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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엽전을 아시는지? 이 엽전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발행한 <당백전>이다. 그리고 <당백전>과 꼭 함께 나오는 단어가 있으니 한국사 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단어,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탄생한 이후부터 늘 있었다. 왕실의 사치와 방탕으로 국고가 바닥나거나, 대외 불안정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할 때 국가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때 흔히 빠지는 유혹이 화폐 발행이다. 그간 세도 정치로 나라 곳간이 텅비고, 왕실 권위가 추락하자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증건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서구 열강을 막기 위해 군비 확장에 힘을 써야만 했다. 그러니까 돈이 필요했다. 흥선대원군은 위험하지만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유혹은, 명목가치가 실질가치보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화폐 발행이었다. <당백전>은 유통은 6개월 만에 금지된다. 조선 팔도,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았던 것이다. <당백전>은 새겨진 숫자 만큼의 가치가 전혀 없음을.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화폐가 탄생한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온 일이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 더 심하다.
그 시작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독일에서 일어났다. 이 사례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성과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왜 얼토당토 않은 나치가 득세했는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초인플레이션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연쇄적 고리 속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이 전쟁으로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가족을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인플레이션은 전쟁을 일으킬 만큼 무서운 것이다.
위 '초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수준의 인플레이션도 장기간으로 볼 때 얄밉고 위험한 건 매한가지다. 힘들 게 번 돈을, 아끼고 쪼개서 겨우겨우 저금했는데, 이 돈을 누군가 야금야금 떼간다! 내 금쪽 같은 돈을!!! 이 돈을 몰래 빼가는 놈이 누구냐?!! 그것은 바로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을 단지 나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경제에 선순환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 정책권자들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반대인, 물가 하락 '디플레이션'이다. 디플레이션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아무도 그 물건을 사지 않는다. 그래서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면 더 팔리지 않는다. 내일이면 상품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인데, 바보가 아닌 이상 굳이 오늘 왜 사겠는가. 공장은 망하기 시작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된다.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돈이 없어 물건을 살 수 없다. 간신히 버티던 공장도 줄줄이 문을 닫는다. 패닉, 디스토피아.
디플레이션의 예는 1929년에 시작된 경제대공황이다.
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손쓰기 힘들기 때문에 정책권자들은 '양적완화'라는 애매하고도 모호한 말을 쓰며, 최악수(最惡手)를 피하기 위해서 두 번째 악수(惡手)인 인플레이션을 선택한다. 화폐를 찍어내는 것이다. 적당한 핑계도 있고, 그나마 쉽게 조절 할 수 있다. 그러나 화폐가 흔해지니, 예전보다 더 많은 화폐를 들고 물건을 사야만 한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의 물건값은 다 올랐는데, 내 은행 예금은 그대로다. 다른 모든 물가는 다 올랐으므로, 예금액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일견 좋아 보이는 것에는, 그 이면에 그만한 대가가 도사리고 있다. 양적 완화, 인플레이션 등등 그 이면에는 가진 거라고는 약간의 현금밖에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인플레이션의 대가다. 그러니까 중앙은행이 경제를 살린다고 푼 돈의 대가는, 고스란히 서민이 치러야 한다. 서민은 부동산, 유가물 등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하며 그나마 조금 화폐를 가지고 있는데, 그마저도 시장에 마구 풀린 돈 때문에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노 벡(外 2명)의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에 관한 책이다.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짚으면서, 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폐 제조를 좌지우지했던 정치권력들은 늘 인플레이션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다고. 이건 과거에 끊임없이 되풀이 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책의 말미에 화폐가 없어진 세상 혹은 다른 유형의 화폐를 쓰는 것도 언급 함)
그럼 우리 일반 서민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 대책도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대책은 '분산투자'이다.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고, 그나마 최선책이 분산투자인 것이다. 안전, 중위험, 고위험 상품 골고루, 서로 상관관계가 떨어지거나 반대의 관계를 가지는 주식이나 상품에 투자하기. 이러면 경제 충격이 와도 상쇄 가능하다. 그러하다. 케인스나 밀턴 프리드먼처럼 복잡한 경제를 꿰뚫어 보고,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초특급 경제 천재'가 등장하지 않는 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분산투자밖에 없다.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마찬가지인 거다. 이건 저자의 진심어린 조언이다. 그러니 그렇게 할 수밖에. 그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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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을 읽고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정말로 지구촌 경제가 하나가 됐구나 싶었다. 하나의 배에 올라탄 인플레이션 난민이랄까. 저자가 독일인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같았다. 기시감 뽱뽱. 그만큼 세계 경제가 거의 똑같은 환경에,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한 나라에 리스크가 생기면, 그 여파가 전 세계 전체로 퍼진다. 10년 전, 세계 경제 위기가 또다시 발생하면 그때보다 더 강하고, 광범위하게 세계로 전체로 퍼질 수 있단 거다.
2.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의 특수를 독일도 누렸다는 걸 알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 머릿속 어딘가 나뭇가지 하나가 툭 부리진 느낌이 들었다. 깨침, 뭔가 알게 된 느낌.
전쟁으로 초토화된 유럽과 핵으로 무너진 일본은 한국전쟁으로 급속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전쟁이 없었어도, 각 나라들의 경제 성장은 당연했겠으나, 한국전쟁은 그 나라들에 정말이지 크나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계속 세계 경제가 안 좋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나는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이 네 국가가 우리나라를 빙 둘러싼 채 군침을 질질 흘리며 헐떡이는 굶주린 사냥개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 살면서 하나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아는 타인이 진정 행복하고 만족하며 잘살길 바라는 사람이 드물고, 역시나 다른 나라가 풍요롭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나라도 드물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은 자기 나라 안에서만 안 일어나면, 꽤나 짭짤한 수입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