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은 <관계의 미술사>로, 여기서 다루는 라이벌은 원수를 향한 마초적 클리셰나 격렬한 경쟁 관계, 예술적 혹은 세속적 우외를 놓고 치엻게 다투는 고집스런 원한 관계가 아니라 상대를 수용하고, 내밀한 관계를 맺고, 상대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열린 관계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의 감수성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의 라이벌들은 그저 누구보다 예술적으로 진보하거나 대담해지거나 중요해지기 위해서만 경쟁하는 게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의 경쟁이 그러하듯 그들의 경쟁 역시 세속적이고 실질적인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그들은 종종 사랑과 우정의 영역 안에서 경쟁했다.
이러한 의미아세 미술사에 등장하는 라이벌 관계란 친밀함의 투쟁 그 자체다. 누군가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꿈틀대는 투쟁이자, 어떻게든 자신만의 독특함을 지키려는 전투와도 균형을 맞춰야 하는 투쟁 말이다.
폴록과 드쿠닝_같은 영혼을 가진 상상 속의 형제들
-드쿠닝이 로테르담의 학교에 다닐 당시 그와 선생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저기 저 친구 보이지?" 학생들이 모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느 수업 시간, 선생님이 드쿠닝에게 물었다. "가서 저 친구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보렴."
..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친구 역시 선생님한테 '저기 가서 저 친구가 그려놓은 것을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했다.
...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훨씬 더 큰 무대 위에서 펼쳐지게 된다. 상대 학생 역을 맡은 이는 바로 잭슨 폴록이었다.
-폴록의 성격에서 드러나는 제멋대로의 미성숙한 기질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레이엄은 폴록에게 '위대한 화가'가 될 역량이 있음을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이었다. 훗날 드쿠닝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도대체 그[폴록]를 알아본 사람이 누구던가?" 훗날 과거를 돌아보며 드쿠닝은 말했다. "다른 화가들은 폴록이 하는 작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작품은 자신들의 것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그것을 알아보았다."
-"폴록은 선구자였다." 드쿠닝은 훗날 이렇게 술회했다. "그는 붓을 든 카우보이였으며, 세상의 인정을 얻어낸 첫 타자였다. (...) 폴록은 나보다 훨씬 앞서 나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길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잭슨 폴락의 사후가 아닌 생전에도 두 사람 사이엔 무언가가 있었다. 드쿠닝은 폴록에 대해 너무나 많은 부채의식을 가졌고, 동시에 동경심과 경쟁심에서 헤어나지 못했기에 단 한 순간도 폴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폴록을 향한 드쿠닝의 감정은 대체로 애증에 찬 복합적인 것이었다. 물론 그는 폴록에 의해 규정되거나 폴록이 관여한 삶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클리그먼과 연인이 되었던 사실이나 1963년 폴록이 잠들어 있는 스프링스 묘지의 맞은편 집으로 이사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저세상으로 간 친구이자 라이벌과의 연결고리를 잃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미술사에서, 특히 현대 미술사에서 화가들간의 관계는 미술사적으로나 거장들의 작품 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전시회에 가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거나 벽에 새겨진 작품 설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영향보다 어찌보면 화가들끼리의 만남이 더 큰 영향을 주는 듯 하다.
이런 생각과 궁금증들을 관련있는 예술가들끼리 묶어서 우리에게 친절하게 들려주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관계의 미술사>이다.
제목에서 말하듯 이 책은 현대 미술의 거장들이 서로 어떻게 엮고 엮여서 영향을 미치고 받아왔으며 어떤 작품과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우리에게 들려주는 살아있는 미술사다.
사실 서로 영향을 받은 이야기가 궁금해서 찾아봐도 인터넷에서는 짧게 2~3줄 정도의 요약만 있을 뿐이었다.
미술사 전문가도 아닌 나에게 고흐와 고갱 말고는 어떤 작가들끼리 어떤 영향을 받아왔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았는데 <관계의 미술사>를 통해 알아낼 수 있었다.
400여쪽 분량의 책 속에서는 마네와 드가, 마티스와 피카소, 플록과 드쿠닝, 프로이트와 베이컨, 이렇게 8명의 이야기만을 심도깊게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은 내용은 아마 다 들어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관계의 미술사> 원제를 보고 느꼈지만 '관계' 안에는 정확하게 '경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장들이 살아온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촉수에 쉽지 않은 삶을 살았겠구나- 싶다. 그런 그들에게 때론 좋지만 때론 화가날 정도로 적보다 못한 그런 관계들은 우리가 스치듯 보는 작품 속에서 녹아져있었다.
서로의 관계는 쉽지 않았겠지만 덕분에 우리에게는 다신 없을 인생의 작품들을 만났으니.
관계란, 인생사란, 운명이란 참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관계의 미술사>에서는 크게 두명씩, 여덟 명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 얽히고 얽힌 사람들은 더욱 많으니까 그 이야기를 이어서 파헤쳐봐도 좋을 듯하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