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렌 허프 지음, 정해영 옮김 / ㅁ(미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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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대한 정확하고 진실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진실이란 기억에 대한 기억이며,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넨 이야기다.

-나는 최악을 예상하는 건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에 놀라지 않는 법을 배웠다. 인터넷이 끊기만 나는 답답해서 울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에 불이 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일로 누군가 나를 탓하면, 그러면 그렇지 싶다. 누군가는 이런 태도를 냉소주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것을 광신 집단에서 자란 사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또 다른 종류의 광신 집단에 들어간 것뿐이었다. 그들은 지난번 집단과 마찬가지로 나를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알고는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사실을 말해준 거였다. 내가 결코 이곳에 속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어쩌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나는 편지를 썼다.

-내가 말하는 방식과 그 연장선에서 글을 쓰는 방식은 패밀리식 언어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내가 어떤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잃거나 곤경에 처할 걱정 없이 진정으로 나답게 말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었다.

-나는 진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그 글들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스스로를 추스르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나의 악몽을 끄집어내어 햇빛 아래에서 살펴보고 악몽 속 괴물들이 사실은 그림자일 뿐이라는 진실을 깨닫는 방식이었다.

-알고 보니 내게는 커밍아웃할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무척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저항한 것이 자랑스럽다. 라디오를 몰래 방에 들여온 것이 자랑스럽다. 남자애들이 만지려 할 때 주먹으로 쳐낸 것이 자랑스럽다. 밤에 화장실에서 금지된 책을 읽은 것이 자랑스럽다. 그들로 하여금 그토록 깨부수려고 애쓰게끔 만든, 고집 세가 반항적인 어린 레즈비언이었던 것이 자랑스럽다. 내가 부서질 때마다 다시 스스로를 추스르고 계속 살아간 것이 자랑스럽다.

-나는 집도 가족도 경력도 경제적 안정도 꿈꾸지 않는다. 나는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비록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내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행복과 평화, 소속감과 사랑이 모두 다음 길모퉁이, 다음 도시, 다음 나라에 있다고 속삭인다. 그저 계속 움직이며 다음 장소는 더 나은 곳이기를 희망하라고 말이다. 반드시 더 나은 곳이어야 한다. 다음번 굽이만 돌면, 모든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을까.

사이비 종교 재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후 공군에 입대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인협박을 받았으며, 이후 제대하여 돈도 집도 차도 없이 클럽 기도가 되기도 하고, 그 외에도 바리스타, 바텐더, 케이블 기사 등 말그대로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다.

이번 책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의 저자 '로렌 허프'의 글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11편의 에세이이다.

처음에는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의 추천 서문들을 보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록산 게이, 케이트 블란쳇, 그리고 영화 <벌새>의 김보라 감독까지. 강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읽다보니 그저 작가 '로렌 허프'의 글 자체가 빠져들었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이렇게나 솔직히 들어낸 것에 대해 부끄럼도 없고 후회도 없을 것 같다.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며 그저 살아낸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고 과거의 자신을 다독여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를 읽으면서 단 한번도 저자를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내 삶은 이렇게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폭력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뿐이다.

컬트 집단에서 자라나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여러나라를 다니며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전단지와 테이프를 팔고, 강제로 기도를 하지만 어린 저자는 그때부터 자아가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동 학대에 가까운 (아니, 아동 학대다!) 어른들의 행동에서 벗어나 드디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녀는 공군에 입대한다.

하지만 살해 협박 메시지를 받고, 누군가 자동차를 불지르며, 어처구니 없게도 자신이 이 일의 용의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군 생활에 공정하지 못한 피해를 받으며 살아가며 제대를 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자신이 종교 집단이라는 곳에서 벗어나 또 다른 집단 충성심에 현혹된 군대라는 곳에 오게 되었고 그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도, 환영받지도 못함을 느낀다.

그래도 인생은 계속 되는 것.

마치 '위화' 작가의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로렌 허프는 이 일, 저 일을 떠돌며 먹고 살기 위해 살아간다.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자신의 치부까지 들어낸 진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우리가 배우고 생각하고 말하는 집단주의의 오해와 그릇된 결속력에 대해 머리를 땡! 하고 치는 충격도 주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로렌 허프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입장에서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를 읽었다.

떠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과거의 자신을 응원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로렌 허프에게 살아남은 자를 위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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