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 5천년 유대인의 위대한 유산
탈무드교육 연구회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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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다 보니 내 마음을 잡아주고,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잡아줄 뭔가가 필요하다. 이럴 때 많이들 종교를 믿는데, 내 성격상 종교는 전혀 아니다. 나는 도교적 생각이 내 가치관 밑에 깔려있다. '선을 선이라 하면 선이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다. 종교는 보통 '이러 이러한 것이 옳으니, 이러 이러한 것을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부터 그들의 종교가 포용적이지 못하고 배타적이라 주장하는 것 같다. 배타적인 것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갖고 있다. 폭력성을 가진 종교가 과연 진정한 종교일 수 있을까. 모든 갈등과 분쟁, 폭력은 이 배타성에서 출발한다. 싸우자고 달려들고,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살려내려 애쓰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종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지리 환경적 영향 아래에서, 생활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반대로 종교가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생활을 규율하고, 가치관을 형성해 주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딘가 타당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거쳐 흐르는 이어져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좋은 말씀은 받아들이려고 한다. 좋은 말씀은 종교를 넘어 인간 삶에 도움이 되는 철학이자, 도덕 규범이기 때문이다. 종교도 고전(古典)인 것이다. 게다가 늘 새롭게 해석되는 고전. 

   이런 이유에서 『탈무드』를 읽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있는지 보려고. 결론은 반은 있었고, 반은 없었다. 내가 어떤 종교 서적을 읽든, 고전을 읽든, 다른 책을 읽든 나머지 반은 언제나 비어 있을 것이다. 이 빈 공간은 내 생각, 내 다짐으로 채워야 하는 공간이다. 


"구백구십구 명의 천사가 그를 반대하더라도 그를 지지하는 오직 한 명의 천사가 있다면 그는 구제될 것이다." (46쪽)

   이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 가장 친한 친구와도 많이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너무나도 큰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게 되어도, 단 너 혼자만이라도 나란 인간을 믿어준다면 (이 믿음은, 나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구원받은 거라고. 가정법으로 말을 맺었지만,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모든 사람, 심지어 부모님조차 나를 불신할 때라도 그 친구만은 나를 믿을 것이라고. 저 구절을 읽다가 친구 생각이 나서 울컥. 아무튼 이건 모두 다 마찬가지일 거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아닌, 미리엘 주교에 의해 구원 받았다. 


사람을 비방하는 자는 누구인가? 남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더라." "내가 들었는데 누구누구가 뭐라고 말하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설사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남을 비방하는 자들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116쪽)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남의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좋은 이야기보다는 안 좋은 이야기, 험담이다. 험담의 과보는 어떻게 해서든 돌아온다고 믿는다.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남 험담하는 사람이 과연 만족스럽고 뿌듯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지난 주에 읽었던 『율곡 인문학』에서 율곡 이이 선생 역시 말을 적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남의 험담은 물론이고, 말은 언제나 내 의도와 다르게 어떻게 튈지 모르므로 아껴야 한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 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공감하는 바다. 


원수란 무엇이고, 원한은 무엇인가?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낫을 빌리러 가서 거절당했는데 다음 날엔 반대로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도끼를 빌리러 갔을 때 "너는 나에게 낫을 빌려주지 않았어. 나도 너에게 도끼를 빌려주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경우 원수가 된다. 
하지만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도끼를 빌리러 가서 거절당하고 난 다음 날 그 친구가 외투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 "여기 있어. 넌 나에게 도끼를 빌려주지 않았지만 난 너에게 외투를 빌려 줄게. 난 너와 다르니까."라고 말한다면 원한이 생긴다. (120쪽)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 본다. 그런데 말처럼 쉽게 하긴 어렵지만, 어렵다고 상대가 나에게 한 대로 그대로 대갚음해 주거나, 꼭 말로 꼬집아 말하면 원수가 된다. 원수가 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나쁘게 몰아붙이는 말은 반드시 상대방 가슴에 깊숙이 박혀 뽑히지 않는 가시로 남아 있다. 인간은 자기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 화를 돋운 사람에게 꼭 앙갚음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쉽게 생기는데, 넓게 보면 둘이 똑같아지고, 서로의 원한, 원망이 도돌이표에 갇혀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세상에 너무나 흔한 윤회의 사슬 아닌가. 누군가 한 명이 먼저 끊어야 한다. 


