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토 에디터스 컬렉션 10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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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언가가 내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어떤 통상적인 확신이라든지, 어떤 명백한 사실로서가 아닌, 어떤 병처럼 찾아왔다. 이것은 음험하게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나는 조금 이상하고, 약간 거북한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그것은 한번 자리를 잡고 나자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아주 조용히 있어서, 나는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것은 공연한 걱정일 뿐이다, 라고 스스로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만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기_1932년 1월 25일 월요일

물체들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것을 만질 수 없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하고, 사용한 후에는 제자리에 두고, 그것들 가운데에서 살아간다. 그것들은 유용한 것일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게는 다르다.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데, 이게 견딜 수 없이 느껴진다. 난 마치 살아 있는 짐승들과 접촉하듯 그것들과 접촉하는 것이 두렵다.

이제 알겠다.내가언젠가 바닷가에서 그 돌멩이를 들고 있었을 때의 느낌이 분명히 생각난다. 그것은 일종의 달착지근한 욕지기였다. 얼마나 불쾌한 느낌이었던가! 그 느낌은 분명히 돌멩이로부터 왔다. 돌멩이에서 내 손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래, 그거였다. 바로 그거였다.손안에 느껴지는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자, 이제 가야하는데, 마음이 분명치가 않다.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겠다. 내게 재능이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하지만 난 한 번도, 한 번도 이런 종류의 글을 써본 적이 없다.

...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 그러면 그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앙투안 로캉탱이 이 책을 썼어. 카페에서 빈둥대던 빨간 머리 친구지." 그리고 내가 이 흑인 여자의 삶을 생각하듯 내 삶을 생각할 것이다. 귀중하면서도 반쯤은 전설적인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말이다. 한 권의 책. 물론 그것은 우선은 지루하고도 피곤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놓일 때가 올 테고, 그것이 발하는 약간의 빛이 내 과거 위에 떨어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그 책을 통해 나의 삶을 혐오감 없이 떠올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어느 날, 나는 바로 이 시간을, 내가 웅크리고 앉아 열차에 오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우울한 시간을 생각하면서,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모드 게 시작된 것은 바로 그날, 그 시간이었어"라고 중얼거릴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나는 마침내 자신을 -과거 안에서, 오직 과거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리라.

 

 

 

 

살면서 한번씩 느끼는 구토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천재적인 철학가의 놀라운 소설 <구토>를 읽으면서 사르트르의 또 다른 매력에 반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명언과 실존주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사르트가 소설가로서의 작품성과 인지도도 있었다니 아직 배우고 읽어야할 것이

<구토>의 화자 '로캉탱'은 어느날 문득 "그 무언가가내게 일어났다"는 서스펜스 주인공같은 말로 글을 시작한다.

마치 사르트르 본인의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로 자전적인 느낌이 물씬나는데 이것, 저것, 그것 등 추상적인 표현과 꽤나 어려운 말들로 사유를 가지고 노는 사르트르의 글은 읽는 재미와 '구토'의 재미를 동시에 주었다. 나만 이렇게 난해한 것인가? 생각이 들 때면 '사르트르 소설'을 검색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며 난해한 글 속에서 많은 의미들을 찾아주었다.

근데 난해해서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는글이 있는가하면, 난해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하며 계속 읽게되는 글이 있는데 사르트의 <구토>도 그런 책인 것 같다.

마치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속 '뫼르소'처럼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과 감정은 <구토>의 '로캉탱'에게 어쩌면 삶을 바꾸는 놀라운 하루였을 수도 있다. 그저 그런 평소와 같은 하루겠지만 그 '무언가가' 로캉탱 안에서 자리잡았다.

처음 <구토>의 제목을 봤을 때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삶의 막막함이나 부조리함으로 생기는 어지러움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르트르의 '구토'는 일상에서 당연하게 느껴지면서도 그 안에 아이러니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현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하루종일 구토를 느끼면 문제가 있고 그래서도 안되는 것이지만, 소설 속 구토의 느낌은 어느 벤치나 카페에 앉아 거리를 보면서,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음에 행복함을 느끼며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처럼 아이러니함 속의 행복과 다짐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서를 접하면서도 어렵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지만, 이번 <구토> 를 읽으면서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게 읽은 이 작지만 강한 힘이 있는 <구토>는 내 이해와는 별개로 사르트르의 사유와 철학을 함께 느끼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주인공이 느끼는 불완전함을 함께하고, 만나는 인물들과의 관계와 마지막을 나누면서 '구토'라는 단어와 감정을 이렇게 오래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딘가 사르트르의 다른 글에서 본 것인데 "나는 로캉탱이었다. 나는 그를 통하여 만족스럽지는 못하나마 내 삶의 본질을 표현했다."라고 했다는데

사르트르의 실존과 존재의 치열한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고 사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말>, <문학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구토>라는 작품도 소중하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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