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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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은 끝났다. 나는 1909년 가을에 있었던 일들, 연달아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을 적어 놓았다. 그 사건들과 나는 아주 기이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기록한 것은 완전한 진실이다. 아무것도 건너뛰지 않았고, 아무것도 억누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그 기간이 몇 주 동안이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착각이다. 고르스키 박사가 사중주를 위해 비쇼프 저택으로 나를 데려간 날짜를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1909년 9월 26일 일요일이었다. 지금도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이 믿기지 않는 비극적이고 끔찍한 사건은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즉 닷새를 넘지 않는 기간 동안에 벌어졌다. 모험과 같은 추적 과정, 보이지 않는 적을 쫓은 여정이 닷새간 지속된 것이다. 적은 육신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수 세기에 걸친 과거의 무시무시한 망령이었다. 우리는 핏자국을 발견하고 그것을 뛰따라갔다. 말없이 시간의 문이 열렸다. 우리 중 누구도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예감하지 못했다.

-이것은 끝난 일이 아니다. 아니,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영상들이 심연으로부터 올라와 내게로 몰려든다. 밤중에도 낮에도. 물론 이제 그것들은 다행히도 희미하고 그림자 같은 모습에 불분명한 형체만을 띠고 있다. 나의 뇌 속에 있는 신경은 잠자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충분히 깊은 잠에 든 것은 아니다.

-불행, 큰 불행이 일어났다는 것, 이 점은 확실했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을 불행이! 그러나 나는, 맙소사, 이 불행에 책임이 없다.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 도대체 그가 어떻게 리볼버를 손에 넣은 거지? 그런데 이제 나한테 책임을 돌리려 한다? 이런 순간에 사람들이 부당하게 행동한다는 점,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는다는 점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나는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설명을 들어야 한다, 나는......

-"하루 온종일 허깨비를 뒤쫓은 거라고요. 당신의 괴물은 존재하지 않아요.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어요. 당신의 괴물은 터무니없는 추리가 낳은 우스꽝스러운 결과물입니다. 망상이라고요. 도대체 몇 번을 반복해서 말씀드려야 할까요? 당신은 허무맹랑한 생각에 빠져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어요."

-"괴물은 여기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더 이상 어떤 화도 불러오지 않을 겁니다. 이 괴물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수백년에 거친 여정에서 얼마나 많을 손을 거쳤을지!"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 신간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크다.

이번 작품은 레오 페루츠의 <심판의 날의 거장>. 저자와 제목을 보고 알쏭달쏭한 궁금증을 자아내는데 이미 독일어권 문학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나치 강점기를 겪으며 살아온 저자의 인생을 돌아보며, <심판의 날의 거장> 속 수많은 인물들이 삶을 파헤쳐본다.

<심판의 날의 거장>은 환상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시작부터가 심상치 않다.

책 속 '나'가 시작하는 '맺음말을 대신하는 머리말' 이 가장 먼저 서두에 있으며 과거의 일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이야기는 1909년 가을에 있었던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아직도 끝난 듯 끝나지 않은 일들을 돌이켜본다.

닷새동안 벌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 속에는 총과 죽음, 그리고 범인에 얽힌 기이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미스테리, 추리, 범죄, 스릴러, 환상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심판의 날의 거장>은 길지 않는 분량 속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저택.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들리고 누군가 자살을 한다. 바로 유명 궁정 배우 '오이겐 비쇼프'가 권총으로 스스로를 쏜 것이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이 기이한 사건 속 사람들은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

자살이라면 그가 왜 자살했으며, 살인 사건이라면 누가 왜 어떤 사유로 그를 죽음으로 몰아부쳤는가!

화자 '나'가 파헤치는 비밀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사건, 그리고 새로운 책으로 이끈다.

그래서 <심판의 날의 거장> 속 죽음은 자살일까, 타살일까? 죽음을 불러온 이유는 무엇인가?

환상소설의 대가 '레오 페루츠'는 우리를 진짜 같은 진짜, 허구 같은 허구, 진짜 같은 허구 속 이야기로 빠져들게 만든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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