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수어사이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8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 옮김 / 민음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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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1993년 데뷔작.

1970년대 미시간주 외곽지역 중산층 동네를 배경으로 다섯 자매의 자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소설에 대칭하는 실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20대였을 때, 본인 조카를 봐주던 15세 베이비시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소녀가 아무렇지 않게 '언니들이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하였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그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무력감을 느꼈는데 그 느낌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듣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본인의 반응, 감정 등을 소설 속 주변 인물들에 투사하고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해 쓴 이야기이다.



소설은 독특하게 '1인칭 복수 관찰자' 시점으로 그려진다.  '1인칭 복수 관찰자'라는 시점이 생소하나 저자가 시점을 영리하게 잘 선택한 것 같다. 


이 소설은 다섯 자매의 집 근처에 사는 대여섯 명의 소년들의 시각(화자)에서 그려지는데, '우리'라는 무리 또는 특정 사람의 '이름'만 나오지, '나'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우리'만 있고, '나'는 없다. '1인칭 복수'이던가, '3인칭 단수'이다. 누군가 충격적인 행동을 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 이웃 사람과 친구들은 집단적으로 충격을 받고 집단화하여, 집단적으로 묘한 행동을 하며, 집단적으로 당사자들을 관찰하며 책임은 모호해지는데 저자가 이 집단적 모습을 잘 파악하였고 화자의 시점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이 집단적 성향은 누가 의식적으로 모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녀들이 자살한 이유나 원인은,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해서 알아내려고 해도 결코 알아낼 수 없다(화자나 독자 모두 마찬가지다). 자살 이유나 원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서로 이야기하고 증거를 수집해 이유와 원인을 알아내야 하는데도,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할수록 '사실과 진실'에 가까워지기는커녕 더 혼란해져서 '사실과 진실'과 더욱 멀어지게 된다. 


거기에 있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른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그건 타인(소녀들의 부모를 포함해 화자인 소년들, 동네 이웃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들이 소녀가 하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 채 관음증 환자처럼 소녀들의 육체나 외모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실제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다못해 그녀들의 일상은 어떤지 모두가 무관심했다. 언론에서 말하는 엉터리 기사만을 믿고서 거기 맞춰서 소녀들을 각색하며 모두가 '진실'에서 멀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자매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된 것이다. 





/ 줄 거 리 / 


1970년 대 미시간주 어느 외곽 지역 중산층 동네.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리즈번' 선생님은 아내와 다섯 딸아이들과 살았다. 딸들의 이름은 터리즈(17), 메리(16), 보니(15), 럭스(14), 서실리아(13)였다. 이들이 사는 집은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딸들은 점점 자라자 대가족이 살기에 좁다 느껴져 집을 팔고 다른 데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던 즈음, 


어느 날 막내딸 '서실리아'가 욕실에서 자살 시도를 한다. 


마침 리즈번 씨네 딸이 어떻게 사는지 몰래 훔쳐보려고 왔던 '폴 발디노'라는 깡패 같은 아이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골든타임 안에 신고하면서 서실리아는 목숨을 건진다. 


서실리아와 상담한 정신과 의사는 '아이가 성(性)적으로 억압되어 있다'면서 아이에게 좀 더 개방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부모는 서실리아를 위해 자그마한 홈 파티를 열고, 동네 남자아이들을 초대한다. 서실리아는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놀다가 중간에 엄마 허락을 받고 본인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 후 그길로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그곳에 있던 사람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충격을 받는데, 그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아무도 조의를 표하지 않았다. 며칠 지나서 누군가 한 명이 조의를 표하니 곧이어 리즈번 씨 집 거실이 가득 차서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화한이 도착한다. 이웃 모두들 어린 소녀의 죽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 몰랐던 것이다. 



리즈번 씨 다섯 자매는 정말 예뻤다. 웃을 때 너무 많은 치아가 보인다는 점(이게 단점일 정도로 단점이 없다는 말)만 빼면, 남자들이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외모를 가졌다. 또래 남자들은 물론, 동네 남자들이나 칼 가는 행상인까지 리즈번 씨네 집을 얼쩡거리며 소녀들을 훔쳐보고 관찰하는데, 웃기게도 그렇게 훔쳐보면서도 누가 럭스인지 누가 메리인지 자매들을 구분하지 못한다. 10년 넘게 훔쳐보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모를 만큼 진심 어린 관심은 없었던 것이다. 


