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기억법 - 영원한 것은 없지만, 오래 간직하는 방법은 있다.
김규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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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는 표현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머리와 가슴에 기록해두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 있다.

영원한 것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오랫동안

간진하는 방법은 있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카메라를_사진가의 기억법

영화를 좋아한다. 그림을 좋아하듯 사진을 좋아하듯 그렇게 영화가 좋았다. 영화를 한참 보던 시기의 나는 꽤 오랫동안 내 쓸모를 증명하지 못했고, 온종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더 영화에 빠져들었다. 영화는 내게 좋은 취미 활동이자 선생님이며, 친구였다. 종일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영화 하나는 봤으니까 하고 생각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는 영화와 친해졌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지만, 그냥 틀어놓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집중해서 보기도 하고, 다시 흘려보내기도 했다. 무릎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화를 보며 멋진 장면이 나올 때마다 셔터를 누르듯 캡처를 했다. 영화의 미장센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이 좋았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움직이는 영상을 멈추는 것을 즐겼다. 어쩌면 이런 행동이 사진 작업에 꽤 도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처음에는 좀처럼 매력을 느끼지 못하다가 알아갈수록 놓쳤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그렇고 가끔은 무심한듯 멀어졌다가도 어떤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이 그렇다. ... 어쩌면 내가 영화는 나름의 사교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_영화 감상법

 

 

직업병일수도 있는데 나는 광고와 관련된 책이면 꼭 읽어본다.

게다가 에세이라면 이렇게 하루 시간을 내서 읽거나(사실 이 책도 그렇지만 앉은 자리에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깐 서점에 들러 후루룩 속독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인터넷서점으로 책 제목과 소개라도 읽는다.

이번 책은 김규형 포토그래퍼님의 <사진가의 기억법>.

게다가 캐논, 에어비앤비, 에잇세컨즈 등 브랜드들이 사랑하는 포토그래퍼라니!

이미 <서울 스냅> 책과 강연, SNS 등으로 유명한 김규형 작가님이지만 끌리듯 <사진가의 기억법>을 폈다.

작가의 이력이 조금 독특하다.

광고를 하다가 때려치우고(?) 전업 작가이자 사진가의 길로 서다니.

궁금증이 생겨서 채널예스 인터뷰 기사도 읽어봤는데 평범하지 못하고 틀리고 이상한 아이였다는 자기소개가 눈에 띈다.

자신의 업을 관찰이나 메모, 기억, 좋아하는 일 등으로 푼 <사진가의 기억법> 책에도 나오지만 그만이 가지고 있는 뷰어 속 시선이 좋았다.

창작

-어렸을 때 나는 장래 희망을 적는 칸에 발명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마 실은 '발견가'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사람.

직업병

-편집자가 띄어쓰기가 잘못된 문장을 보면 상상 속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간판 디자이너가 길을 가다가 마음에 안 드는 간판을 보면 어도비 프로그램을 열어 수정하듯이, 살면서 만나는 모든 아름다운 순간을 프레이밍해서 저장하려는 습관은 내 직업병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자연스레 잘 볼 줄 알아야한다. 잘 보려면 그만큼 관찰이 중요하다.

김규형 포토그래퍼가 보는 세상은 발견하고 프레밍하고 메모하고 기억하는 삶이다.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꼭지 중 하나가 <사진가의 기억법>이라는 챕터인데, 그 속에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간직'하자고 말한다.

한참 SNS가 유행하기 시작할 때도 나는 조금은 자의반 타의반 계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사진이나 짧은 글을 포스팅하는걸 그리 열심히하는 편은 아니다.)

누구는 맛집에 가고 예쁜 카페를 가고 멋진 장소에 가서 인증하는 '인증샷' 문화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하는데

SNS를 열심히 하지 않는 나조차도 이 의견과는 다르다.

사진을 찍는 건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비록 사진이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더라도, 사진을 찍고 오랫동안 잊고 살면서 폴더 속 파일로 방치되더라도 사진이 가진 영원성은 그 자체로도 유의미하다.

아마 사람들도 SNS의 '좋아요'를 바라는 마음 속에는 그만큼 소중한 순간을 함께하고 공감받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더 열심히, 더 많이 인생을 즐기고 싶어진다.

<사진가의 기억법> 에세이 속에서는 사진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작가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경험이나 업에 대한 철학도 담겨 있고, 아픈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야하는 모습이 담긴 글에는 눈시울도 붉어졌다. 그리고 사진과 영화로 말하는 일상의 이야기도 좋았고 중간중간 작가가 찍은 멋진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보다보면 알겠지만, 사진들의 특징이 있다.

어딘가 비쳐서, 거울로 대비해서 찍은 사진들이 꽤 많았는데 아름다운 상을 눈에 한번 담고, 거울에 한번 담고, 사진기에 한번 담는 시선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과 사진에는 이유가 있다.

아마 <사진가의 기억법> 김규형 포토그래퍼님의 글에도 묻어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과 순간의 관계를 맺듯, 이 책과 관계를 맺은 독자에게도 소중한 순간을 선물해주는 것 같다.

내가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거나 글로 썼다면

나는 그것을 만난 것이다.

마치 하마터면 스쳐 지나갈 뻔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는 것과 같다.

관계를 맺었다면 잊을 리 없다.

내가 기록한 순간은 내가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그래서 순간을 기록한다.

에필로그_그래서 순간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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