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롭 데이비스 지음, 김마림 옮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원작 / 미메시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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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다!"

-라만차 지역의 한 마을에 본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키하다>라 불리던 사람이 살았다.

이름은 틀릴 수도 있다. 어떤 작가들은 <케사다>라고도 하니까. 여기선 논란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케하나>라고 하자. 알론소 케하나.

-그는 평소에 할 일이 없을 때면, 말하자면 1년 365일 내내 기사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낙이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기사 소설책을 사느라 갖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팔아 버렸다.

-직접 기사가 되겠다는 것이다! 편련 기사들을 모방하여 세상의 모든 악당과 싸우고 모든 것을 바르게 바꿔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갑옷은 오래되고 낡아서 손질이 필요했고 가리개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두꺼운 판자로 얼굴 가리개를 만들었다.

-그다음엔 말이 필요했다. 그에겐 늙어 빠진 말이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그저 멋진 준마로 보였다. 로시난테!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근사한 새 이름이 필요했다. 나는 돈키호테 데 라만차다!

-마지막으로 그에겐 사랑하는 귀부인이 필요했다. 마침 마을 근처에 그가 주위를 약간 어슬렁거렸던 농사꾼 처자가 한 명 있었다.

그 처자의 이름은 알돈사 로렌소였는데 그는 자신과 말의 이름을 바꾼 것처럼 그녀에게 어울릴 이름도 생각해 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은 <둘시네아 델 토보소>가 된다.

 

 

 

 

지구상에서 성서 다음으로, 세상에가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은?

바로 지금 읽고 있는 <돈키호테>다. 4백년이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은 불멸의 고전은 분명 이유가 있다. 이 <돈키호테>처럼 말이다.

미메시스에서 '롭 데이비스'의 기발한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한 이번 <돈키호테>는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좋을 책이다.

게다가 290여쪽의 분량 정도로 돈키호테 1부, 2부를 한 책 속에서 모두 읽어볼 수 있다니. 원작에 충실한 각색과 유쾌한 그림은 돈키호테를 더 응원하고 매력적이게 만들어준다.

사실 그동안 수많은 책 속의 책으로 추천받아온 <돈키호테>를 이제야 읽게 됐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아직까지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앉은 자리에서 하루만에 후딱 읽었다. 그만큼 술술 읽힌다.

돈키호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

가상의 괴물과 싸우고 투구를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서 무찌르고 놋쇠 대야를 맘브리노의 황금 투구로 착각하며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위해 모험을 떠나는 기상천외한 몽상가.

예전에는 돈키호테를 허무맹랑한 비현실주의자라고 생각했다면, 어른이 되서 읽는 돈키호테는 그 누구보다 마음 따뜻하고 정의로우며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찾아가는 드리머다.

물론 돈키호테의 모험은 쉽지 않았다.

툭하면 얻어 터지고 운 좋게 이긴 싸움에는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혀서 결국 쫒김당하는 신세가 되니까.

게다가 혼자만 그 고생을 하지 않았다. 그의 충실한 종자, 산초 판사도 같이 산전수전을 겪는데 그 둘을 안전한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사촌과 신부님, 그리고 돈키호테의 친구이자 이발사인 사람도 같이 고생고생한다.

그래도 그 모험은 분명 값지다.

처음에는 아니 뭐 이런 민폐캐릭터가? 라고 생각했는데 죄 없는 사람을 풀어주고, 사랑하는(?) 공주를 위해 갖은 수모를 당하더라도 기사도 정신으로 싸우고, 불리한 싸움에도 불굴의 용기로 대적한다! 알론소 케하나는 나에게 기사소설에 빠진 가짜 편력기사가 아니라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진짜 용기있는 기사이다.

돈키호테처럼 무적의 용기로 세상을 무찌를 힘이 있다면 난 그런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물론 돈키호테와 산초도 잠시나마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2부에서 밝히질텐데 공작과 공작부인의 만남이다.

섬을 갖고 싶다던 산초의 꿈도 한시적이나마 이뤄지지만 결국 산초도 돌아오고 삼손 카라스코(일명 달의 기사) 때문에 돈키호테도 돌아온다.

그리고 <돈키호테>의 엔딩은 너무도 유명하게 사람들을 놀리듯 제 정신으로 돌아온 멀쩡한 알론소 케하나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끝을 낸다.


-그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고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둘시네아에 대한 열망 때문이거나 바르셀로나에서의 패배 때문이거나 알티시도라의 말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에게 지워진 운명의 무게 때문이었는지는 베넹헬리조차 말해 주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돈키호테는 그 중압감에 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하느님께서 내게 자비를 보여 주셨네. 친구들이여! 내 평판이, 기사도에 관한 사악한 책의 그늘에 가렸던 내 평판이 회복되었네! 이제 그들의 부조리와 기만을 깨달았어."

-"친구들 나는 이제 죽어 가네. 하지만 미친놈으로 죽고 싶진 않아. 이젠 그런 저주로부터 벗어나고 싶네. 그래서 내 죄를 고백하고 유언을 남기고 싶어."

-"죽지 마세요. 산초 말을 들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이 삶을 포기하는 거예요.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도 그건 알아요."

-"난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네. 난 미쳤었지만 지금은 제정신이야. 난 돈키호테였지만 지금은 알론소 케하나이네. 유언을 하나 남길 필경사를 불러 주게. 죄를 고백할 수 있도록 신부님도 모셔주고.

-사흘 후 돈키호테는 영혼을 포기했다.

죽을 때가 다가오자 너무도 멀쩡히 오히려 사람들을 놀리듯 제 정신의 돈키호테의 말을 들어보면, 뭐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실제 영웅의 모험담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와 이야기 속의 저자 '베넹헬리'의 환상 이야기도 한 몫한다.

겉으로 보면 황당하고 순진무구한 돈키호테의 일생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비유적으로 볼 수 있는 인물과 인생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가지고 용기 있게 돌진하는 돈키호테 같은 사람을 과연 비현실주의자라고 감히 놀릴 수 있을까?

<돈키호테> 후반부에서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돈키호테의 모험담에 설렐 독자들을 만날 생각에 기대가 부푼 돈키호테와 산초. 하지만 그들에게는 바보, 그리고 바보를 따라다니는 바보라는 호칭의 얼간이 광대라고 사람들은 비웃는다. 상처받을 둘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세상의 잣대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평가당하며 멸시받는 모습이 참 마음이 아팠다.

과연 누가 돈키호테와 산초를 비웃고 욕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4백년이 넘었지만 <돈키호테> 를 사랑하는 전 세계의 독자들은 그들의 모험을 기다리고 있다.

누구보다도 용맹하고 뛰어난 기사, 돈키호테를 읽으며 '삼손 가라스코'가 지은 돈키호테의 묘비명과 이야기를 다시시작해본다. 그럼, '안녕히!'

묘비명 _ 삼손 가라스코 지음

그 용기가 하늘을 찌린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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