자매들 한 명 한 명 모두 다르게 생겼고, 키도 30cm 차이 날 정도 다르고, 취미도 취향도 제각각이지만 외모에 눈이 가려 정작 자매들의 진짜 얼굴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다. (유일하게 트립 폰테인만 구분하는데 트립은 럭스에게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근데 트립 폰테인도 '럭스'만 알아보았을 것이다) 



서실리아가 죽은 후 자매들의 엄마는 세상과 단절한다. 모든 일에서 손을 뗀다. 늘 관리하던 잔디밭은 무성한 수풀이 되어가고, 집안엔 커다란 먼지 덩어리가 굴러다닌다. 빨래도 전혀 하지 않고, 세제도 사지 않아서 자매들은 물과 재스민 향이 나는 비누로만 빨래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리즈번 씨네 집에서 기묘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원래도 보수적이고 냉랭했던 엄마는 자매들을 집에 가두고 방치하게 되는데 남아 있던 4명의 자매들은 이에 압박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럭스에게 반한 '트립 폰테인'이라는 남학생이 리즈번 부부를 설득하여 자매 4명과 파티에 가게 되고, 자매들은 그 나이 또래 여느 여학생들처럼 웃고 즐기며 남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 남자애들은 다시금 자매들이 다 다르게 생겼다는 것과, 자매들이 다른 여학생들과 다를 게 없이 비슷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날, 파티가 끝나고 럭스는 트립 폰테인과 둘만 남아서 시간을 보내던 도중 "난 항상 일을 망쳐 버려. 항상 그래"라는 말을 하고 흐느낀다. 이 순간 럭스를 좋아했던 트립 폰테인은 이때 갑자기 럭스에게 질려서 혼자 집에 가 버린다. (아, 이때 럭스가 받은 상처와 세상에 대한 단절감이 얼마나 컸을까) 


다른 언니들보다 집에 늦게 도착한 럭스는, 설상가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순간 간파(술냄새)한 엄마에게 혼나게 되고, 이때를 기점으로 4명의 자매는 집에 감금되어 학교에도 못 가게 된다. 외부와의 완전한 단절이 시작된 것이다. 6주일 후에는 아버지 리즈번 씨마저 학교에서 해고당하며 리즈번 가족 모두 두문불출하게 된다. 



집에 감금된 후에도 자매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과학에 관심 많았던 첫째 터리즈는 열심히 과학 실험을 하고 자연을 관찰했으며, 둘째 메리는 외모를 자기 나름대로 가꾼다. 셋째 보니는 막내 서실리아를 위해 기도하였고, 넷째 럭스는 어떻게 외부와 연락했는지 매일 밤 남자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지붕에서 관계를 한다. 이 모든 광경을 건너편 집에 사는 사람들은 지켜본다. 불을 끈 채로. 


그럼에도 자매들은 알고 있었다. 건너편에 사는 남자아이들이 자기들을 훔쳐보고 있다는걸. 자매들은 남자아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 집에서 도망칠 거라고... 그러니 우리 좀 도와달라고.


남자아이들은 정의감에 불타올라 리즈번 씨네 자매들의 대탈출을 도우러 새벽에 달려가는데... 실제로는 자매들의 자살 목격자가 되었다(메리는 이때 살아났지만, 서실리아처럼 한 번 더 시도하였고 성공한다). 애초에 자매들은 집 외부로 도망칠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단지 죽은 후 신고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다시금 모두 충격을 받았다. 리즈번 부부는 집을 팔고 떠나 이혼하였고, 동네 사람들은 처음엔 충격받았다가 점점 리즈번 자매들을 잊어갔다. 그렇게 20년이 흘러 1990년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밝은 미래만 있을 것 같았던 지역은 쇠락하였다. 


그럼에도 리즈번 자매를 결코 잊지 못했던 '우리'들은 그 소녀들이 왜 자살했는지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다시 소녀들의 물건을 찾아보고 어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서 인터뷰한다. 


