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완벽한 스파이 1~2 - 전2권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자가 둘인 남자는 영혼을 잃고,

집이 둘인 남자는 머리를 잃는다."

_속담

-세찬 바람이 부는 10월 어느 날의 깊은 새벽, 주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데번주 남부의 바닷가 마을에서 매그너스 핌은 낡은 시골 택시를 내렸다.

-"세상에, 컨터베리 씨 아니우?" 뒤에서 문이 열리며 어느 노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못 살아. 또 야간 침대차를 타고 왔구먼. 미리 전화라도 좀 하지."

-"안녕하세요, 미스 더버." 핌이 말했다. "잘 지내셨어요?"

-"켄터베리. 제 이름은 켄터베리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핌은 책상으로 다가가 상판을 꺼낸 뒤, 모조 가죽 상고나 위에 주머니의 물건들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분을 바꾸기 위해 수중의 물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 보는 시간이었다. 매그너스 리처피 핌의 이름으로 된 여권 하나. 눈은 초록색, 머리는 연갈색, 여왕 페하의 외무부 소속, 생년월일은 아주 오래전. 상징과 암호명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에게, 전혀 위장되지 않은 채 여권에 보란 듯이 그대로 인쇄된 자기 이름은 언제나 좀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평생 동안 그가 완전히 이기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싶었다. 지금 앉아 있는 이 방을 고상한 예외로 친다면, 그가 <해야 한다>라는 말 대신 <하고 싶다>라고 말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가끔은 말이다, 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어. 가끔은 우리의 행동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되는 거지.

-"알았니, 매그너스? 정보가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정보가 있으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어. 우린 거북이와 같아. 집을 항상 등에 지고 다니지.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면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어. 조각가, 음악가, 화가에게 허가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머리만 있으면 되지. 우리는 반드시 머릿속에 세상을 집어넣고 다녀야 돼. 안전한 길은 그것뿐이야. 이제 나한테 멋진 노래를 한 곡 연주해 줄래?"

-내 귀여운 매그너스,

항상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음악을 연주하고, 아버지한테 남자답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

사랑한다.

립시.

 

스파이보다 더 스파이 같은 소설, <완벽한 스파이>.

그 이유가 있다. <완벽한 스파이>의 작가 '존 르카레'는 실제로 스파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부요원으로 생활하며 겪은 자전적 요소가 담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스파이 요원이 인생 이야기이다.

나는 존 르카레 작가를 <완벽한 스파이> 책으로 알게 되었는데,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스파이의 유산>, 스마일리의 사람들> 등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도 꽤 많아서 하나씩 읽어봐야겠다는 행복감도 느낀다. 워낙 스파이 문학의 대가이고 수많은 추천사와 수상경력은 말할 것도 없다.

책의 표지와 소개를 읽어봐도 금방 눈치챘겠지만, <완벽한 스파이>의 주인공 '매그너스 핌'은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자취를 감춘다.

'매그너스 핌'을 주축으로 그가 사라진 사실과 어린시절,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 주변 인물들의 상황, 그리고 그런 '매그너스 핌'을 조국을 배신했다는 확신으로 주인공을 찾으러 다니는 영국 정보국 요원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던 주인공 '매그너스 핌'.

언제나처럼 연회를 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하고 사랑하는 아내 '메리'와 함께 일상의 나날을 보낸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의 부고와 함께 그는 사라진다. 스파이답게 표를 사고 찢어 버리고 행적을 여기저기 감추며 동선에 혼란을 주는 치밀함까지 한번 스파이는 영원한 스파이인 것 같았다.

켄터베리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그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어쩌면 아예 사라지는 삶일 수도.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부터 시작한 궁금증이, 어쩌다 죽었는지, 돈은 어디로 갔고 서류는 어디로 갔고 그래서 주인공을 쫒는 요원들은 주인공을 잡아아채내는건지 궁금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의 아내 '메리'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은 아마 눈치챘을 것이고, 이름만큼이나 무게감이 느껴지는 '브러더후드'라는 인물이 주인공을 쫒으며 수색하는 장면들에는 긴장감이 가득하다.

스파이 관련 소설과 영화를 읽을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심리전, 그리고 과연 어떻게 끝낼 것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계속 보고싶게 만든다.

주인공 '매그너스 핌'의 어린시절을 보며 (어린 스파이라고 해야할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그리고 평밤치못한 생활 등이 눈에 그려지면서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그런 그가 '영혼이 박탈당한 채' 스파이로 살아왔다니 어른이 된 핌도 위로해주고 싶어지고.

스파이라는 것 자체가 드러내지 않고 사라져야하는 연기같은 존재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삶은 핌을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이 매개체였지만 '핌' 내면에 담겨있는 인간답게 살 욕구와 가장 행복하지만 어려운 평범한 삶에 대한 욕망이 쌓이고 쌓여 우리에게 <완벽한 스파이>의 삶을 들려준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니, <완벽한 스파이>에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 하나에도 이유와 단서가 있다.

종적을 감춘 '매그너스 핌'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심리 게임처럼 찾아내게 되는 <완벽한 스파이>를 읽으며.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