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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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이라고 한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그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야. 난 못해도 앞으로 오 년 안에, 나머지 싹 정리하고 개운하게 갈거야. 마음 딱 먹었으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대한민국에서 안락사 합법화 법안이 발의되고, 지혜의 할머니인 이금래 할머니는 오 년 안에 스스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안락사 할 거라며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술술 잘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 상당히 맘에 들고 짧은 소설이지만 여운은 길게 남는다. 자식들 눈 한번 제대로 못 맞추고 허망하게 죽은 남편을 보고 본인의 선택으로, 눈을 맞추며 가족들에게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떠나는 모습은 멋있고 감동적이었으며 읽으면서 울컥했다. 그러나 막상 내 가족이 안락사를 택한다면 나는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있을까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책을 읽으면서도 계속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요즘 안락사를 다룬 책들을 접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보고 지금 안락사 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현재 별다른 고통 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죽음을 택할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가족들, 가까운 친구들이 죽음을 택한다면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선택하는지 이해되고 그 뜻을 존중하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어렵다. 안락사가 합법화 되는 이야기다 보니 최근에 읽은 70세 사망법안, 가결도 생각났지만 이 책은 본인이 직접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이기에 2018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정영수 작가님의 더 인간적인 말이 생각났다. 은모든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잘 읽었고 나와도 잘 맞아서 작가님의 전작들도 관심이 가고 앞으로 나올 아르테 작은 책 시리즈도 더욱 기대된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쇠약한 육체로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그 삶을 스스로 종결짓는 것에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할머니가 곧 일정을 잡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군요, 지쳐 보이시네요, 그럼 안녕히, 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 감정만 우선일까, 나는 좀 신물이 났다. 그러면서도 마음 깊은 곳 한구석에는 자기 분이 풀릴 때까지 마음껏 울고 화풀이하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엄마를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다. 엄마를 달래고 눈치 보느라 심장을 졸이는 사이에 원래 내 기분이 어땠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마는, 그렇게 진이 빠져버리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아마 엄마는 평생 알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의 임종 스케줄은 오후 네 시에 잡혀 있었으므로 이별까지 아홉 시간이 남았다. 그런 식으로 시간을 셈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할수록 긴장이 됐고, 그러자 시간이 몇 배는 빠르게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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