"이런 순간에도 기도문을 읊으시는 겁니까?"
"나는 항상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살았다. (...) (252쪽)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 말이 참 좋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늘 욕심이 스멀스멀, 게으름이 스멀스멀, 망각이 스멀스멀. >ㅁ< 그래도 내 마음은 언제나 뜻을 세워(立志), 그 뜻을 곱씹으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살고 싶다. 


'수십 가닥의 갈대가 뭉쳐 있으면 부러지지 않으며, 한 가닥의 갈대는 어린아이라도 부러뜨릴 수 있다. / 예민한 사람, 쉽게 화내는 사람, 우울한 사람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 두 사람이 말다툼할 때, 먼저 침묵하는 자가 낫다. /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은 사람은 불행이 닥쳐도 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정의를 업신여기지 말라. 정의는 세상을 지탱하는 세 가지 힘 중에 하나다. 정의가 무너지면 세상의 기초가 흔들린다. (303-304쪽)

   옳은 말이다. 




   유대인이 오랜 세월에 거쳐 만든 법전이랄까, 각기 상황에 맞는 유대인식판례랄까, 그런 이야기를 모은 책이 바로 『탈무드』이다. 그래서 내용은 쉽고 늘 실생활에서 던진 질문과 답이 적혀 있다. 몇몇 일화, 교훈, 잠언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다. 

   그래도 특정 종교 책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내용도 있다. 이건 걸러서 읽어야 하지만, 그냥 거르기만 하면 읽은 것이 아까우니까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좋을 듯이다. 이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용' 정신이 활짝 꽃 핀다. 

   종교를 떠나서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善이라 믿는 것'은 동과 서를 막론하고, 고와 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못해 같다. 이것을 찾아서 나의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겠다. 


추가 : 
초판 1쇄된 책이라 그런지 오탈자가 꽤 많다. 
지뢰처럼 책 곳곳에 뿌려져 있는 오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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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세상 - 우리 미래를 가치 있게 만드는 83가지 질문, 2018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피터 싱어 지음, 박세연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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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물 해방』으로 유명한 피터 싱어 교수의 책입니다. 환경이나 동물 보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어디서 한 번쯤은 피터 싱어라는 이름을 들어 봤을 겁니다. 피터 싱어 교수는 현재 노(老) 학자로,  참말 나이가 많으시지만 나이가 무색하게 지금도 활발히 사회운동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뉴스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이 책, 『더 나은 세상』은 피터 싱어 교수가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라는 뉴스 서비스 기관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2005년부터 매월 한 편씩,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칼럼을 썼습니다. 매월 한 편이라고 해도, 근 20년을 써왔기 때문에 분량이 꽤 많네요. 그리고 간간이 다른 신문에 기고한 칼럼도 실려 있어요. 

칼럼에서 다루는 주제는 아주 포괄적입니다. 인간과 사회, 자연과 환경, 동물, 그리고 미래 등 사회 문제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글의 종류가 칼럼이다 보니, 각 글의 길이는 대략 4~5 페이지로 짧습니다. 짧은 글에,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고 간결한 어조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그리고 논리적입니다(철학자이십니다!). 

피터 싱어 교수는, 이 책 머리말에서 본인을 공리주의자로 소개했듯이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공리주의적 시각'입니다. 학창 시절, 윤리 시간에 한 번쯤 들어 봤을 텐데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최고의 기치로 삼고 있는 철학 사조이죠. 게다가 피터 싱어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범위'를 '인간'으로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확장합니다. 넓게 넓게, 아주 넓게. '동물'과 '자연' 그리고 '미래'로까지! 그래서 한창 젊은 시절에 출간했던 『동물 해방』이라는 책이나, '낙태 금지'를 반대한다는 그의 의견은 당시 꽤나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죠. 시대가 많이 바뀐 지금도, 피터 싱어 교수의 주장은 여전히 많은 충돌을 내포하고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데 위에 말했듯이, 문체가 간결, 명료하고 담담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그의 주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 군요?' 라며 예의 바르게 경청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고, 아주 많은 칼럼들로 모으고 엮은 책이기 때문에 일일이 하나하나의 글에 대한 제 생각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말하자면 그의 주장에 '동의'보다는 '동의하지 않는다'가 많아요.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 하나하나는 저에게 보석 같습니다. 제 생각, 제 사고, 가치관을 확장시켜 줄 보물 같은 글이라고 할까요?!

