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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양장)
리처드 애덤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마리 토끼 라는 이 책을 단순한 우화로 여겼다. "우화가 왜 장르 소설 사이에 있지?"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간혹가다가 그런 경우를 몇 보았기 때문에 그다지 상관하지 않았다. 장르 같은 문학이 영국 문학이나 여타 세계문학에 속해 있었고, 혹은 아무리 봐도 판타지 같은 데 연애 소설란에 번듯이 자리잡고 있었던 경우.. 등등. 그저 이름만 길고 비싸고 두꺼운 소설 한 권 으로 여겼다.
하지만 나는 스쳐지나가던 토끼들을 다시 만났다.
우연일지도 모른다. 두 번 정도는 우연으로 봐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나와 열한마리의 토끼들은 학교 도서실에서 만났다. 책 겉표지가 쑥 벗겨져서 스티븐 킹의 소설의 바로 옆에 있었다. 나는 친구와 이야기 하며 스티븐 킹의 소설에 손을 뻗어 빼고는 바로 대출받았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것은 이 열한마리의 토끼들이었다.
이 책은 토끼들이 무리에 빠져나와 새로운 무리에 도착하고 다시 새로운 마을을 만들며 여자를 구하고 조금 더 마을을 번성 시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이 책은 토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토끼들의 시점이지만 사실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식만 뺀다면, 천의 적 같은 것들이 없다면 충분히 인간으로 봐도 괜찮을 듯 하다. 나는 때때로 그들의 모습을 상상할 때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은 정말 사람이기도 했다. 어깨를 다친 빅윅은 녹색 군바리 옷을 입고 있는 거칠고 과격한 남자가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토끼들의 묘사는 사실감이 넘쳤다. 토끼의 사생활의 덕택일지도 모르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도 가지각색이다. 영매사 같은 파이버나, 못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희생적이던 빅윅, 영리한 헤이즐, 그것은 운드워트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름다운 문체, 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문체라든가 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대다수가 해외의 문학만 보아 온 데다가 그 외에는 교과서에 실린 글과 아마추어가 쓴 한국 장르 소설들 뿐이었으니 문체에 관해서 뭐라 할 수 없다. 더불어 이것도 번역된 글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탄탄했다. 간혹 나오는 신화 이야기는 [재미 + X ]였다. 마지막 에필로그도 인상적이었다. 그 은빛의 귀 토끼를 따라간 헤이즐의 모습이 아직도 그려진다. 간간히 생기는 위협은 박진감 넘쳤다. 그 때는 이미 동화나 우화라는 생각을 버릴 때였다.
다만 까닭모르는 점이 있다면, 토끼어라는 존재였다. 나는 토끼어 사전을 때때로 찾아보며 이야기를 읽어야 했다.흐라이어와 흐라이루를 햇갈리기도 했다. 토끼들을 조금 더 생생하게 하려고 했던 걸까. 아마 비슷한 이유겠지. 나는 이 때마다 이들이 토끼라는 것을 깨달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 불편한 감이 느꼈다. 나중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이 볼 수 있었지만.
여하튼 나는 이 우연스러운 만남에 감사한다. 이 우연한 만남이 기쁘고 반갑다. 길거리에 가다가 우연스럽게 전학간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