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

올케와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했다. 기분이 고약했다. 죄책감 같기도 하고 소외감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드러내게 될까 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래도 희망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남아 있지만 우리 식구에겐 그게 없었다. 엄마도 남아서 그들처럼 하려고 나만 피난을 보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미처 그렇게 하기 전에 엄마의 아들은 효자답게 살아서 돌아와 지금 엄마의 품 안에 있다. 그래서 엄마는 지금 저들보다 행복할까. 엄마가 행복하건 말건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여기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이 분하고 억울했다.

꿈꿨네, 다시는 꿈꾸지 않기를

"욕먹을 소리지만 이런저런 세상 다 겪어 보고 나니 차라리 일제시대가 나았다 싶을 적이 다 있다니까요. 아무리 압박과 무시를 당했다지만 그래도 그때는 우리 민족, 내 식구끼리는 얼마나 잘 뭉치고 감쌌어요. 그러던 우리끼리 지금 이게 뭡니까. 이런 놈의 전쟁이 세상에 어딨겠어요. 같은 민족끼리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형제간에 총질하고, 부부간에 이별하고, 모자간에 웬수지고, 이웃끼리 고발하고, 한 핏줄을 산산이 흩트려 척을 지게 만들어 놓았으니......"

나는 강씨가 그 정도로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게 얼마나 기쁘고 반가운지 몰랐다. 전혀 예상을 못했던 일이었다. 오랜만에 사람 같은 사람을 만난 기분까지 들었다. 잘났다는 뜻이 아니라 적당히 못나서 좋았다. 사람의 생각 속에는 좌우의 이념보다는 거기 속할 수 없는 생각들이 훨씬 더 많은데, 누굴 만나면 우선 저 사람 속이 흴까 붉을까부터 분간해야 하는 관습화된 심보가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임진강만은 넘지마

그날을 앞두고 식구들은 잠을이루지 못했다. 벌떡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가슴을 쥐어뜯곤 하는 엄마를 올케가 천사 같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곧 만나게 될 거예요. 임진강만 안 건넌다면요."

"오냐, 오냐,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떻게든지 임진강만은 건너지 말거라."

올케하고 엄마가 입을 맞추는 임진강 소리가 나에겐 암호처럼 들렸다. 내 마음속에는 삼팔선이, 그들의 마음속엔 임진강이 각각 넘어서는 안될 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임진강만은 넘지마

차차 나도 식구들과 같아졌다. 최소한도로 말했고 최소한도로 움직였다. 무언가 먹긴 먹었겠지만 다음에 무얼 먹을까 걱정하지 않았고, 무슨 맛인지 모르고 먹었기 때문에 먹지 않음과 같았다.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다니던 먹는 문제에서 놓여났는데도 여전히 목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니까 살아 있다는 감각도 없었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나의 그림자였다. 우리 식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동안이지 생각도 안 나게 오랫동안 비곤, 악운, 질병 등 인간의 그늘만 독차지하다보니 드디어 표정을 포기한 그림자가 돼 버린 것이다. 마침내 편안해진 것이다.

한 여름의 죽음

나는 혼자 다니는 데 더 익숙했다. ... 구속되기 싫었다. 남을 의식한다는 게 나에게는 일종의 구속감이었다. 남한테 신경 쓰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독한 이기주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유년기에 이미 형성된 버릇이었다. 일학년 때부터 산을 넘어야 하는 긴 등굣길을 친구 없이 혼자서 다니다 보니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위안이 필요했고, 그건 자신 속에 침잠해 공상을 일삼는 거였다. 그렇다고 내내 외톨이로만 지낸 건 아니다. 엎드러지는 친구도 생겼지만 한때였고 오래 우정을 유지한 친구는 한눈팔거나 딴생각하고 나도그냥 거기 있는 친구였다. 정말 좋은 친구는 화제가 끟긴 동안이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가장 내밀하 소통의 시간이 되는 친구였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

문밖의 남자들

엄마에게나 나에게나 온몸을 내던진 울음은 앞으로 부드럽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통과의례, 자신에게 가하는 무두질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엄마하고 나하고 만날 수만 있었다면 둘다 울지 않았을 것이다. 따로따로니까, 서로 안 보니까 울 수 있는 울음이었다.

그날 엄마가 정릉으로 빨래를 간 건, 참 잘한 일이었다.

에필로그

 

 

 

많은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

이번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멋진 책들이 타계 10주기 기념 아름다운 표지로 웅진출판사에서 다시 태어났다.

타계 10주년이라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다시 나타나셔서 그동안에 책들을 엮고, 신간도 내고, 시대에 대한 한탄도 같이 하면서 그래도 삶은 살아가는 것이리라 말씀해주실 것만 같은데 말이다.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된 건, 아마도 학교 수업시간.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이 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시험에도 꼭 출제되니 잘 읽어야하는 부분이었다. 대부분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 그러하듯 그저 문제를 위한 문제, 작가의 의도를 열심히 배우고 있었는데 <엄마의 말뚝>을 읽는 순간 몇번을 다시 읽었는지 모른다.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그동안 내가 읽은 우울한 한국문학 작품과는 결이 다른, 우울함 속에도 살아야겠다는 희망이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그래도 몰랐다. 박완서 선생님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몰랐고, 읽으면 읽을수록 빛이 나는 작품인지도 몰랐다.

