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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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3월

이렇게 쓰고 싶다. "세바스티앵은 휘파람을 불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조금 숨이 찼다." 십 년 전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도 재밌을 텐데. 세바스티앵과 그의 누이 엘레오노르. 두 사람은 물론 극 중 인물이다. 나의 유쾌한 연극에 나온다. 빈털터리이지만 여전히 유쾌하고, 시니컬하지만 점잖은 그들을 보여주는 건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스스로의 비천함을 슬퍼하는 파리에서 그들은 모리스 삭스처럼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안타깝게도 파리의 비천함, 혹은 나의 비천함은 내 허무맹랑한 욕망보다 더 강했다.

-늘 나를 유횩했던 건 내 삶을 불사르는 것, 술을 마시고, 나를 잊고, 취하는 것이었다. 인색하고 어둡고 잔인한 우리 시대에 터무니없고 무용한 이 놀음이 나를 즐겁게 한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우연 덕분에 나는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하하!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당신의 어머니는 당신을 사랑합니까?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당신의 귀검이었습니까, 아니면 악몽이었습니까? 인생이 당신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기 전에 당신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당신의 눈 색깔이, 당신의 머리 색깔이 어떻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습니까? 밤이 두렵습니까? 잠꼬대를 합니까? ... 이런 진부한 생각이 두려운 것은 이른바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그것을 늘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기거나 적어도 살아남기만 바라니까요.

-나는 조금 힘없는 목소리로 "안녕, 또 보자"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때 엘레오노르 반 밀렘이 몸을 수이더니(차창에 비친 노르망디 시골 저체가 그녀를 따라 흔들렸다) "아니. 또 볼 수 없을 거야. 안녕." 그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지 내가 만약 그녀를 잘 몰랐더라면 오해할 뻔했다. 그해 봄 도빌은 유난히 추웠다. 그러나 혼자임에 가벼운 멀미를 느끼며 역을 나오자 날은 아름다웠다. 노르망디의 하늘에 익숙한 반가운 폭풍우 덕분이었다. 차를 찾는 내게 어찌할 수 없는 햇빛 한 줄기가 내리쬐었다. 나는 엘레오노르가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반 밀렘 남매를, 그리고 어쩌면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사랑하는 1인으로서 늘 느끼지만, 사강의 책은 제목이 한결같다. 멋있다.

<슬픔이여, 안녕>으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마음의 파수꾼>, <길모퉁이 카페>, <어떤 미소>, <한 달 후, 일 년 후> 그리고 바로 이 책 <마음의 푸른 상흔> 등 제목만 봐도 프랑수아즈 사강의 자신감 넘치고 냉소적인 필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마음의 푸른 상흔> 속 주인공 세바스티앵과 엘레오노르 남매가 있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 작가 자신이 나온다.

소설이라고만 생각하고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마음의 푸른 상흔>을 읽었는데 이 책은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책이라는 소개글을 읽고 그말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정말 꼬였다며 마주보고 웃는 두 사람. 어느 누가 반 밀렘 남매의 이야기에 관심 없을 수가 있을까.

파리라는 멋진 배경을 뒤로 그들의 파리 생존기는 어쩌면 처절하고 치열하다. 크게 뭔가 하는 것 없어 보이지만 매일 매일이 전쟁이고,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모든 기력을 다해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남매와 함께 작가인 '나'의 이야기도 <마음의 푸른 상흔>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프랑수아즈 사강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파리에서 '성공한 작가'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일지, 어떤 의미일지, 그리고 어떤 불행이고 행복일지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주인공의 고뇌와 즐거움이 줄다리기하며 나타난다.

<마음의 푸른 상흔>이 무엇일지 생각했는데 정말 마음 속 푸른 멍일지 상처일지 궁금하다.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는 파리의 한 시기를 돌아보며 주인공들 사이의 인생과 고뇌, 삶과 죽음, 단조로움과 파티 같은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간 멍은 사라지고 어디에 있었는지 흔적 조차 찾을 수 없다. 상처는 아물고 시간은 흐른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살아가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를 <마음의 푸른 상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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