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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키우는 사람 ㅣ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2년 12월
평점 :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태어난 오렐리앙,
오렐리앙은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라벤더 밭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라벤더 밭을 운영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렐리앙은 어렸을 때부터 금에 대한 취향을 가졌었는데, 어쩌면 고흐를 매혹했던 금빛 찬란한 프로방스의 태양빛과 잎을 내기 전 금빛으로 물결을 치는 라벤더 밭을 보고 자라서 '금',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금색'에 대해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오렐리앙 할아버지에게 금색깔은 보라색인 라벤더색이었습니다.
금을 찾는 삶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는 것을
13쪽
오렐리앙은 성인이 되어 마당 한 편에 조그맣게 꿀벌통을 마련하여 꿀벌들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첫 수확은 꿀 3병밖에 안 되었지만 매년 소소하게 조금씩 더 많이 수확하였고, 3년 차에 접어들어 꽤 큰돈을 벌게 됩니다. 그동안 오렐리앙의 양봉사업에 못마땅하시던 할아버지도 이때만큼은 그의 양봉사업을 인정하고, 동네에서 가장 매력적인 폴린과 결혼하시길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오렐리앙은 아직 꿈을 더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그에게 금은 꿀벌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양봉사업이 순탄하게 잘 커지고 있던 와중에 폭풍이 몰아쳤고, 이때 내려친 벼락이 오렐리앙 마당에 심겨 있던 나무에 떨어집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고, 그 곁에 있던 오렐리앙의 벌통은 화마에 모두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상심했던 오렐리앙.
우연히 할아버지 서재에 있던 책을 한 권 읽게 됩니다. 아프리카로 금을 찾으러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밤, 오렐리앙은 꿈을 꿉니다. 사막을 배경으로, 검은색 눈에 검은색 머리카락, 금빛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는 꿈이었지요. 꿈에서 깬 오렐레앙은 꿈이 자신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짐을 싸서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금을 찾으러 떠나겠습니다."
마르세유로 배를 타러 가는 길에, 아를에서 한 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붉은 머리의 광기 어린 모습을 지닌 화가였습니다. 오렐리앙은 그에게 끌렸고, 꿈속에서 봤던 여인을 그려 달라고 합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려줍니다. 오렐리앙이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는데도, 화가는 꿈속에서 봤던 여인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어쩌면 화가와 오렐리앙이 같은 금을 좇고 있어서 통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렐리앙은 아프리카 땅에 도착한 후 사막을 횡단하는데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도 얻습니다. 어느 때엔 삶보다 생존의 욕구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죠. 사막에서는 한 방울의 물이 한 덩이의 금보다 더 갚질 때가 많으니까요.
그날 밤, 오렐리앙은 사막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죽음의 순간에만 들 법한 생각을 했다. 삶이란 결국 한줄기 실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시는 기쁨보다 갈증 해소의 욕구가 언제나 더 강력한 것임을 이해하는 날, 사는 기쁨보다 생존 욕구가 언제나 더 아름다운 것임을 이해하는 날과 같은 날들로 짜인 금실. 그는 결코 그 실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95쪽
우여곡절 끝에 오렐리앙은 하라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족장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족장의 이름은 마코넨. 마코넨은 오렐리앙의 눈에서 자신의 눈빛을 봅니다. 꿈을 좇는 사람... 오렐리앙은 꿈인 금을 좇는 사람이었지요. 마코넨은 그를 이해하고, 그 지역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다고 배려해 줍니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을 결코 이곳에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때 검은 눈,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 마코넨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렐리앙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그녀에게 매혹됩니다. 그가 찾던 금이 바로 그녀임을 안 것이지요.
그녀 시선에 사라졌던 찌르는 통증이 오렐리앙의 내면에서 되살아났다. 꿀벌에 쏘여 생긴 통증 같았는데, 독침을 뺄 길 없는 사람의 고통이었다.
103쪽
오렐리앙은 매일같이 마코넨을 찾아가,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달라고 합니다. 마코넨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3일째 되던 날. 3일 이상 거짓말할 수 없는 그곳의 법에 따라, 마코넨은 오렐리앙에게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이야기해 줍니다. '꿀벌들의 나라', 하라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절벽 위에 그녀와 그녀 부족이 살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오렐리앙에게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다시 설득하지만, 인생의 금을 찾기 위해 평생 노력해온 오렐리앙에게 그 충고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무엇이 마코넨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마코넨은 오렐리앙에게 꿀벌의 모양으로 다듬어진 금덩이 2개를 그에게 줍니다. 금을 좇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금이지만, 그 금을 가지고 오렐리앙이 크게 기뻐하거나 어떤 의미 부여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지고 떠납니다. 오렐레앙은 항상 금을 추구했지만, 금 자체를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오렐리앙은 르파랑지라는 프랑스인이 이끄는 상단에 합류해 '꿀벌의 나라'까지 갑니다. 역시 힘들게 그곳까지 도착합니다. 그곳은 고원지대로, 사막에 우뚝 솟은 절벽이었습니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니 사막 한가운데 물이 있고, 웅웅 거리는 벌 소리가 들립니다. 거기서 검은 눈, 검은 머리의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갈라족의 여왕이었습니다. 마치 여왕벌처럼 군림합니다. 그녀는 꿀을 듬뿍 찍은 과일을 먹고, 오렐리앙에게도 꿀을 찍은 과일을 먹입니다. 오렐리앙은 현혹된 듯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합니다. 그날 밤 그와 그녀는 하나가 됩니다.
