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인간 - 타인도 나 자신도 위로할 줄 모르는 당신에게 EBS CLASS ⓔ
권수영 지음 / EBS BOOKS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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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

-나는 제 주소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단어, '힐링'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내담자의 인생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상담가다. 하지만 누군가 힐링이라는 단어를 정리해보라고 하면, 나 역시 답변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학생들이나 내담자들이 힐링의 의미를 물어올 때면, 언제인가부터 아주 오래된 라틴어 명언이 떠오르고는 했다.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

-내면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이 자연적인 소생력을 불러일으키는 시작이다. 서구의 통증클리닉 의사들이 마음챙김 명상을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오히려 그들의 통증 부위를 가만히 느껴보라고 주문한다. 통증은 무서워 도망쳐야 할 고통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발생하는 무엇, 즉 나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화가 나면 내면은 분노로 가득차 있다고 느끼고, 창피를 당하면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여기는, 비합리의 함정에 빠진다. 나를 향한 가혹한 판단을 내려놓으면, 내 안에 있는 분노나 수치심도 그저 수만 가지 느낌 중 하나로 여길 수 있게 된다. 고통과 불편함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 농도가 옅어진다.

-이 책을 통해 저 밖이 아닌, 바로 우리 안에 이미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다. 자신의 자리를 떠나야만 하는 힐링은 없다. 치유는 나로부터, 내가 서 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미 너무 많은 힐링물 예능과 책과 영화가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힐링해줄 수 있는 책은 몇이나 될까?

그저 그런 힐링물을 보기 보다는 귄위있는 학자의 마음심리 상담 책을 권하는 게 좋겠다.

<치유하는 인간>은 그렇게 힐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치유하는 인간> 의 저자 권수영 교수님은 지난 20년 동안 수만 시간을 내담자와 보낸 심리학 전문가이다. 마치 내가 권수영 선생님과 심리학 상담을 받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책은, 힘이 들든 힘이 들지 않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토닥여주는 위로를 받게 된다.

심리학 책에서 많이 언급되는 유아기나 아동기 때의 경험을 묻는 질문들이 이 책에는 참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심리상담을 받는 느낌이 든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잘할 수 있다고 토닥여주는 선생님의 말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치유의 진짜 의미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센 척', '잘난 척'의 속사정

-영화 <굿 윌 헌팅>은 최고의 힐링 영화이자, 안아주기와 공감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굿 윌 헌팅', 그러니까 착한 윌 헌팅의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주인공 윌은 전혀 착한 인물이 아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윌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대번에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맥과이어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한다. 또다시 교수는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한다. ... "네 잘못이 아니야!" 맥과이어 교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듯하다.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던 윌은 마침내 맥과이어 교수의 품에 안겨서 엉엉 울기 시작한다. 마치 20여 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결국 윌 헌팅은 맥과이어 교수를 만나면서 오랜 병적인 자기애로부터 해방되고 결국 진짜 자기를 찾게 된다. 우리 주위에 정말 외골수처럼 보이는 자기애를 가진 친구들도 어쩌면 누군가의 공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다.

마음챙김과 사이먼튼 요법

-마인드풀니스는 마인드리스니스, 즉 멍한 마음의 상태를 벗어나서 마음을 꽉 채우는 경지를 의미한다. 나는 이 '마인드리스니스'란 정신없이 무의식 중에 이미 두 번째 화살을 맞은 상태라고 해석한다.

-두 번째 화살을 맞은 멍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지금 여기에서 마음을 온전히 잘 챙겨서 현재의 경험, 그것이 통증이든지 혹은 고통일지라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은 에포케와 수용의 태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힐링 프로그램이다. 통증이나 고통이 오면 그 감각을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이것이 따끔따끔한 고통인지 아니면 온몸에 퍼지는 고통인지 따지지 말고 오히려 차분히 느껴보라고 권한다. '큰일 났다. 이 고통이 대체 언제 끝나지?'라고 두려워하면 벌써 통증의 경험 앞뒤로 훨씬 더 많은 두 번째 화살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증을 대할 때 마음을 다해서, 혹은 마음을 모아서 통증과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 내 신체의 일부 경험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불교 용어인 '마음챙김'을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마음모음' 혹은 '마음다함'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옛날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아직도 <굿 윌 헌팅>을 안봤다니!

나는 그냥 가방끈은 짧지만 천재적인 청소부가 맥과이어 교수(로빈 윌리엄스 역)을 만나 제대로 살아가는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 청소부 '윌'에게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도 <치유하는 인간>에 적혀진 줄거리만 봐도 마음이 울컥해지면서 찡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외치는 교수나, "알고 있다고!" 계속 그러면 화를 내겠다고 하는 윌이나 둘 모두에게 아픔과 인간적인 치유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린시절인 것 같다.

너무나 유약하고 어찌할 수 없는 그 시기가 이렇게 한 평생 따라다니면서 인생을 좌우하다니. 맥과이어같은 좋은 상담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상담을 해주는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없다면 이 세상은 아마 더 팍팍해질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 자신도 제대로 위로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위로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말도 곰곰히 뜯어보면 '할 수'는 있다. 오히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남은 잘 치유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으니까.

근데 그렇게 살면 너무 불행할 것 같다. 하나 뿐인 인생에, 하나 뿐인 자신이 주인공인데 정작 주변인물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니.

때론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게 된다. <치유하는 인간>은 누구든 치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때론 윌이기도 하고 때론 맥과이어이기도 하다.

<치유하는 인간>에 방점은 치유가 아닌, 인간에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고, 인간은 누구나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치유하는 인간>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나/우리안에 치유의 힘이 내재되어 있다. 그 소중한 능력을 발현하면,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치유의 과정에서 우리는 나 자신과 타인과 세상을 마음 깊이 연민하고, 그렇게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한 단계 고양된 영혼으로 성장한다.

이것 또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당연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팔을 다치면 다시 낫고, 상처가 나면 아물듯이 우리는 본투비 치유하는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치유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마치 해리포터처럼 그 힘을 몰랐을 뿐이다.

더 적은 아픔을 원하기보다, 더 많은 치유와 공감을 얻는 삶의 소중함을 느끼며.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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