p.42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알고 있었는데. 행복은 반드시 망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p.60

 

조건 없는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만의 인생과 욕심을 가지고 있다. -p.168

 

"결국 잃는다 하더라도 그사이에 웃으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분명 아주 의미 있는 일이겠지. 슬픔을 없앨 수는 없어. 하지만 슬픔을 능가할 행복을 찾아낸다면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거야. 아사쓰키한테 배웠는데, 과거에 괴로워하기보다 내일에 희망을 품어야 행복해질 수 있나 보더라고. 우리도 마지막으로 그런 기적 같은 시간을 보내자." -p.294~295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잃었더라도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분명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이다. -p.334~335

 

"하지만 지금은 달라. 지금은 인생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없어.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그 나날들이 바로 내 인생이니까. 재출발이 아니야.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해. 다들 그렇게 살아왔지. 그러니까 나도 과거를 품에 안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모든 걸 잊어버린 세상에서도 힘차게 살아갈 자신이 있으니까." -p.340~3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선 놀랍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고전이 괜히 고전이 아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고전을 읽어왔고 왜 유명한 고전문학인지 깨닫게 되는 것도 있었지만 번역의 문제인지 내가 읽은 대부분의 고전은 딱딱한 문체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이 있어 가독성이 떨어졌는데 프랑켄슈타인은 웬만한 현대문학보다 술술 잘 읽혀서 놀랐다.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과학자의 야망, 인간의 심오한 본성까지 잘 표현해서 굉장히 재밌게 읽었으며 가장 놀란 것은 내가 알던 프랑켄슈타인의 이미지가 책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초록 피부에 스테이플러가 찍혀있고 관자놀이에 나사가 박혀있으며 말도 못하는 끔찍한 괴물로 알고 있었는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피조물)을 창조한 인간이며 그가 창조한 피조물의 생김새도 내가 알던 것과 달라서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피조물은 인간과 같이 마음도 있고 지능도 있어 여러 감정을 느끼며 심지어 말도 나보다 잘한다;

 

'신은 연민을 갖고 자신을 본떠 인간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창조했다. 그러나 내 모습은 당신의 더러운 투영이고, 닮았기 때문에 더욱 끔찍스럽다. 사탄에게는 그를 숭배하고 격려해줄 동료 악마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고 미움을 받는다.' -p.174

가독성과 흡입력이 뛰어나서 금세 읽었고 피조물의 상황과 감정에 이입해서 피조물에게 동정심이 들다가도 프랑켄슈타인에게 감정이입해 피조물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또 피조물에게 감정이입하고... 이랬다저랬다 정신없이 읽었다.

결국엔 피조물에 더 감정이입을 했고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피조물이 바란 건 공감과 사랑인데 그를 배척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고전이라 재미없고 딱딱할 거 같아서 미루고 미루다 읽기 시작한 건데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후회될 정도로 나랑 잘 맞는 책이었고 역시 아직까지도 유명한 이유가 있다!

 

-

 

사랑하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두려움의 여지도 항상 남아 있기 마련이다. -p.121

시련이란 사람들의 조잡하기 짝이 없는 감수성마저 그토록 무디게 만드는 법이다. -p.221~222

아! 불행한 사람이라면 체념도 좋겠지만, 죄인에게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과다한 슬픔에 허우적거리다보면 가끔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사치는 회한의 고뇌에 쓰디쓴 독으로 변해버렸다. -p.258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p.3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흉가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

공포와 폭력과 부조리 속에서 빛나는 그로테스크의 보석 <흉가>

 

 

고딕 호러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 접해봤기에 조이스 캐럴 오츠의 문체와 고딕 소설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로 단번에 빠져들었고 신선했다. 조이스 캐럴 오츠가 발표한 그로테스크한 16편의 중단편들로, 모두 강렬한 이야기들이지만 '~때문이었어'라는 반복과 끔찍한 내용, 그와 더불어 전해지는 여성의 감정 때문에 개인적으로 3부의 정상 참작 사유가 가장 인상 깊다.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답게 여성의 불안을 히스테리로 치부하며 소외시키는 현실적인 공포를 다뤄 마치 책 속의 화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고 색다른 공포를 느낄 수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어릴 때 갖고 놀던 인형의 집과 똑같은 집을 본 플로렌스 파, 낯선 남자에게 모델 제안을 받는 소녀, 폭력적인 형 퀸이 아내 엘렌과 딸들까지도 위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의 집에 가면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는 휘트니, 잠에서 깬 후 빛이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 등 책이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강렬하다. 사이코패스 주인공 없이도 여성 독자들의 공포를 자극한다는 문구에 끌려 읽었는데 덕분에 새로운 장르를 접해볼 수 있었다. 표지 또한 예쁘면서 열쇠구멍(?)으로 쳐다보는 눈이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