잘은 모르지만, 미국의 대학 교육, 특히나 인문학 강의는 교수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되, 그것을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설득을 하고, 학생들끼리 토론을 통해서 학생 각자가 자신의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을 합니다. 그런 교육 방식, 대화 방식이 이 칼럼에도 은연중에 묻어 있습니다. 

피터 싱어 교수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적되,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자신이 옳다고는 쓰지 않습니다.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쓸 뿐입니다. 그러면서 독자를 설득합니다. 그 설득의 과정에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 역시 열어 둡니다. 

신문 칼럼을 읽어 보면, 피터 싱어 교수님의 칼럼처럼 예의 바르면서, 내용이 명료하고 설득적인 칼럼을 발견하기가 사실 쉽지 않은데요, 그런 와중에 이 책을 읽고 정말 좋은 사람의 글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기뻤습니다. 솔직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면서 자신 있게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사람을 만나기가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글 쓰는 분이 또 한 분 계시죠! 바로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님ㅋ)

사회 문제, 첨예한 윤리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요즘 수능 시험 및 대학 입학 시즌인데요,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혹은 논리 정연한 글을 써야 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참 좋아요.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펼쳐야 하는지, 그리고 짧은 분량의 글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고, 글을 전개해야 하는지 피터 싱어의 칼럼이 좋은 교과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게다가 책에 실린 칼럼의 주제가 넓어서 여러모로 유익할 거예요. 저 역시, 제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을 이 책을 읽고 곱씹고, 곱씹어서 글로 전개해 볼 생각입니다. 

생각의 물꼬를 터 주고, 가치관을 확장시켜 줄 아주 좋은 책이에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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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인문학 - 조선 최고 지성에게 사람다움의 길을 묻다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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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현재 5,000원 권 인물. 9개 과거 시험에 장원급제(지금 말로 ‘수석’)하여 ‘구도장원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인권 신장 분위기에 힘입어 신사임당이 ‘핫피플’이 되었고, 그의 셋째 아들인 이이를 대학자보다 신사임당의 아들로 보는 시각이 강합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 학생들 눈엔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율곡 이이는 조선 왕조 500년, 긴긴 세월 속에 살다간 수많은 위인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대인이자 성현입니다. 예전에 신사임당을 대학자의 어머니로만 봤던 시각과 똑같이, 율곡을단지 위대한 여성의 아들로만 바라 볼까봐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성은 남자의 그림자 같은 존재였기에 여성 인권 신장 운동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율곡 이이가 신사임당의 그늘에 가려질 만한 인물은 결코 아닙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기 최고의 성취를 이뤄냈으니, 서로의 업적을 다룰 때 만큼은 누가 누구의 어머니이고, 아들이라고 좁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율곡 인문학│
중국 고전 사서 삼경 중 하나인 주역. 이 주역의 마지막 궤는 화수미제(火水未濟)로 ‘개울을 건너다 꼬리를 적신 어린 여우’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故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서 접했습니다. 마지막이 완성이 아니라, 자그마한 실수로 인해서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참 감명 깊었는데, 이번에 『율곡 인문학』을 읽으면서 율곡 이이야 말로 ‘화수미제’에 해당하는 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율곡 이이는 13세에 장원 급제하여, 벼슬 생활을 하다가 16세 때에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여읩니다. 3년 간 시묘살이를 합니다. 율곡 이이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나 깊었던지, 정신적으로 방황을 합니다. 시묘살이가 끝난 후 19세 때 금강산에 있는 절에 들어갑니다. 조선시대에 절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사회적 매장, 즉 사회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고, 13세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살이까지 했던 사람이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이는 단지 불경을 외우고, 부처를 모시기 위해서 절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 자신이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절에 들어갔습니다. 불교에 귀의한 지 1년이 됐을 때, 이이는 자신이 찾는 것이 불교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치고 곧장 산속 생활을 접고, 세상으로 내려옵니다. 그의 나이 20살 때입니다. 속세로 내려와 율곡은 어머니의 고향이자 외할머니가 계신 강릉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는 삶을 더 이상 헛되이 소모하지 않기 위해 <자경문>을 짓습니다. 20살에 지어 49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총 29년 동안 <자경문>은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실천적 지침이 되었습니다. 