아무리 꼼꼼하게 자료 수집하고 인터뷰하여도 자매의 죽음엔 결코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다. 왜냐면 당시 리즈번 자매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리즈번 자매의 아름다움만 봤지, 진짜 소녀들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고, 소녀들의 진짜 모습도 누구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퍼즐의 빈 공간만을 남겨둔 채 씁쓸하게 소설은 끝이 난다. 



/ 내 생각 / 


① 화자는, 독자들이 리즈번 자매 엄마에게 편견을 갖도록 유도한다. 책에 다수의 장치(떡밥)가 있다. 나도 처음에 읽을 때는 보수적 엄마에게 시달리다가 자매들이 자살한 건 아닐까 생각하였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읽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리즈번 자매의 엄마는 그냥 보통의 엄마였다. 


소설 마지막에 가서 그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화자들이 뒤지고 막 훔쳐 가는데, 거기에 나온 쓰레기에는 자매들의 '키'를 표시한 거라든가, 자매들이 아플 때 썼던 체온계라든가 그런 것들이다. 리즈번 자매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지매들을 키웠다. 


럭스가 남자아이들 앞에서 다리를 벌리거나 테이블에 다리를 올릴 때면 엄마가 탁탁 쳐서 다리를 내리게 했고(이건 엄마로서 당연한 행동 아닌가?!), 럭스에게 홀터넥을 입지 못하게 한 것도 마찬가진데 그 홀터넥은 그냥 천 쪼가리에 불과해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한쪽 젖가슴이 그대로 옆으로 다 삐져나왔다. 이 정도 옷이라면 보통의 엄마들은 다 못 입게 할만하지 않은가. 


남자애들 눈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들 부모라면 다 엄격해 보이고 보수적이며, 빌런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화자들이 리즈번 자매들을 스토킹하고 관음하는 남자애들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이 애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리즈번 씨네 집 근처 나무에 오두막을 만들고 창문을 뚫어서 자매들을 훔쳐보았고, 벽엔 자매들 사진을 붙여 놓았고, 자매들 물건도 훔쳤다. 이건 거의 뭐 범죄 수준 아닌가?!  (이러면서 리즈번 자매 얼굴은 잘 구분 못함)  


- 그리고 서실리아 시신을 묻기 전 마지막으로 엄마가 서실리아를 보는데 시신 앞에서 엄마는 "얘 손톱 좀 봐" "손톱 좀 어떻게 해 줄 수 없었나?"라고 말한다. 이 말만 떼서 보면 엄마가 신경질적이고 나쁜 거 같아 보인다. 하지만 당시 묘지 관련 인부들이 파업을 했고, 장례식도 얼렁뚱땅 치르게 되었다(장지 마련도 힘들었음). 사랑하는 딸을 잃고 땅에 묻는 사람으로서 이 정도 안타까움은 토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는 이 말만 떼어서 읽으면, 이 엄마가 딸의 죽음이 아닌 손톱 같이 사소한 것에만 신경 쓴다고 엄마를 욕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리즈번 부부는 집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는데, 딸들도 그렇고 동네 남자들이 자기 딸을 훔쳐본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리즈번 자매는 확실히 알고 있었음) 게다가 서실리아의 첫 번째 자살 시도 때도 딸아이들을 훔쳐보기 위해 홍수 방지용 배수로를 타고 집에 몰래 들어온 남자아이가 발견했다. 그리고 서실리아의 마지막 자살시도 역시 동네 남자아이들을 초대했을 때였다. 딸의 자살 시도 땐 항상 외부 남자애들이 있었으므로 리즈번 부인이 집 문을 닫고 아무도 들이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된다. 누구라도 부모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소설 속에 부모에게 '억압된 성(性)' 운운하며 말한 정신과 의사의 말만 믿고 보면, 부모가 나빠 보이는데, 정신과 의사는 그냥 당시 유행하던 이론에 추종하여 진단을 내릴 뿐, 진짜 서실리아가 자살한 이유, 그 부모가 딸을 보호하기 위해 정말로 해야 할 일 같은 건 1도 몰랐다. 그래서 리즈번 가족들이 병원이나 상담을 기피하게 된 것도 있다고 본다. 


