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라는 은하에서 - 우리 시대 예술가들과의 대화
김나희 / 교유서가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 예술가와 인터뷰한 기사만 모아 엮은 책이다. 신선함, 새로움.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을 생생하게 들여다본 느낌이다. 


- 인터뷰 하나하나 섬세하면서도 힘이 넘친다. 그리고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들리는 한 개의 목소리가 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 인터뷰어 김나희 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느낀 그 섬세함과 그 힘은, 인터뷰이들의 것일까, 인터뷰어 김나희 씨의 것일까. 

- 총 26명의 인터뷰가 실렸다. 대부분 음악가다. 책의 첫 장에는 박찬욱 등 영화감독과 알랭 바디우처럼 철학자 등의 인터뷰가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는 작곡가, 피아니스트, 첼로니스트, 지휘자, 성악가 등이다. 인터뷰이의 직업이 무엇이든, 모든 인터뷰에는 음악이 꼭 언급되어 있다. 다른 예술 분야에 있어도 모두 음악에 대해 상당히 깊은 지식과 안목, 취향을 자고 있다.

- 각 인터뷰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작곡가 진은숙 씨의 인터뷰를 읽을 땐 그녀가 작곡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와 '에튀드'를 들었고, 백건우 씨의 인터뷰를 읽을 땐 그가 연주한 '슈베르트'를, 피에르로랑 에마르의 기사를 읽을 땐 그의 드뷔시 연주를 들었다. 참 좋은 순간이었다. 인터뷰도 좋았고, 그분들의 곡들도 참 좋았다. 눈으로 글을 읽고, 귀로 음악을 들으며 순간을 만끽했다. 평소 시간을 의식하며 지내는 편인데, 시공간을 넘어 잠시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여행 간 느낌이었다. 

- 인터뷰이들은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대부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영재들이었고, 아주 젊은 나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좀 늦게 유명해졌다고 해도 대부분 20대에 이름을 알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도 매일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인터뷰이에 따라 하루 최소 4~5시간, 보통 6~7시간 연습을 했다. 바쁜 와중에 사진과 미술 등을 취미로 하며 전시회와 책을 내고, 문학책을 읽으며, 철학은 한 편의 생활이었다. 대부분 학창시절 철학과 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수학을 전공할지 말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인터뷰이가 도대체 몇 명이었냐! 하지만 음악을 너무 사랑했기에,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음악을 선택했다. 

음악 없이 살 수 없는 사람들. 음악과 한 몸이 되어 버린 사람들. 그들의 손끝에는 피아노 건반이 있고, 첼로가 있으며, 지휘봉이 있다. 나와 같은 인간인데,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단순히 멋있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의 힘, 섬세함, 멋있음이 뚝 끊어지지 않고,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게 있다. 그러니까 그들만의 멋있음이 아닌 거다. 이런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 인터뷰이 모두, 자신의 세계와 음악에 몰두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상당히 강했다. 음악이 다른 예술과 다른 지점이다. 청중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 음악이다. 문학과 그림, 조각은 작가와 떨어져 단독으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 오직 연주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물론 녹음할 수 있지만 인터뷰이들은 공연을 주로 하는 음악가들이다. 음악가들은 세상 혼자 존재하는 듯 자의식이 상당히 강한데, 그러면서도 자신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가와 가닿고자 하는 열망, 청중에게 가닿고자 하는 열망도 강하다.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정말 독특한 예술 분야이고, 음악가들은 각기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매번 최상의 음악을 들려줘야 한다. 게으름 피울 수 없다. 모두 안다. 그리고 모두 알기 전,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이 안다. 그래서 자신의 게으름을 용납할 수 없다. 고고한 자존심. 그런데 다들 대단하고,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사람들인데, 시간이 흐르면 사후에 기억될 사람들이 이들 중 몇 명일까. 아주아주 극소수일 뿐일 것이다. 묘한 느낌. 슬픈 듯, 안타까운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으므로 사후에 무슨 의미냐는 생각도 든다. 최선을 다한 후에는 미련도, 앙금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앙금 없이 음악을 하며 매 순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 인터뷰집이지만, 거울을 본 느낌이었다. 그들이 아니라, 나를 비춰보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내 삶과 내 삶의 방식을,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보게 되는 책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나는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는 편인데, 이 책은 마음속에 간직하고픈 구절들이 많아서 자를 대고 줄을 그어 가며 읽었다. 자주 보고, 자주 읽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구절들이 많다. 단순히 소비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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