 

사교 모임이란 원래 그런 식이다. 비록 다 같이 불행한 운명을 앞둔 처지라도 모임에서 기발한 농담, 고마워하는 웃음, 유쾌한 유대감을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사람의 인격이란 얼마나 희한한가. -p.61 인형의 집

"공평하다니, 누구에게? '공평'한 게 뭐지?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우리'가 하는 거잖니." -p.217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고 싶지 않아. 나는 '알고' 싶어." -p.231 모델

죄책감이 곪으면 결백한 자마저도 망가지게 마련이니, 조심할 것! -p.278 가해자

나는 겁 많은 여자가 아니다. 오랜 인생 경험을 쌓은, 강하고 현실적인 여자다. 예전 집에서도 내가 살림을 도맡았고, 이곳에서의 은퇴 생활도 내가 도맡고 있다. (정확하게는 그이의 은퇴였다. 내 은퇴는 어떻게 된 건가?) -p.385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우리의 희망이 사실로 입증되는 것 아니겠소? (ㆍㆍㆍ) 인류가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 나는 살짝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요. -p.417 전파 물리학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모이라고 한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그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야. 난 못해도 앞으로 오 년 안에, 나머지 싹 정리하고 개운하게 갈거야. 마음 딱 먹었으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대한민국에서 안락사 합법화 법안이 발의되고, 지혜의 할머니인 이금래 할머니는 오 년 안에 스스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안락사 할 거라며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술술 잘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 상당히 맘에 들고 짧은 소설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다. 자식들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추고 허망하게 죽은 남편을 보고 본인의 선택으로, 눈을 맞추며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떠나는 모습은 멋있고 감동적이었으며 읽으면서 울컥했다. 그러나 막상 내 가족이 안락사를 택한다면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 안락사를 다룬 책들을 접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보고 지금 안락사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현재 별다른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죽음을 택할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가족들, 가까운 친구들이 죽음을 택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지 이해되고 그 뜻을 존중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어렵다. 안락사가 합법화 되는 이야기다 보니 최근에 읽은 70세 사망법안, 가결도 생각났지만 이 책은 본인이 직접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이기에 2018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정영수 작가님의 더 인간적인 말이 생각났다. 은모든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잘 읽었고 나와도 잘 맞아서 작가님의 전작들도 관심이 가고 앞으로 나올 아르테 작은 책 시리즈도 더욱 기대된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쇠약한 육체로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 삶을 스스로 종결짓는 것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할머니가 곧 일정을 잡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군요, 지쳐 보이시네요, 그럼 안녕히, 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 감정만 우선일까, 나는 좀 신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 한구석에는 자기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울고 화풀이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엄마를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엄마를 달래고 눈치 보느라 심장을 졸이는 사이에 원래 내 기분이 어땠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그렇게 진이 빠져버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마 엄마는 평생 알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솔은 일본에서 결혼하는 친구, 영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하고 그곳에서 사이비 교단에서 도망친 나미와 만나게 된다. 주민등록 번호는 2로 시작하지만 가슴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주기적으로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는 한솔과 3년간 사이비 교단에 있느라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나미, 이들은 '보편적 시민'이 아니며, 배제된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숨고 싶지만 자신을 숨기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의 길을 찾아 한 발자국씩 내딛는 이들의 여행에 동행하는 느낌으로 읽어본다면 좋을 것이다.

왜 책 제목을 인터내셔널의 밤이라고 지었을까? 러시아 혁명 기념가인 인터내셔널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일까? 책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는 알지 못하겠으나 사라지고 싶지만 사라지고 싶지 않은 그 마음, 주민등록에서 도망치고 싶은 그 마음이 와닿았고 쓸쓸했다. 한솔과 나미, 이들의 여행에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는 불안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의 여행에 동행하는 느낌으로 읽었고 모든 것이 좋았다는 한솔의 말에 괜스레 웃음이 났다. 불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우리는 어른이 되고 뭔가 빼먹은 얼굴이 돼서 만난다. 그건 못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주민등록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어떻게 모르는 사람으로 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은 매일 밤 잠자리에서, 물론 매일 밤은 아니지만 자주 반복되는 생각이었다. 사라질 생각은 없지만, 큰 잘못을 아직 저지르지 않았지만 어떻게 한국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숨을 수 있을까 혹은 한국을 빠져나가 외국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당신은 보편시민이 아닙니다. 일반시민이 아니네요. 당신은 배제라는 말을 배웠습니까? 배제라는 말을 기억하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