『율곡 인문학』은 율곡 이이가 절에서 내려와 새로 삶을 시작하려 할 때 그 뜻을 세우고, 자신이 삶 끝까지 관철할 방향을 위해 쓴 <자경문>을 바탕으로, 이이의 삶 자취를 좇아 ‘사람다움의 길’을 성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은 율곡 이이를 천재 위인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나아가려는 한 명의 인간으로 그립니다. 이이의 <자경문>은 총 11조목이지만 『율곡 인문학』 저자는 이를 7장(입지, 치언, 정심, 근독, 공부, 진성, 정의)으로 핵심 주제별로 나누고 정리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람다움의 길은 무엇인가’입니다. 이 책은 그가 한 인간으로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모습, 장애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례를 <자경문>을 바탕으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율곡 인문학』을 읽으며, 이이의 삶을 하나하나 짚어나갈 때 『주역』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주역』은 점술서이긴 하지만, 신영복 교수의 해석처럼 ‘관계’에 대한 책입니다. 모든 것은 '관계'로 결정되고, 변화되고, 나아갑니다. 율곡은 조선 역사상 손꼽힐 만한 인물이었지만 본인이 목숨 바쳐 모셨던 임금이었던 선조는, 우유부단하고 개혁과 혁신에 게을렀습니다. 그랬던 탓에 율곡은 제 뜻을 온전히 펼치지 못했습니다. 천재지변이 극심하고, 변방에 오랑캐들이 들끓어서 선조가 신하들에게 시책을 써올리라 하면, 율곡은 늘 '기다렸다듯이' 시책을 써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시행된 것이 없습니다. 율곡은 시대와 사람을 잘못 만난 탓에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 화수미제, 노력은 했으나 뜻은 완전하게 이루지 못한 여우인 것이죠. 


선조가 율곡이 올린 시책을 그 반만, 아니 그 반에 반만이라도 실천하고 개혁했더라면 임진왜란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혹 왜란이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렇게 전 국토가 유린되는 피해는 입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율곡 개인의 학문적 성취와 조정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본의 아닌, 화수미제. 그럼에도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타인을 원망하지 않고, 환경에 주저 앉지 않고, 본인의 뜻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늘 조정에서 물러나도, 선조의 요청에 다시 조정에 나갔던 것처럼) 비록 완성에 이르지 못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더라도요. 


 『율곡 인문학』 속 율곡은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공부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 나옵니다. 이이는 어렸을 대부터 조선 제일의 천재라 불렸고, 실제 학문적 성취도 대단했지만 그는 끊임없이 배우고자 했고 무엇보다 겸손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이의 인간적인 모습을 <자경문>의 조목에 따라 풀어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율곡에게서 배울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이이가 괴팍한 새어머니(오만 패악질은 고루 행하심)를 극진히 모신 이야기에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아서였습니다. 
도대체 이이가 어떤 분이기에!!'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분을 자세히 알고 싶었고, 그 마음과 실천을 본받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이가 처했던 상황과 제가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감명 깊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이의 <자경문>과 그의 삶에서 본받아, 나만의 <자경문>을 짓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인생을 헛되이 소모하기 싫어서 <자경문>을 지었던 율곡처럼, 저도 더 이상 인생을 소모하고 싶지 않네요. 


『율곡 인문학』은 보다 인간적인 모습의 이이를 보여주고, 독자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책입니다. 정답을 보여주는 책이 아닙니다. 독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에 따라 다양하고 다채롭게 읽힐 책입니다. 삶에 기준을 세우고, 잘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들에게 율곡 선생은 좋은 롤모델(사표)이 되어줄 겁니다. 이 책 속의 율곡 이이는, 죽은 대학자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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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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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예술가와 인터뷰한 기사만 모아 엮은 책이다. 신선함, 새로움.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을 생생하게 들여다본 느낌이다. 


- 인터뷰 하나하나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그리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들리는 한 개의 목소리가 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인터뷰어 김나희 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느낀 그 섬세함과 그 힘은, 인터뷰이들의 것일까, 인터뷰어 김나희 씨의 것일까. 