조문 온 사람들 역시 제각각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조문을 위해 손님 2명이 음식을 가져왔는데, 손님 중 한 명은 음식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도 보는 앞에서 리즈번 부인이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버리더라고 기억하고, 또 다른 한 명은 그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대화했었다고 기억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음식에 대한 기억인데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누구의 기억이 옳은 걸까. 리즈번 부인은 할 만큼 예의를 다 차렸는데도, 리즈번 부인을 나쁜 사람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기억까지 조작한 건 아닐까. 



② 자매들의 자살 이유

서실리아는 원래도 특이한 아이였다. 자살에 특별한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실리아의 일기는 점점 현실과 멀어졌고, 누구도 자살의 이유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현실과 동떨어진 아이였다. 하지만 나머지 자매들은 달랐다. 집단 자살 시도 3일 전 터리즈는 '브라운 대학'에 입학하려고 준비까지 했다. 집에 감금된 상태에 있을 때도 좋아하는 과학과 자연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소설을 읽어보면, 리즈번 부인이 아이들을 감금했다고 하지만 이때도 아이들은 학교에 출석했다. 아이들은 원래 제각기 친구가 있었지만 서실리아가 죽은 후 단짝 친구라는 아이도 이 자매들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남자아이들만이 유일하게 관심을 보였지만, 그건 진짜 교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예쁘니까 껄떡대는 수준이었다. 


메리는 고민이었던 치아를 교정하기 위해 치과에 방문해도 치과 선생은 딱 잘라 엄마 모셔 오라고 말하고 나가 버리고(진짜 죽고 싶었던 아이라면 치아 교정을 하려고 했을까), 럭스는 유일하게 트립 폰테인에게 마음을 열고 자기 속마음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트립은 그 순간 질려서 혼자 집에 가버린다(럭스는 다른 남자들과는 '대화'라고 할 만한 것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보니는 단지 서실리아를 추모하려고 한 것일 뿐인데 지방 신문과 이웃 사람들은 보니가 뭔가 미스터리한 강령술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며, 리즈번 부부는 매일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고 비난받아야 했다. 


리즈번 씨 집을 방문한 성당 신부님은 자매들이 오랫동안 씻지 않은 사실에 뜨악하고 경악하지만, 자매들이 오랫동안 씻지 못했던 이유는 서실리아가 욕실에서 자살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신부님까지도 아이들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한 채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행동만을 보며 뜨악해 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모두가 자매를 지켜보지만 모두가 자매들에게 무관심하다. 고립은 집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리즈번 부인은 아이들이 밖에서 너무 힘드니까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고 한다) 고립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서실리아의 뒤를 따르는 것뿐이었을 것 같다. 


모두가 알게 모르게 자매들을 그 길로 끌고 간 것이다. 



​/ 마 무 리 /



책 여백에 럭스는 이렇게 썼다. "난 여기서 나가고 싶어." 그 소망은 어디까지를 의미했던 걸까? 돌이켜 보니 리즈번 자매들은 늘 우리에게 말을 걸면서 우리의 도움을 받고 싶어 했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귀담아듣지를 못했다. 너무 뚫어지게 쳐다본 나머지 정작 우리를 바라보는 그들이 시선은 놓쳤던 것이다. 그 애들이 달리 누구에게 의지할 수 있었겠는가? 부모도 아니고, 이웃도 아니었다. 그들은 집 안에서는 죄수였고, 밖에서는 문둥병 환자였다. 그리하여 리즈번 자매들은 누군가 - 우리-가 그들을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며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렸던 것이다. - 258쪽

리즈번 자매와 똑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비록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뉴스나 보도로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 당혹, 씁쓸함...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잊게 되고, 그러다가 비슷한 일이 또 생기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잊게 되고, 그러다가 비슷한 일이 또 생기고 또..... 


이 고리를 끊고 옆에 다만 있어 줄 사람만 있어도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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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1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전2권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6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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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재밌어요. 읽기 전에 괜히 주눅들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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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 매키넌 지음, 김하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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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으로 모두 동의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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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키우는 사람 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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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태어난 오렐리앙,


오렐리앙은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라벤더 밭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할아버지가 라벤더 밭을 운영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렐리앙은 어렸을 때부터 금에 대한 취향을 가졌었는데, 어쩌면 고흐를 매혹했던 금빛 찬란한 프로방스의 태양빛과 잎을 내기 전 금빛으로 물결을 치는 라벤더 밭을 보고 자라서 '금',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금색'에 대해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오렐리앙 할아버지에게 금색깔은 보라색인 라벤더색이었습니다. 


