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 5천년 유대인의 위대한 유산
탈무드교육 연구회 지음, 김정자 옮김 / 베이직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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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다 보니 내 마음을 잡아주고, 내가 가는 길의 방향을 잡아줄 뭔가가 필요하다. 이럴 때 많이들 종교를 믿는데, 내 성격상 종교는 전혀 아니다. 나는 도교적 생각이 내 가치관 밑에 깔려있다. '선을 선이라 하면 선이 아니다'라는 믿음이 있다. 종교는 보통 '이러 이러한 것이 옳으니, 이러 이러한 것을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 말부터 그들의 종교가 포용적이지 못하고 배타적이라 주장하는 것 같다. 배타적인 것은 그 자체로 폭력성을 갖고 있다. 폭력성을 가진 종교가 과연 진정한 종교일 수 있을까. 모든 갈등과 분쟁, 폭력은 이 배타성에서 출발한다. 싸우자고 달려들고,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은 종교가 아니다. 종교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을 살려내려 애쓰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종교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종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지리 환경적 영향 아래에서, 생활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반대로 종교가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며 생활을 규율하고, 가치관을 형성해 주는 것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어딘가 타당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거쳐 흐르는 이어져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가 중요하다 생각하고, 좋은 말씀은 받아들이려고 한다. 좋은 말씀은 종교를 넘어 인간 삶에 도움이 되는 철학이자, 도덕 규범이기 때문이다. 종교도 고전(古典)인 것이다. 게다가 늘 새롭게 해석되는 고전. 

   이런 이유에서 『탈무드』를 읽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이 있는지 보려고. 결론은 반은 있었고, 반은 없었다. 내가 어떤 종교 서적을 읽든, 고전을 읽든, 다른 책을 읽든 나머지 반은 언제나 비어 있을 것이다. 이 빈 공간은 내 생각, 내 다짐으로 채워야 하는 공간이다. 


"구백구십구 명의 천사가 그를 반대하더라도 그를 지지하는 오직 한 명의 천사가 있다면 그는 구제될 것이다." (46쪽)

   이 말에 절실히 공감한다. 나도 그랬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 가장 친한 친구와도 많이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너무나도 큰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에게 비난을 받게 되어도, 단 너 혼자만이라도 나란 인간을 믿어준다면 (이 믿음은, 나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다) 나는 구원받은 거라고. 가정법으로 말을 맺었지만, 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모든 사람, 심지어 부모님조차 나를 불신할 때라도 그 친구만은 나를 믿을 것이라고. 저 구절을 읽다가 친구 생각이 나서 울컥. 아무튼 이건 모두 다 마찬가지일 거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살아 있는 동안에 신이 아닌, 미리엘 주교에 의해 구원 받았다. 


사람을 비방하는 자는 누구인가? 남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더라." "내가 들었는데 누구누구가 뭐라고 말하더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설사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남을 비방하는 자들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116쪽)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남의 이야기를 한다. 대부분 좋은 이야기보다는 안 좋은 이야기, 험담이다. 험담의 과보는 어떻게 해서든 돌아온다고 믿는다.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남 험담하는 사람이 과연 만족스럽고 뿌듯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지난 주에 읽었던 『율곡 인문학』에서 율곡 이이 선생 역시 말을 적게 해야 한다고 했다. 남의 험담은 물론이고, 말은 언제나 내 의도와 다르게 어떻게 튈지 모르므로 아껴야 한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갈 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공감하는 바다. 


원수란 무엇이고, 원한은 무엇인가?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낫을 빌리러 가서 거절당했는데 다음 날엔 반대로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도끼를 빌리러 갔을 때 "너는 나에게 낫을 빌려주지 않았어. 나도 너에게 도끼를 빌려주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경우 원수가 된다. 
하지만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도끼를 빌리러 가서 거절당하고 난 다음 날 그 친구가 외투를 빌려달라고 했을 때 "여기 있어. 넌 나에게 도끼를 빌려주지 않았지만 난 너에게 외투를 빌려 줄게. 난 너와 다르니까."라고 말한다면 원한이 생긴다. (120쪽)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라 본다. 그런데 말처럼 쉽게 하긴 어렵지만, 어렵다고 상대가 나에게 한 대로 그대로 대갚음해 주거나, 꼭 말로 꼬집아 말하면 원수가 된다. 원수가 되지 않더라도 상대를 나쁘게 몰아붙이는 말은 반드시 상대방 가슴에 깊숙이 박혀 뽑히지 않는 가시로 남아 있다. 인간은 자기에게 섭섭하게 한 사람, 화를 돋운 사람에게 꼭 앙갚음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쉽게 생기는데, 넓게 보면 둘이 똑같아지고, 서로의 원한, 원망이 도돌이표에 갇혀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세상에 너무나 흔한 윤회의 사슬 아닌가. 누군가 한 명이 먼저 끊어야 한다. 


"이런 순간에도 기도문을 읊으시는 겁니까?"
"나는 항상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살았다. (...) (252쪽)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이 말이 참 좋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그런데 늘 욕심이 스멀스멀, 게으름이 스멀스멀, 망각이 스멀스멀. >ㅁ< 그래도 내 마음은 언제나 뜻을 세워(立志), 그 뜻을 곱씹으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살고 싶다. 


'수십 가닥의 갈대가 뭉쳐 있으면 부러지지 않으며, 한 가닥의 갈대는 어린아이라도 부러뜨릴 수 있다. / 예민한 사람, 쉽게 화내는 사람, 우울한 사람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 두 사람이 말다툼할 때, 먼저 침묵하는 자가 낫다. /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은 사람은 불행이 닥쳐도 피할 수 있어 행복하다.'
정의를 업신여기지 말라. 정의는 세상을 지탱하는 세 가지 힘 중에 하나다. 정의가 무너지면 세상의 기초가 흔들린다. (303-304쪽)

   옳은 말이다. 




   유대인이 오랜 세월에 거쳐 만든 법전이랄까, 각기 상황에 맞는 유대인식판례랄까, 그런 이야기를 모은 책이 바로 『탈무드』이다. 그래서 내용은 쉽고 늘 실생활에서 던진 질문과 답이 적혀 있다. 몇몇 일화, 교훈, 잠언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동의할 수 있다. 

   그래도 특정 종교 책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내용도 있다. 이건 걸러서 읽어야 하지만, 그냥 거르기만 하면 읽은 것이 아까우니까 한 걸음 나아가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그 답을 찾는 것이 좋을 듯이다. 이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관용' 정신이 활짝 꽃 핀다. 

   종교를 떠나서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 '善이라 믿는 것'은 동과 서를 막론하고, 고와 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못해 같다. 이것을 찾아서 나의 삶의 지침으로 삼아야겠다. 


추가 : 
초판 1쇄된 책이라 그런지 오탈자가 꽤 많다. 
지뢰처럼 책 곳곳에 뿌려져 있는 오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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