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에프 클래식
버지니아 울프 지음, 김율희 옮김 / F(에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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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는데 대체 자기만의 방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라고. 이제 설명해보도록 하지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소한 한 가지 주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뿐이었으니, 그 주장이란 바로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까닭에 여성의 진정한 본질과 소설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미해결로 남게 됩니다.

-이 모든 여성들이 몇 년 동안 일한 뒤에도 이천 파운드를 모으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 삼만 파운드를 모으기 위해 그 이상의 노력을 쏟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우리 여성이 겪는, 비난받아 마땅한 가난에 냉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쓸데없는 일이에요. 당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시터 부인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막대한 부를 축적해 대학과 도서관의 토대를 다지는 데 썼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질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쓸데없는 일입니다. 첫째, 그들이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고, 둘째, 가능했더라도 법률상 그들이 번 돈을 소유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턴 부인이 동저 한 닢이라도 소유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사십팔 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돈은 남편의 재산이었을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고전 중의 고전, 그리고 에세이와 소설과 페미니즘을 넘나드는 울프만의 힘이 실린 글인 것 같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로 의식의 흐름으로 따라가다 보면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글이었다. 2018년, <자기만의 방>을 처음 읽은 충격을 잊지 못하는데 2021년 f(에프)로 다시 읽은 <자기만의 방>은 울프가 주장하는 그 글이 몇 십년, 어쩌면 몇 백년이 지나도 영원히 유효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1928년, 뉴넘 대학과 거턴 대학에서 발표한 두 강연문으로 시작한 <자기만의 방>은 제목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강하고 또 강한 주장이 실려있다.

사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그 주장도 아주 명료하고 적확하고 빠르게, 바로 첫장부터 우리에게 들려준다.

여성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치인 것 같지만 사실 21세기에 들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법한 주장과 논리들이 아주 꽉 차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젠더 문제, 그리고 불쾌함을 넘어서 매일 살아남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할 정도로 최소한의 기본도 보장되지 않는 죽음의 문제까지.

사실 그전까진 막연하게 불편하게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되면서,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그리고 세상을 공부하면서 더 불편하고 깨름직하고 화내고 맞서 싸우고 싶게 만들어준다.

아주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돈'과 '자기만의 방', 하지만 이 둘을 충분하게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뒷전으로 두고서라도 이 둘을 가질 수 있느냐의 존재여부 조차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또 화가난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똑똑한 글처럼, 화를 화로 끝내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바꿀 수 있게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여성이 가난하고 비주류이고 성공의 사다리에 뒷전이었던 이유를 버지니아 울프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우리에게 '돈'과 '자기만의 방' 필요하다고 말해주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돈'과 '자기만의 방',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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