금을 찾는 삶 속에서 자유롭고 행복하리라는 것을

13쪽

오렐리앙은 성인이 되어 마당 한 편에 조그맣게 꿀벌통을 마련하여 꿀벌들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첫 수확은 꿀 3병밖에 안 되었지만 매년 소소하게 조금씩 더 많이 수확하였고, 3년 차에 접어들어 꽤 큰돈을 벌게 됩니다. 그동안 오렐리앙의 양봉사업에 못마땅하시던 할아버지도 이때만큼은 그의 양봉사업을 인정하고, 동네에서 가장 매력적인 폴린과 결혼하시길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오렐리앙은 아직 꿈을 더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전히 그에게 금은 꿀벌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양봉사업이 순탄하게 잘 커지고 있던 와중에 폭풍이 몰아쳤고, 이때 내려친 벼락이 오렐리앙 마당에 심겨 있던 나무에 떨어집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고, 그 곁에 있던 오렐리앙의 벌통은 화마에 모두 재로 변해버렸습니다. 


상심했던 오렐리앙. 


우연히 할아버지 서재에 있던 책을 한 권 읽게 됩니다. 아프리카로 금을 찾으러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밤, 오렐리앙은 꿈을 꿉니다. 사막을 배경으로, 검은색 눈에 검은색 머리카락, 금빛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는 꿈이었지요. 꿈에서 깬 오렐레앙은 꿈이 자신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짐을 싸서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금을 찾으러 떠나겠습니다."

마르세유로 배를 타러 가는 길에, 아를에서 한 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붉은 머리의 광기 어린 모습을 지닌 화가였습니다. 오렐리앙은 그에게 끌렸고, 꿈속에서 봤던 여인을 그려 달라고 합니다. 화가는 그림을 그려줍니다. 오렐리앙이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는데도, 화가는 꿈속에서 봤던 여인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어쩌면 화가와 오렐리앙이 같은 금을 좇고 있어서 통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렐리앙은 아프리카 땅에 도착한 후 사막을 횡단하는데 거기서 새로운 깨달음도 얻습니다. 어느 때엔 삶보다 생존의 욕구가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죠. 사막에서는 한 방울의 물이 한 덩이의 금보다 더 갚질 때가 많으니까요. 


그날 밤, 오렐리앙은 사막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죽음의 순간에만 들 법한 생각을 했다. 삶이란 결국 한줄기 실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시는 기쁨보다 갈증 해소의 욕구가 언제나 더 강력한 것임을 이해하는 날, 사는 기쁨보다 생존 욕구가 언제나 더 아름다운 것임을 이해하는 날과 같은 날들로 짜인 금실. 그는 결코 그 실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95쪽

우여곡절 끝에 오렐리앙은 하라르라는 곳에 도착합니다. 그곳은 족장이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족장의 이름은 마코넨. 마코넨은 오렐리앙의 눈에서 자신의 눈빛을 봅니다. 꿈을 좇는 사람... 오렐리앙은 꿈인 금을 좇는 사람이었지요. 마코넨은 그를 이해하고, 그 지역 어느 곳에나 갈 수 있다고 배려해 줍니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을 결코 이곳에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때 검은 눈,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성이 마코넨을 만나러 왔습니다. 오렐리앙은 그녀의 눈빛을 보고 그녀에게 매혹됩니다. 그가 찾던 금이 바로 그녀임을 안 것이지요.


그녀 시선에 사라졌던 찌르는 통증이 오렐리앙의 내면에서 되살아났다. 꿀벌에 쏘여 생긴 통증 같았는데, 독침을 뺄 길 없는 사람의 고통이었다.

103쪽


오렐리앙은 매일같이 마코넨을 찾아가,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 달라고 합니다. 마코넨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던 3일째 되던 날. 3일 이상 거짓말할 수 없는 그곳의 법에 따라, 마코넨은 오렐리앙에게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이야기해 줍니다. '꿀벌들의 나라', 하라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절벽 위에 그녀와 그녀 부족이 살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오렐리앙에게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다시 설득하지만, 인생의 금을 찾기 위해 평생 노력해온 오렐리앙에게 그 충고는 무의미할 뿐입니다.


