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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ㅣ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평점 :


한동안 잠잠해진 것 같더니만 다시 코로나가 난리다.
지역간 이동과 연말모임도 자제하고 있건만 이번주부터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3월 이후 최다 확진자가 발생했고 부랴부랴 재택근무에 돌입하여 일까지 하고 있으니 참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여행조차 갈 수 없는... 슬픈 2020년의 11월을 마무리하면서 꽤 위안이 되는 책을 만났다.
바로 <90일 밤의 미술관>,
밤이라는 단어가 주는 센치멘탈함과 고요함을 아름다운 명화로 마음까지 위로받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90일 밤의~" 시리즈로서 이미 <90일 밤의 클래식> 책도 출간되었는데 워낙 인기가 많고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를 찍어서 이번 미술관 시리즈도 기대를 많이 했다.
코로나로 이불 밖은 위험한 요즘, 책으로나마 대신 내 방에서 좋은 작품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본다.
<90일 밤의 미술관> 저자는 5명인데 저마다의 관점과 인사이트로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니 다양한 시각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점이 좋다. 책을 펴면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도슨트로 일하게 된 계기, 가장 좋아하는 미술관, 이 책에 소개한 그림을 고른 기준 등을 저자 개개인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또 좋은 것이 그림의 소개 맨 마지막에는 "감상 팁"을 한 구절 적어주는데 아름다운 그림에 얽힌 비밀이나 역사, 시대상, 작가가 느꼈을 심정 등을 진짜 도슨트가 들려주는 것처럼 알려줘서 더 <90일 밤의 미술관>이 진짜 내 방 속 미술관 같다고 느껴진다!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봤던 유명한 작품들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니 감흥이 새롭다.
참 좋은 그림들을 시간이 지나서, 상세한 설명과 함께 보게되다니 더 많은 여유가 더 많은 감상 폭이 생긴다.
Day1부터 시작해서 어느덧 읽어간 Day90까지. 다시 1일로 시작해서 명화를 보고 싶다.

내셔널 갤러리의 첫번째 소장품_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나사로의 부활>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급속도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예술 방면에서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더딘 편이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은 기다렸다는 듯이 국가 주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개관했고, 이는 영국 입장에서 자존심이 퍽 상하는 일이었지만 영국 정부는 국립 미술관을 세우는 데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1823년 영국의 대표 화가 존 컨스터블의 후원자이자 이후 내셔널 갤러리의 대변자가 된 조지 버몬트 경이 자신의 개인 소장품과 이를 보관 및 전시할 수 있는 장소를 국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고, 영국 정부에서 은행가 존 앵거스타인의 개인 소장품 36점을 구입하면서 이듬해인 1824년 내셔널 갤러리가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줄리오 데 메디치가 교황이 되기 전인 추기경 시절에 프랑스의 나르본 대성당을 꾸밀 제단화를 주문하면서 제작되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째 되던 날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을 일으켜 그를 잠시 다시 살아나게 했다는 내용입니다. 나르본 대성당은 나사로의 유해가 묻힌 곳이기도 하죠.
좋은 그림을 만나기 위해서는 좋은 안목을 가진 사람들과 시대가 필요하다.
전세계 유명 미술관 중 하나인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 첫번째 소장품은 무엇일까?
답은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작품, <나사로의 부활>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사, 문화, 교육에 대한 인풋은 아끼지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지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감으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돈 이상의 가치를 주니까 말이다.
강대국들 사이에 영국은 조금 늦게 사회적, 문화적 문을 열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 유명한 내셔널 갤러리가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그리고 가장 먼저 소장한 작품인 <나사로의 부활>도 메디치가 다른 작품을 골랐다면 어쩌면 바뀔 수 있었다는 얘기까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종교는 잘 모른다. 하지만 종교적인 그림과 장소에 가 닿으면 어딘가 홀리스틱적인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아한다.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의 <나사로의 부활> 역시 처음 소장한 작품이라는 명성과 함께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미술관에 던져진 천박한 농담_
마르셀 뒤샹, <L.H.O.O.Q>
-<L.H.O.O.Q>는 마르셀 뒤샹이 개척한 예술 장르인 레디메이드ready-made 의 일환으로 명화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작품이라 말하기에도 민망한, 인쇄된 엽서에 낙서하듯 장난스럽게 콧수염을 그려 넣은 것이죠. 그러나 이는 기성품을 이용한 미학 작품의 등장입니다. 작가가 직점 작품을 제작하지는 않지만, 주체적인 아이디어로 제목을 붙이고 서명해서 예술품의 가치를 부여하는 무형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마르셀 뒤샹은 작품 제목을 'L.H.O.O.Q.'라 적었습니다. 나열된 알파벳을 프랑스어식으로 읽으면 L(엘) H(아시) O(오) O(오) Q(큐)이고, 연이어 발음하면 엘 아 쇼 오 큘 이라는 문장과 흡사하게 들립니다. 직역하면 "그녀는 엉덩이가 뜨겁다"입니다.
... 그렇지만 낯 뜨거운 외설처럼 느껴지는 모나리자의 콧수염이 훼손된 것은 그림 속 여인의 모델로 추정되는 피렌체의 귀부인 조콩드의 명성은 아니었습니다. 고리타분한 관념적 예술계에 던진 천박하지만 관능적인 농담일 뿐이었죠. 이후 뒤샹은 낙서한 콧수염을 지운 모나리자를 등장시키며 'Rasee'(수영믈 깎은 여자)라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언어 유희에 탐닉하는 전대미문의 낙서범이라 불릴 만합니다.
파격적이고 그동안의 체재와 시스템을 뒤바꾸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한 예술가들이 너무 좋고 멋있다.
마르셀 뒤샹의 너무나 유명한 작품, <샘>도 있지만 <90일 밤의 미술관>에서 한번더 만나게 된 <L.H.O.O.Q. 수염난 모나리자> 작품도 역시 재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워낙 패러디도 많고 오마자도 많으나 이렇게 재밌게(?) 만든 작가가 또 있을까!
전통과 권위를 그저 콧수염 하나만으로 뒤바꾼 뒤샹의 작품을 보면 천재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장 미쉘 바스키아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장난스럽게 그린 왕관, 공룡, 뼈를 모티브로 작품들을 그린 그의 세계관이 멋있었다.
전시회를 다녀오고 나서 바스키아가 활동했었던 SEMO (흔해 빠진 낡은 것이라는 뜻으로 SAMe Old shit의 약자다!)와 SEMO is DEAD 가 한동안 기억 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최근 좋아하는 작가는 거리의 예술가 뱅크시인데 <WALL AND PIECE> 책을 읽고 그에게 더더욱 빠졌다. 2018년에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00만 파운드에 낙찰된 자신의 작품을 액자 속 장치를 설치해서 파쇄해버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젠 다시 <풍선과 소녀> 작품은 볼 수 없겠지만 전무후무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뱅크시는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전에 없던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아직도 내가 만나본 그리고 만나보지 못한 그림들이 <90일 밤의 미술관>에는 가득 담겨 있다.
코로나로 여행과 만남과 모임을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진짜 나를 위한 시간을 찾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다.
<90일 밤의 미술관>은 1일부터 90일까지, 때로는 한번에, 때로는 원하는 챕터만 쏙쏙 골라가며 보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