그녀는 끈질기게 사랑에 집착하며 두 눈으로 그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135쪽
하지만 다음날 아침, 여왕과 부족 사람들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꿀벌들처럼요.
그 부족은 오직 1년에 단 하루, 꿀을 채취하기 위해 그 절벽에 나타났습니다. 그 외의 364일 동안에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렐리앙이 그 부족과 만났던 그 하루를 제외하고는, 그 부족 인과 마주치면 죽임을 당한다고 해요.
오렐리앙은 여왕이 남긴 역시나 꿀벌 형상의 금덩이를 가지고 다시 하라르로 돌아갑니다.
마코넨은 오렐리앙이 살아와 놀랍니다. 오렐리앙은 그에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만 마코넨도 몰라서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렐리앙은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생각해 프랑스로 떠납니다.
프랑스로 가는 길에 오렐리앙과 비슷한 꿈에 대한 광기 어린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이폴리트 루아죌입니다.
이폴리트 루아죌은 오렐리앙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듣고, 거기에서 자기 이름을 영원히 남길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렐리앙을 찾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오렐리앙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첫해에는 역시나 소박하게 양봉업을 했는데, 다음 해 약속대로 이폴리트가 왔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오렐리앙이 사막에서 보았던 '꿀벌들의 나라'를 구현합니다. 엄청난 돈을 들였는데 그 엄청난 돈들이 몇 달 만에 없어지고 맙니다. 추가로 대출도 받았습니다. 고생고생했지만 그들에게 꿈이 있어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양봉장을 만들었습니다. 첫 꿀 수확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광경을 보고, 공연도 봅니다. 모든 사람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하지만 2달 후 2번째 수확 시기가 되었을 때.... 그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걸 다 잃고 맙니다.
벌집과 벌통까지 먹어치우는 벌집나방이 오렐리앙 벌통 속에 순식간에 증식을 해서 꿀벌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패자, 빚더미에 오른 자들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오렐리앙이 아프리카에서 받아온 금 한 덩이를 팔아 급한 돈은 해결했고, 나머지는 계속 상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꿈으로 광기 어렸던 이폴리트의 눈은, 슬픔으로 흐려진 채 프로방스를 떠납니다.
그리고 이듬해 오렐리앙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오렐리앙은, 그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전에 썼던 적 없는 나무로 벌통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오렐리앙은 그를 한결같이 기다리던 폴린과 행복하게 함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칩니다. 폴린이 바로 금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요.
막상스 페르민의 『꿀벌 키우는 사람』은 그의 3부작의 마지막 소설입니다.
금색(=꿀색)에 대한 이야기로, 한 남자가 본인의 금을 찾기 위해 집에서 애쓰고, 사막으로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동업자와 모험을 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줄거리만 보면 속물적인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으나, 실제로는 매우 서정적인 소설입니다. 실제 프랑스 원서로 읽으면 시와 산문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글이라고 하는데, 제가 읽은 책은 번역본이라 그런지 원어로만 느낄 수 있는 시적 리듬감은 없어서 시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책의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강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리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오렐리앙이 사막에서 몇 날 며칠 물을 마시지 못해 심한 갈증에 시달릴 때, 한 방울의 물이 금보다 더 귀할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데요, 어쩌면 (나만의 억지일지도 모르겠으나) 늘 오렐리앙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주고 지지했던 폴린이 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단장은 태양이 뜨기 전 어떤 뿌리에 맺혀 있던 이슬 몇 방울을 얻는 데 성공했다.
"자, 받아. 각자 세 방울씩이야." 단장이 말했다.
오렐리앙은 이슬을 입술로 가져갔다. 이슬 몇 방울이 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96쪽.
어쩌면, 우리의 금은 우리의 매우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금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여기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거나 우리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깨닫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다시 집으로 올 걸 왜 그 먼길을 떠난 것이냐' 반문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역시도, 르파랑지가 했던 말처럼 "우연이라는 것 없"기 때문에 진정 금의 의미와 금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겪어야 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온 나 자신은 예전과 달라져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