무엇이 마코넨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마코넨은 오렐리앙에게 꿀벌의 모양으로 다듬어진 금덩이 2개를 그에게 줍니다. 금을 좇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긴 금이지만, 그 금을 가지고 오렐리앙이 크게 기뻐하거나 어떤 의미 부여는 하지 않습니다. 그냥 가지고 떠납니다. 오렐레앙은 항상 금을 추구했지만, 금 자체를 원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오렐리앙은 르파랑지라는 프랑스인이 이끄는 상단에 합류해 '꿀벌의 나라'까지 갑니다. 역시 힘들게 그곳까지 도착합니다. 그곳은 고원지대로, 사막에 우뚝 솟은 절벽이었습니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니 사막 한가운데 물이 있고, 웅웅 거리는 벌 소리가 들립니다. 거기서 검은 눈, 검은 머리의 그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갈라족의 여왕이었습니다. 마치 여왕벌처럼 군림합니다. 그녀는 꿀을 듬뿍 찍은 과일을 먹고, 오렐리앙에게도 꿀을 찍은 과일을 먹입니다. 오렐리앙은 현혹된 듯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합니다. 그날 밤 그와 그녀는 하나가 됩니다. 


그녀는 끈질기게 사랑에 집착하며 두 눈으로 그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135쪽

하지만 다음날 아침, 여왕과 부족 사람들은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꿀벌들처럼요. 


그 부족은 오직 1년에 단 하루, 꿀을 채취하기 위해 그 절벽에 나타났습니다. 그 외의 364일 동안에는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렐리앙이 그 부족과 만났던 그 하루를 제외하고는, 그 부족 인과 마주치면 죽임을 당한다고 해요. 


오렐리앙은 여왕이 남긴 역시나 꿀벌 형상의 금덩이를 가지고 다시 하라르로 돌아갑니다. 


마코넨은 오렐리앙이 살아와 놀랍니다. 오렐리앙은 그에게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만 마코넨도 몰라서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렐리앙은 이제 집에 갈 때가 되었다 생각해 프랑스로 떠납니다. 


프랑스로 가는 길에 오렐리앙과 비슷한 꿈에 대한 광기 어린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이폴리트 루아죌입니다. 


이폴리트 루아죌은 오렐리앙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듣고, 거기에서 자기 이름을 영원히 남길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렐리앙을 찾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오렐리앙은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첫해에는 역시나 소박하게 양봉업을 했는데, 다음 해 약속대로 이폴리트가 왔습니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오렐리앙이 사막에서 보았던 '꿀벌들의 나라'를 구현합니다. 엄청난 돈을 들였는데 그 엄청난 돈들이 몇 달 만에 없어지고 맙니다. 추가로 대출도 받았습니다. 고생고생했지만 그들에게 꿈이 있어서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대규모 양봉장을 만들었습니다. 첫 꿀 수확 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어 그 광경을 보고, 공연도 봅니다. 모든 사람이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돕니다. 하지만 2달 후 2번째 수확 시기가 되었을 때.... 그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걸 다 잃고 맙니다. 


벌집과 벌통까지 먹어치우는 벌집나방이 오렐리앙 벌통 속에 순식간에 증식을 해서 꿀벌이 단 한 마리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패자, 빚더미에 오른 자들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오렐리앙이 아프리카에서 받아온 금 한 덩이를 팔아 급한 돈은 해결했고, 나머지는 계속 상환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꿈으로 광기 어렸던 이폴리트의 눈은, 슬픔으로 흐려진 채 프로방스를 떠납니다. 

그리고 이듬해 오렐리앙의 할아버지도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오렐리앙은, 그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전에 썼던 적 없는 나무로 벌통을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오렐리앙은 그를 한결같이 기다리던 폴린과 행복하게 함께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칩니다. 폴린이 바로 금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요. 



막상스 페르민의 『꿀벌 키우는 사람』은 그의 3부작의 마지막 소설입니다. 