더 커서도 몰랐다. 40살 이후 등단하신 기적같은 분이라는 것과 한국문학의 정수라는 말들을.

이제는 그때보다 책을 아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잘 모르지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을 수 있는 세대라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함을 느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책 소개를 읽어보자면,

"미완으로 끝났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작이며, 작가가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다" 라고 말한다.

미완으로 끝났던 작품의 후속작... 생전에 가장 사랑했던 작품...

워낙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풀어서 이야기를 담아내는 박완서 선생님 답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도 처절한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각기다른 주인공들의 삶이 펼쳐진다.

주인공 '나'가 스무살이 되던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장편소설은 박완서 선생님의 실제 연작 자전소설로도 유명하다.

어떻게 그렇게 살지요?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는데 아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을 것만 같다. 이렇게 질문하면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만 같기도 하고.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주인공 '나'는 1951~1953년이라는 한국전쟁 전후의 한참 힘들었을 시기가 배경이다보니 말할 것도 없이 엄청난 우여곡절들을 겪는다. 이것이 인생인가, 이것이 사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 들만큼 살아가는 것보다 죽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런 '나'에게도 많은 인물들의 만남이 있다. 모두가 피난을 간 서울 한복판. 자기네 식구만 남아있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강씨' 아주머니와 아이들. 그리고 그로 인해 알게된 인민위원회 사람들. 가족들을 두고 홀로 피난을 가면서 함께한 '근숙이 언니'. 그리고 그 언니를 통해 취직한 한국물산 '파마자부'와 피엑스 생활. 무엇보다 이제 반평생을 함께할 반려자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 일들까지. 그리고 남보다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피는 불보다 진한 '나'의 일가친척 가족들까지. 주인공 '나' 한 사람의 인생은 소설보다 더 소설같다.

'그래도 '엄마'와 '오빠'인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무심하고 철없어 보이는 그 둘의 대화를 보면 마음이 아린다. 사람이 힘들면 어려진다고 했던가. 다리에 총상을 맞아 종아리에 총구멍이 뚫린 '오빠'는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많은 작품들 속 '오빠'처럼 1인분의 몫, 제 구실을 못한다. 걷지 못해 피난도 가지 못한다. 훗날에도 올케와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기는 커녕, 자기 힘든 속만 말하니 원.

주인공 '나'에게 '엄마' 또한 마음껏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애증의 관계이다. 워낙 시대적 배경이 남자, 남자를 외치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게 박혀 있어서 그렇겠지만 사실 지금도 남아있는 그 풍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설움이다. 더구나 어렸을 때 무방비상태로 당하는 남녀차별의 한방이란. 지금도 한번씩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기억들은 아마 어른이 되어도 평생 가겠지만 그 아픔을 '나'가 조금 달래준다.

"할머니는 그럼, 작은아버지 지게 지는 것만 속상하고 작은 어머니 광주리 이고 다니는 건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어쩜 그러실 수가 있어요."

"우리 근본이 뭔데요. 작은아버지가 일제시대 때 면서기 하신 거? 그건 할머니, 일본놈의 아전 같은 거예요. 창피해요, 창피해. 그것 때문에 해방되고 나서 친일파라고 동네 청년들이 우리집 깨부수고 난리 친 생각도 안나세요?"

참다 참도 보다못한 '나'가 이번에는'할머니'에게 가하는 따발총이다. 자기 자식(남자) 힘든 것만 알지 남의 자식(며느리)과 식구들(딸, 손녀) 힘든 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모습이 다 화가난다. 결국 서울대학까지 갔었던 이 시대 인텔리, '나'는 참을 수 없다. 아마 박완서 선생님 본인의 투영이리라.

어렸을 때는 일상 생활에서나 책과 영화 속에 이런 장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시대에 화가 나는 분노를 느꼈다. 왜 악습을 계속하는 것일까를 고민하던 찰나에 이제는 어느정도 양보하게 된다. 그래 그 시대는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보고 자라며 배우지 못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배경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주인공 '나'가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이 거친 세상을 살아남은 패기를 응원하게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인물들의 인생이 참 기구하고 연민이 든다. 불쌍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말로는 십분의 일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일반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시련이 닥쳐온다.

수많은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배경이된 한국전쟁이 가져온 피해와 상처는 개인을 이렇게 파괴할 수 있구나. 서적과 자료로만 보던 상처를 소설 속 '나'와 인물들에 투영해서 아주 조금이나마 함께 느껴봤다. 전쟁의 아픔을 없앨 수는 있지만 이후 세대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최소한의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선생님의 너무 좋은 글들은 그래도 어찌됐든 살아갈 수 있다는, 살아가게 된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 죽으란 법은 없을거야. 하는 희망이.

힘들어도 무너지지 않고 악다구니 받쳐서 외치는 말들도, 내 안에 참고 참았던 설움의 울음이 터지는 순간도 모두 소중하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지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같은 작품들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시대를 함께 나누는 순간들의 기록은 박완서 선생님의 글처럼 아름답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