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라잉 북 - 지극한 슬픔, 은밀한 눈물에 관하여
헤더 크리스털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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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지금까지 내가 한 번이라도 울었던 모든 장소를 지도로 그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떠오른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친구들과 이 아이디어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 해도 이 글을 이렇게 오랫동안 길게 쓰게 될지는 몰랐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눈물에 관한 생각이 이렇게 달라질지도 몰랐다.

-이 책은 그 시간의 기록, 내가 배운 것들의 기록이다. 나는 물론 지금도 계속 배우고 있다.

-차는 은밀한 울음 공간이다. 어떤 사람이 차 근처에서 울고 있을 때는 나서서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차에 들어가 울고 있다면, 그는 이미 도울 수 없는 사람이다.

-비가 올 때 차 안에서 울면 마치 앞 유리의 와이퍼가 얼굴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위로의 말, 위로의 팔, 그리고 위로의 와이퍼.

-우린 아마 우리가 울게 되는 진짜 이유는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린 아마 꼭 울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대충 울 만한, 대략 울어도 되는 이유로 우는 것 아닐까. 우리가 울음에 붙이는 모든 설명은 사후에 만들어 낸 이야기 아닐까. 그렇다고 그것은 그냥, 아무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냥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눈물, 하고 운을 떼면 이 명사는 흐른다, 는 동사를 데려온다. 마치 빗물이, 하면 흐른다, 가 따라오듯. 오래되어 무심한 부부 사이를 닮은 주술 관계. 때로, 자주는 아니지만, 눈물은 적신다. 책의 종이를,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나는 슬퍼하는 미국 남성의 분노가 두렵다. 그들 자부심의 얄팍한 원천 하나를 좀 잃었다고 가족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남자들의 분노가 두렵다. 하루는 함께 산책하는 동생이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동생은 보도에 쓰러져 구겨 앉은 채 울었다. 죽음의 소식. 어떤 남자가 아내(전화한 친구의 동생)을 죽이고 자살했다.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떻게 견디겠는가.

-주디스 버틀러는"슬퍼하는 능력에서 비폭력"의 원천을 찾는 것이 가능할지 묻는다. "견딜 수 없는 상실을 견디면서 결코 그것을 파괴로 전환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지,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견디는 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가능할지 묻는다.

마지막으로 울었던 때가 언제였지, 그리고 가장 슬프게 울었던 떄가 언제였지, 하는 기억들을 더듬어보며 <더 크라잉 북>을 시처럼 천천히 아껴 읽었다.

헤더 크리스털의 <더 크라잉 북>은 눈물에 관한 에세이이다. 하지만 이걸 에세이라고만 칭해도 될지, 시적인 느낌과 젠더 감성도 같이 있어서 뭐라 표현하기 쉽지 않다. 다만, <더 크라잉 북>의 소개처럼 '눈물에 관한 눈부신 명상'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책의 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아주 아주 아주 슬픈 책이라고 짐작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나는 책.

만약 나처럼 그런 책을 기대했다면 <더 크라잉 북>은 그 기대를 한발 벗어나 슬픔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과 눈물 조금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꽤 많이) 슬픔을 만들어낸다.

작가 노트에서도 말하듯이 "지금까지 내가 한 번이라도 울었던 모든 장소를 지도로 그려보면 어떤 모습일까" 라는 친구들과 떠올린 생각을 시작으로 <더 크라잉 북>을 시작하게 되었다. 눈물의 장소라니. 이미 나는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더 크라잉 북>을 읽게되길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시인으로 잘 알려진 저자 '헤더 크리스털' 만의 시적인 에세이랄까 회고록이 참 좋았다.

작정해서 울리는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슬프지 않은 책도 아니다. 슬픔을 주는 이유는 작가의 표현과 함께 아마 내가 울었던, 슬펐던 기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눈물은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울지만, 슬퍼서 우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눈물은 작가의 말처럼 '흐른다'라는 표현을 가져오듯 자연스레 슬픔을 떠오르게 만든다.

누군가 울고 있을 때 어떻게 달래줘야할지, 위로해줘야할지 난감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라도 전해지면 좋을텐데.

<더 크라잉 북>은 내가 울 때, 다른 사람이 울고 있을 때, 그리고 내 주변 사람이나 부모님이 울었을 때 등등 우리가 살다보면 겪는 눈물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는데 그걸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하는 감탄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눈물'만 있지는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듯 작가가 겪고 들은 대학교 시위, 인종차별, 페미니즘의 눈물도 들어있다.

읽다보면 울컥 울컥할 때가 있는데 눈물의 모양과 지형을 볼 수 있다면 분노의 눈물이 아닐까싶다.

크고 나서는 어릴 때 만큼 자주 울지 않지만, 그만큼 눈물이나 슬픔의 깊이는 어릴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것 같다.

<더 크라잉 북>을 읽으면서 직접 엉엉 운 것 마냥 속시원하고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는 게 신기하다.

눈물에 관한 책, <더 크라잉 북>에는 눈물 몇 방울과 함께 삶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을 만들어준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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