- 총 26명의 인터뷰가 실렸다. 대부분 음악가다. 책의 첫 장에는 박찬욱 등 영화감독과 알랭 바디우처럼 철학자 등의 인터뷰가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첼로니스트, 지휘자, 성악가 등이다. 인터뷰이의 직업이 무엇이든, 모든 인터뷰에는 음악이 꼭 언급되어 있다. 다른 예술 분야에 있어도 모두 음악에 대해 상당히 깊은 지식과 안목, 취향을 자고 있다.

- 각 인터뷰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작곡가 진은숙 씨의 인터뷰를 읽을 땐 그녀가 작곡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와 '에튀드'를 들었고, 백건우 씨의 인터뷰를 읽을 땐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를,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기사를 읽을 땐 그의 드뷔시 연주를 들었다. 참 좋은 순간이었다. 인터뷰도 좋았고, 그분들의 곡들도 참 좋았다. 눈으로 글을 읽고, 귀로 음악을 들으며 순간을 만끽했다. 평소 시간을 의식하며 지내는 편인데, 시공간을 넘어 잠시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여행 간 느낌이었다. 

- 인터뷰이들은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이었고, 아주 젊은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좀 늦게 유명해졌다고 해도 대부분 20대에 이름을 알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도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터뷰이에 따라 하루 최소 4~5시간, 보통 6~7시간 연습을 했다. 바쁜 와중에 사진과 미술 등을 취미로 하며 전시회와 책을 내고, 문학책을 읽으며, 철학은 한 편의 생활이었다. 대부분 학창시절 철학과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수학을 전공할지 말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인터뷰이가 도대체 몇 명이었냐! 하지만 음악을 너무 사랑했기에,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음악을 선택했다. 

음악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 음악과 한 몸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들의 손끝에는 피아노 건반이 있고, 첼로가 있으며, 지휘봉이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인데,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단순히 멋있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의 힘, 섬세함, 멋있음이 뚝 끊어지지 않고,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게 있다. 그러니까 그들만의 멋있음이 아닌 거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 인터뷰이 모두, 자신의 세계와 음악에 몰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강했다. 음악이 다른 예술과 다른 지점이다. 청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 음악이다. 문학과 그림, 조각은 작가와 떨어져 단독으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오직 연주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물론 녹음할 수 있지만 인터뷰이들은 공연을 주로 하는 음악가들이다. 음악가들은 세상 혼자 존재하는 듯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데, 그러면서도 자신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가와 가닿고자 하는 열망, 청중에게 가닿고자 하는 열망도 강하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독특한 예술 분야이고, 음악가들은 각기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매번 최상의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 게으름 피울 수 없다. 모두 안다. 그리고 모두 알기 전,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이 안다. 그래서 자신의 게으름을 용납할 수 없다. 고고한 자존심. 그런데 다들 대단하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사람들인데, 시간이 흐르면 사후에 기억될 사람들이 이들 중 몇 명일까. 아주아주 극소수일 뿐일 것이다. 묘한 느낌. 슬픈 듯, 안타까운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으므로 사후에 무슨 의미냐는 생각도 든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미련도, 앙금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앙금 없이 음악을 하며 매 순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 인터뷰집이지만, 거울을 본 느낌이었다. 그들이 아니라, 나를 비춰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내 삶과 내 삶의 방식을,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나는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는 편인데, 이 책은 마음속에 간직하고픈 구절들이 많아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가며 읽었다. 자주 보고, 자주 읽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구절들이 많다. 단순히 소비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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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엽전을 아시는지? 이 엽전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당백전>이다. 그리고 <당백전>과 꼭 함께 나오는 단어가 있으니 한국사 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단어,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탄생한 이후부터 늘 있었다. 왕실의 사치와 방탕으로 국고가 바닥나거나, 대외 불안정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할 때 국가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때 흔히 빠지는 유혹이 화폐 발행이다. 그간 세도 정치로 나라 곳간이 텅비고, 왕실 권위가 추락하자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증건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서구 열강을 막기 위해 군비 확장에 힘을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돈이 필요했다. 흥선대원군은 위험하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유혹은, 명목가치가 실질가치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화폐 발행이었다. <당백전>은 유통은 6개월 만에 금지된다. 조선 팔도,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았던 것이다. <당백전>은 새겨진 숫자 만큼의 가치가 전혀 없음을.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화폐가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온 일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 더 심하다. 
   그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에서 일어났다. 이 사례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성과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왜 얼토당토 않은 나치가 득세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초인플레이션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연쇄적 고리 속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이 전쟁으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전쟁을 일으킬 만큼 무서운 것이다. 


