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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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그 인간적인 것

-그간 겪은 고통의 순도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고통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1970년대 명동성당 젊은이들

-나는 그때 우리가 생각하고 실행했던 것들에 대한 가치가 아직 내 안에 살아 있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담대함 또한 그때 형성된 게 아닐까?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고, 용기는 용기를 낳는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생각하고 실행하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정직성은 내 모토다.

나의 삶 나의 문학

-고단한 세상살이에 누구의 삶이 시가 아니며, 누구의 삶이 수필이 아니며, 누구의 삶이 소설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생김이 다 다르듯 삶의 형태도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삶을 엿보는 게 문학이 아닐까. 이제 쉰 중반에 들어서며 내 안의 이야기를 풀어보겠다고 여기 이렇게 달려가고 있다.

-나의 문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수많은 경험은 젊음으로 살 수 없는 밑천이 되리니. 오늘은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끌어내지 못하고 끙끙거릴지라도, 어느 날 문득 진한 가래 뱉어내듯 내 안에서 곰삭은 상처가 툭 튀어나오리라. 고단한 삶의 끄트머리에서 나를 치유하는 시원한 은단 향으로 피어나리라. 비록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펄떡이는 내 삶이오, 행복이다. 그러니 나의 글은, 영원히 헤쳐나가야 할 내 인생 바다에 띄우는 마지막 돛단배가 되리라.

실버 취준생 분투기

-언젠가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아이러니다. 예순을 넘기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일흔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른이다. 이른(일흔) 전 나의 분투기가 이른(일흔) 후 내 삶의 초식이 되길 기원한다. 많은 경험이 글이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어느 날, 한 수필을 추천받았다.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한 글이란다.

그 글은 바로 이순자 선생님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이다.

모바일로 가볍게 쓱쓱 보기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글을 나는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아무 생각없이 읽었는데 방심한 틈을 타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이렇게 정직하고 솔직한 인간적인 글을 언제 읽어봤었나. 수필의 제목은 <실버 취준생 분투기>이지만 나이를 초월한 삶에 대한 애환과 사랑이 그대로 느껴졌다.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는 바로 그 이순자 선생님의 유고 산문집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밑줄을 치고 페이지를 적다가 포기했다. 읽으면서 웃다가 울다가 했다. 이순자 선생님은 어떤 삶을 사셨을까.

이 책 한 권으로 다 알 수 없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큼은 여기까지 진심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다 그렇게 살았다, 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겪으셨을테고,

쉰, 예순이라는 나이에도 인생의 위기와 도전과 희망과 사랑은 계속된다.

이순자 선생님의 글 하나 하나에는 마치 옆에서 조근조근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 같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저 인생을 먼저 살다가신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지 다시금 일깨워주는 글이었다.

이제 더이상 이순자 선생님의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인생에는 삶과 죽음이 있는 법. 그리고 작가로서 좋아하는 글을 쓰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랑을 베푸는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셨을 것 같다.

과연 나도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은 사랑으로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순자 선생님의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읽는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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