금색(=꿀색)에 대한 이야기로, 한 남자가 본인의 금을 찾기 위해 집에서 애쓰고, 사막으로 떠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동업자와 모험을 한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줄거리만 보면 속물적인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으나, 실제로는 매우 서정적인 소설입니다. 실제 프랑스 원서로 읽으면 시와 산문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는 글이라고 하는데, 제가 읽은 책은 번역본이라 그런지 원어로만 느낄 수 있는 시적 리듬감은 없어서 시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책의 결말에 대해 호불호가 강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리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오렐리앙이 사막에서 몇 날 며칠 물을 마시지 못해 심한 갈증에 시달릴 때, 한 방울의 물이 금보다 더 귀할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는데요, 어쩌면 (나만의 억지일지도 모르겠으나) 늘 오렐리앙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주고 지지했던 폴린이 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되는 결말이기도 합니다. 


다음날, 단장은 태양이 뜨기 전 어떤 뿌리에 맺혀 있던 이슬 몇 방울을 얻는 데 성공했다. 

"자, 받아. 각자 세 방울씩이야." 단장이 말했다.

오렐리앙은 이슬을 입술로 가져갔다. 이슬 몇 방울이 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96쪽.


어쩌면, 우리의 금은 우리의 매우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금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여기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거나 우리가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깨닫는 그 무엇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다시 집으로 올 걸 왜 그 먼길을 떠난 것이냐' 반문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역시도, 르파랑지가 했던 말처럼 "우연이라는 것 없"기 때문에 진정 금의 의미와 금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겪어야 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원점으로 돌아온 나 자신은 예전과 달라져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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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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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의 단편집. 출판사에서 선정한 소설 3개와 김윤식, 신경숙, 김애란 작가가 각각 박완서 님 작품 중에서 한 편씩 골라 실은 책이다. 


박완서 작가는 1930년 대에 태어나 현대사를 몸소 겪어 살아내신 분들이다.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면서 다른 삶을 살았고, 박완서 작가는 당신이 쓰실 수 있는 글을 적어 내셨다. 오랫동안 가정주부로 있다가 아이들 학교 보낸 후인 마흔에 접어들 무렵 작가가 되셔서 그런지 어딘가 20세기식 규방문학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님이 연대별로 쓰신 글만 봐도, 우리 현대사를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말에 해당하는 1930년대와 40년대, 그리고 한국전쟁, 전쟁 직후 온 난리 통에 성공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성공하려면 서울로 서울로!'라는 믿음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촘촘히 움직였고, 개발독재와 군사정권 말기, 그리고 완전 달라진 새 천년의 시대... 글이 다룬 시대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정말 맞다. 10년을 주기로 대한민국은 휙휙 바뀌어갔고, 시대와 세대에 따라 엄청난 괴리감이 느껴진다. 


단편집 제목을 따온, 이 책의 수록 소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전통을 받들고, 새 세대 치이는 낀 세대를 잘 보여준다. 박완서 작가보다 조금 아래 연배이신 '김수현 드라마 작가'님의 드라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을 흐르고 흘러, 이런 이야기도 이제 옛날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가 2008년에 발표되었는데, 발표된 지 현재 15년이 흘렀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와 동년배이신 분들의 이미 많이 돌아가셨고 살아계시다고 하여도 그리 사실 날이 머지않았다. 「카메라와 워커」에 나오는, 자식뻘 되는 조카들이 이제는 일흔 살을 넘겼고, 꾸역꾸역 자기 윗세대들의 빈자리를 메우거나 함께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시기 때문이다. 옛날이야기들.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는 자전적 소설이다. 박완서 작가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사랑받았던 일, 엄마의 학구열로 서울 학교에 입학한 일, 한국전쟁으로 삼촌과 오빠를 잃은 일, 남편을 만나 안정된 생활을 꾸리고, 중산층 삶으로 들어간 일, 모두들 기쁨과 즐거움에 들떠 있던 1988년 남편에 이어 막내아들을 잃은 일 등. 마음이 아리는데, 이 모든 아픔과 슬픈 일들도 지나가고 결국엔 잊히며, 이 글을 쓰는 작가도 죽는다는 사실이 왜 이리 내 마음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좀 전까지 젊었는데, 정신 차리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듯한 느낌. 



하루는 길어도 인생은 짧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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