   위 '초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도 장기간으로 볼 때 얄밉고 위험한 건 매한가지다. 힘들 게 번 돈을, 아끼고 쪼개서 겨우겨우 저금했는데, 이 돈을 누군가 야금야금 떼간다! 내 금쪽 같은 돈을!!! 이 돈을 몰래 빼가는 놈이 누구냐?!! 그것은 바로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을 단지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경제에 선순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 정책권자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반대인, 물가 하락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아무도 그 물건을 사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면 더 팔리지 않는다. 내일이면 상품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인데, 바보가 아닌 이상 굳이 오늘 왜 사겠는가. 공장은 망하기 시작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된다.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수 없다. 간신히 버티던 공장도 줄줄이 문을 닫는다. 패닉, 디스토피아. 
   디플레이션의 예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대공황이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손쓰기 힘들기 때문에 정책권자들은 '양적완화'라는 애매하고도 모호한 말을 쓰며, 최악수(最惡手)를 피하기 위해서 두 번째 악수(惡手)인 인플레이션을 선택한다. 화폐를 찍어내는 것이다. 적당한 핑계도 있고, 그나마 쉽게 조절 할 수 있다. 그러나 화폐가 흔해지니, 예전보다 더 많은 화폐를 들고 물건을 사야만 한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물건값은 다 올랐는데, 내 은행 예금은 그대로다. 다른 모든 물가는 다 올랐으므로, 예금액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일견 좋아 보이는 것에는, 그 이면에 그만한 대가가 도사리고 있다. 양적 완화, 인플레이션 등등 그 이면에는 가진 거라고는 약간의 현금밖에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인플레이션의 대가다. 그러니까 중앙은행이 경제를 살린다고 푼 돈의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이 치러야 한다. 서민은 부동산, 유가물 등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며 그나마 조금 화폐를 가지고 있는데, 그마저도 시장에 마구 풀린 돈 때문에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노 벡(外 2명)의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에 관한 책이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짚으면서, 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폐 제조를 좌지우지했던 정치권력들은 늘 인플레이션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고. 이건 과거에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 화폐가 없어진 세상 혹은 다른 유형의 화폐를 쓰는 것도 언급 함) 


   그럼 우리 일반 서민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대책도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대책은 '분산투자'이다.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최선책이 분산투자인 것이다.  안전, 중위험, 고위험 상품 골고루, 서로 상관관계가 떨어지거나 반대의 관계를 가지는 주식이나 상품에 투자하기. 이러면 경제 충격이 와도 상쇄 가능하다. 그러하다. 케인스나 밀턴 프리드먼처럼 복잡한 경제를 꿰뚫어 보고,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초특급 경제 천재'가 등장하지 않는 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분산투자밖에 없다.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거다. 이건 저자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밖에. 그러하자. 




1. 이 책을 읽고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정말로 지구촌 경제가 하나가 됐구나 싶었다. 하나의 배에 올라탄 인플레이션 난민이랄까. 저자가 독일인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같았다. 기시감 뽱뽱. 그만큼 세계 경제가 거의 똑같은 환경에,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한 나라에 리스크가 생기면, 그 여파가 전 세계 전체로 퍼진다. 10년 전, 세계 경제 위기가 또다시 발생하면 그때보다 더 강하고, 광범위하게 세계로 전체로 퍼질 수 있단 거다.

2.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의 특수를 독일도 누렸다는 걸 알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머릿속 어딘가 나뭇가지 하나가 툭 부리진 느낌이 들었다. 깨침, 뭔가 알게 된 느낌.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과 핵으로 무너진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급속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전쟁이 없었어도, 각 나라들의 경제 성장은 당연했겠으나, 한국전쟁은 그 나라들에 정말이지 크나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계속 세계 경제가 안 좋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나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이 네 국가가 우리나라를 빙 둘러싼 채 군침을 질질 흘리며 헐떡이는 굶주린 사냥개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아는 타인이 진정 행복하고 만족하며 잘살길 바라는 사람이 드물고, 역시나 다른 나라가 풍요롭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은 자기 나라 안에서만 안 일어나면, 꽤나 짭짤한 수입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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