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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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중단시키려는 선의에서 수많은 시도가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 정체성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러한 시도들이 곤란을 겪게 된다. 이는 폭력을 저지하는 우리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상이한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은 무시한 채) 다른 무엇보다 "문명 간의 친선 관계"나 "종교 간의 대화" 또는 "상이한 공동체 간의 우호 관계"에 의거해 전망한다면, 그것은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전에 인간 존재를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의 가지각색의 차이가 단 하나의 지배적 분류 체계라고 주장된 것에 의해 단일화될 때, 즉 종교로, 또는 공동체로, 문화로, 국가로, 문명 등으로(이들 각각을 전쟁과 평화 같은 특정한 접근 맥락에서 독보적으로 강력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단일화될 때,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은 맹렬한 도전을 받게 된다. 독보적인 방식으로 분할되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형성하는 다원적이고 다양한 범주의 세상보다 훨씬 분열적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모두 동일하다"라는 오래된 믿음에도 반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저마다 다르다'라는 이해에도 반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화합에 대한 바람은 인간 청제성의 다원적 성격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넘나들 수 없는 단 하나의 확고한 분리 선으로 첨예하게 갈라지는 것에 저항해 서로를 가로지르면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다원성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단일의 정체성(과 그 의미라고 주장된 것들)이 숙명적인 것이라는 운명론적 환영이 작위 뿐 아니라 부작위를 통해서도 전 세계에 걸쳐 폭력을 길러낸다.

-우리는 다른 개별적 소속 관계를 무수히 맺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흔히 운명이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서 한 국가의 한 지역의 한 가정의, 그리고 내 주변 마주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보내는 이 삶이.

아모르파티,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쩌면 그 운명을 너무 당연하게(그리고 다른 운명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지 흠칫 놀라게 된다.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책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박사 '아마르티아 센'의 역작이다.

제목을 보면 '정체성과 폭력'이라는게 조금 과격해 보이지만 읽다보면 그의 조근조근한 설명과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생각에는 폭력이라는 초점보다는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오랜 역사의 예시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한다.

누군가는 정체성이란 단일한 것이고 배타적이고 나의 진리를 설파해야하며 개인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이 책에서는 고립주의적이라고도 한다.)

오늘 날에도 벌어지는 무수한 싸움과 전쟁을 보면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21세기가 맞는가?하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정체성과 폭력>에서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는 정체성이란 단일하지 않고 배타적이지도 않으며 가변하고 폭력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일 같지만 이론과 실제를 많이 다르다.

<정체성과 폭력>에서 말하는 정체성은 대게 내 집단과 다른 집단과의 거리감을 나타내며 남과 나를 분리하는 느낌을 주고, 내 집단의 연대성은 곧바로 다른 사람과의 배타적인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론적으로는 나와 우리 이웃을 연대감을 가지고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하지만 실제로는 내 종교, 내 문화, 내 국가 외에 투쟁과 폭력이 만무하는 슬픈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의 이해

-개인은 여러 정체성 중 어느 것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는 다시 정확히 맥락에 따라 바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구별되는 쟁점이 있다. 첫째, 정체성들이 확고히 다원적이며, 하나의 정체성의 가치는 다른 정체성의 가치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은 특정한 맥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충성과 우선순위들에 상대적인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의 자유

-오늘날 세계에서는 세계화의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는 물론, 글로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는 가치와 윤리, 소속감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비고립주의적인 이해에서 본다면, 그러한 쟁점들과 관련된다고 해서 우리의 국가적 충성과 지역적 충성 모두를, 거대한 "세계 국가"를 운영하는 데 반영될 수 있는 세계적 소속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사실, 세계적 정체성은 우리의 다른 충성들을 배제하는 일 없이도 정당한 지분을 가지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의 관심사인 인간의 축소화에 대해 저항하면서, 우리는 또한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극복할 수 있고 곤경에 처한 현재의 불안을 억누를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다.

-나는 우리의 능력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그 속에서 그와 나는 (적대적인 단일주의자들이 그 입구에서 아우성치더라도) 서로에게 공통된 수많은 정체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떠한 수평선으로도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살면서 많은 정체성과 충돌하지만 내 안의 정체성과도 충돌을 일으킨다.

우선 사람들마다 수 많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겠고, 그 이후에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안에서도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충돌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의 정체성을 맹신하는 것은 무섭다. 우리의 역사는 과거 나치와 군국주의를 통해 충분히 겪어왔고 지금도 끊이지 않는 분쟁의 팔레스타인을 보면서 아프고 아프게 겪고 있다.

<정체성과 폭력>에서는 개개인이 가진 정체성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나아가는지 알려주지만 이 책의 끝은 꽤 긍정적이다.

저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우리 안에 있는 평화의 가능성과 이해의 정체성을 배우기를 소망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희망한다.

정체성이란 무 베듯이 딱! 가를 수 있지 않지만 배타적이고 단일한 정체성의 믿음은 국가와 사람과 민족과 문화를 무 베듯이 잘라버리고 폭력적인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계속 힘주어 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안의 정체성이 폭력성이 아니라 생명력과 치유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운명(여기서 운명이란 부정적인 의미의 운명이다)과 편견들을 다시 꼬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정체성과 폭력>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듯,

우리는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꾸며",

우리는 '이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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