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 이 시대 2인 가족의 명랑한 풍속화
박산호 지음 / 지와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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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살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합니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쉰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나는 싱글맘으로 딸 하나와 일곱 살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태어난 지 두 달 하고 이 주일이 지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소설가는 아니지만 번역하면서 글을 쓰고 있으니 그 꿈은 비슷하게라도 이뤘고, 고양이와 강아지까지 쳐도 아직 자식 넷 중 하나가 부족하다. 아, 거기다 남편도 없군.

-현모양처가 꿈이던 어린 내가 지금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좀 황당하고 어이없겠지만 실망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픽 웃을 것 같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는걸. 보기 좋아'라고 하면서.

-릴리를 키우고 송이와 같이 살면서, 그리고 어린 강아지 해피를 입양해 넷이 같이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따로 덜어져 있을 때에는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고 무력한 존재이지만, 사랑으로 연결되면서 힘이 센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랑으로 연결된 존재들과 같이 있는 한 인생은 덜 가혹하며,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이 된다. 때로는 깜짝 놀라는 일들도 만들어진다. 그러니 우리가 어떤 형태로 살고 있는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 살아가고, 사랑한다는 것. 그것으로 행복하며,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 인생의 빛이 되어준 릴리, 송이, 해피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이미 박산호 작가님을 알고 있다. 사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유명한 번역가이자 작가님!

SNS에서도 인기가 많고 베스트셀러 스릴러 소설, 장편소설 번역에 그리고 에세이, 강연까지 섭렵한 다재다능한 분이다.

한 줄, 두 줄 쓴 글에서도 느껴지는 글쓴이의 내공과 공감이 깊이 있었고 무엇보다 웃기고 재밌어서 번역 외에도 출간한 책은 꼭 읽어본다.

이번에는 2인 가족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다니!

여기서 2인 가족이라 함은, 박산호 작가와 딸 릴리이다. (그리고 귀여운 냐옹이 송이와 댕댕이 해피도 있다.)

부제인 '남들처럼 살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합니다'라는 말처럼

남들과 비슷한듯 다른듯한 이 가족의 이야기가 빅웃음과 소소하지만 큰 즐거움과 그리고 때론 눈시울 찡하게 감동적인 부분도 많았다.

워낙 박산호 작가님 글을 좋아해서 그런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책을 하루만에 읽어재꼈는데 한 챕터, 한 챕터 읽어갈 때마다 따뜻한 공감의 말들로 끝나가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작가 개인의 이야기와 십대 딸 릴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평범한 듯하면서도 절대 평범하지 않은 개성 넘치는 가족이다. 그러니 이미 SNS에서도 수많은 공감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때론 내 삶과 생활에 대입해보면서 겪은 일, 힘든 일, 좋은 일 등등이 떠올라 개인의 에세이로도 읽을 수 있었다.

남들처럼 살지는 않아도 충분하다는 말. 이 말은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저자가 하는 말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때론 비교하고 우월해하고 열등감가졌던 날들에게 저 멘트를 강하게 날리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라는 것까지도.

 

 

 

 

카레에 닭고기는 좀 아닌 것 같아

-"아니, 왜? 너 카레 좋아하잖아. 닭고기는 없어서 못 먹고."

"내가 닭고기는 좋아하지만 카레는 안 좋아해. 거기다 카레에 들어간 닭고기는 정말 별로야."

"뭐, 뭐라고? 너 카레 좋아했잖아!"

"그건 내가 초딩 때였잖아. 나 이제 고3이야."

-"눈도 아픈데 꼭 그렇게 잔인한 드라마를 봐야 해? 대체 어디가 그렇게 좋아?"

나는 눈에 댄 아이스팩을 누르며 대답했다. "나 원래 이런 드라마 좋아하는데. 그리고 명색이 스릴러 번역가인데 이런 드라마는 필수지."

그러자 릴리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엄마가 스릴러 번역가였어? 난 몰랐어!"

그 말에 노트북 속의 미남 살인마가 휘두르는 케틀벨 같은 흉기에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너는 엄마가 스릴러 소설을 번역해서 먹고사는 것도 몰랐어?"

"응, 그냥 영어책 번역하는 줄 알았지. 그게 스릴러인 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그렇구나."

-그렇지, 취향을 설명하라는 거 자체가 촌스럽긴 하지. 그래도 내게 스릴러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열 개 정도는 너끈히 말해줄 수 있는데 쌩 하고 가버리다니. 그렇다고 물어봐달라며 붙잡기도 민망하다.

... 우리는 정녕 서로에게 쿨하디 쿨한 관계였구나.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 것 같은 예감에 조금 섭섭했다. 그렇다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애걸하기도 치사하고. 쿨한 인간처럼 굴기가 이래저래 쉽지 않다. 더 말하면 서러워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이 짧은 글 안에 많은 게 느껴졌다.

엄마와 딸 사이에 무한한 사랑도 느껴지고, 가족끼리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것도 꽤나 현실적이고, 그리고 좋아하는 취향을 잘 못 알고 있었던 것도 진짜 공감이 많이 갔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만큼 사랑도 깊지만 서로 모르는 것도 투성이고 개인적인 공간도 필요하며 독립된 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 부분을 읽고, 엄마인 박산호 작가님이 스릴러 번역가를 딸이 몰랐다니! 이렇게 유명한데! 라고 깜짝 놀랐는데 생각해보니 나도 내가 하는 일을 아직 잘 모르는 주변사람들이 많다.

나는 언제나 일 얘기를 할 때면 항상 쉽고 간단하게 설명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겐 낯선 분야인 것 같다. 이것이 인지부조화인가? 하긴 나도 친구들이 무슨 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이런 공감을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를 통해 느끼다니! 놀랍고 또 놀랍다.

엄마인 작가님 역시, 딸 릴리가 좋아한다고 알고 있었던 카레가 알고 보니 좋아하지도 않고 좋아했던 건 먼 옛날 초딩때라는 일격을 받는다. 그렇지, 취향이라는 건 계속 변하고 또 변하는 거니까.

나도 가족들과 서로 좋아하는 음식 말하기를 한적이 있는데 서로의 취향을 이렇게나 잘못 알고 있었는지 아주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정확히 저 멘트도 날렸었다. "그 음식 좋아했잖아?" 역시나 돌아오는 답변도 같았다. "그건 옛날이고."

처음엔 조금 미안하고 역으로 당할 땐 조금 섭섭했지만, 이 글을 보니 '그래,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라는 공감 한 스푼.

우리의 취향은 너무나 다양하고 계속 변하니까 서로 잘 조율하고 얘기하면서 살면 그게 행복일 것 같다!

 

 

 

 

 

그런 일이 하나쯤 있지

-나는 매튜를 보며 매일의 일이 쌓이고 쌓여 정립된 일상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견고한 성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튜에게 반했던 게 아닐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만드는 잔인무도한 사건들을 수사하면서도 쉽게 절망하지 않았던 매튜처럼, 나는 매일 글을 쓰면서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을 정리하고 불안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나를 가두고 있던 생각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다. 매일 쓰는 글의 마지막 무장은 아무리 슬프고 우울해도, 당장 엎어져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서른넷의 나에게 글쓰기를 시작해줘서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 엄혹한 세월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넘어진 자신을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 하나씩 있다. ... 그것이 나에게 글쓰기였듯, 릴리에게도 그런 일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쓰레기를 쓰자

-이러다 제대로 된 글은 영영 못 쓰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을 무렵 우연히 한 인터넷 서점에 실린 어떤 작가의 연재 글을 읽다 무릎을 쳤다. 그 작가도 마침 글쓰기의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극복할 방법 하나를 알아냈다고 했다. 너무 잘 쓰려고 스스로를 달달 볶지 말고 그냥 쓰레기를 쓰자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그러자 큰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쓰자"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먹구름 사이로 한 줄기 광명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거기다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니고 번역가로 쓰는 글인데 왜 그리 잘 써야 한다고 안달했을까.

-세상을 구원해야 하는 글도 아닌데 고뇌하지 말고 평소 쓰던대로 쓰레기를 쓰고 나서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도 또 고치면 될 것을. 일본 근대 문학에서 최고의 문장으로 꼽히는 것은 <설국>의 첫 문장인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고 한다. 노벨상을 받은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려 십삼 년 동안 그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완벽한 첫 문장을 만들어냈다는데, 감히 내가 뭐라고.

-잘하지 못해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뭔가를 시작해서 끝내는 습관을 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늦게 깨달았다. 못해도 좋으니 일단 끝까지 하고, 마음에 안 들면 고치고 또 고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잘할 날도 오겠지. 언젠가는 펜을 내려놓고 흡족할 때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 그저 다행이다.

이렇게나 글 잘쓰는 작가님에게도 힘든 순간들이!

당연히 있겠지만 역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겪은 고충과 힘들었던 순간들을 읽어낼 때마다 항상 놀랍다.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번 놀라게 되고.

아무래도 나는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대충 빠르게 끝내는 게 아직도 어렵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대충한단 말인가? 나는 기본이 30분이란 말이다!

이 화두를 가지고 몇년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 나만의 만트라를 하나 더 찾은 것 같다. "쓰레기를 쓰자!"

맞다. 내가 이 글로 세상을 구할 것도 아니고 솔직히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해서 퀄리티가 그만큼 쑥쑥 올라는 것도 아니다. 오래 잡고 생각할 일이 있고 빨리 써서 쳐내야할 일이 있다면 후자는 빠르게 쓰레기화해서 쳐내자! 저자가 무릎을 탁 친 이 말에 한번더 내 무릎을 탁 친다.

물론 하루아침에 변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도 나만의 리츄얼로 꾸준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하는 일들로 지금 힘든 순간을 채워나가야지.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그래, 그때 고생했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었어'라고 말할 날이 오겠지.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 를 읽고 저자가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웃고 울고 응원하는 나를 발견했다.

책 제목처럼 '생각보다 잘 살고 있어'라는 말은 사실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수 있을 거라는 공감과 힘이 있는 책이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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