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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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을 위해서라면 몇 번은 죽어야 한다."

_찰스 부코스키, 1920~1994

감히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몇 안되는 시크한 자유로움의 글 쓰는 사람 중 하나, 찰스 부코스키.

물론 제목만 봐도 느껴지는 포스처럼 아웃사이더, 술주정뱅이, 음탕함, 여혐 문학 등도 섞여 있음을 부정할 수 없으나 찰스 부코스키만큼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언제 떠나도 미련없을 것 같은 글들은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미국의 유명세와는 다르게 우리나라에서는 찰스 부코스키 문학이 별로 없어서 참 아쉬웠다.

그나마 있는 것도 다 읽어버리고 나면 (물론 열심히 읽었으나 다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서를 읽지 못하는 한이 조금 서린다.

하지만 이번에 드디어 찰스 부코스키의 글들을 더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에세이 시리즈 2권이 새로 나왔는데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과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이 그것이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인데 1번째 책도 꼭 읽어보고 싶다.

그 아쉬움은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내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단편이 몇개 실려있으니 그 아쉬움을 달랜다.

찰스 부코스키하면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겪은 그의 생활고와 문학을 시작하기까지 겪은 다양한 경험이 떠오른다. 레이먼드 카버도 그랬지만 찰스 부코스키는 49살에 정식으로 작가가 되기 전까지 하층 노동자, 창고와 공장, 우체국 직원 등을 전전하다가 한 출판사와의 계기로 전업작가가 된다.

그런 삶의 그의 글에는 묻어난다. 조금 술냄새도 나는 것 같다. 가끔 심한 말도 나오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면서 사는 몇 안되는 작가라고 나는 감히 말한다!

이 글은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이 엮었는데 그가 쓴 꽤 긴 서문만 읽어도 찰스 부코스키의 이해를 더할 수 있으니 바로 본문으로 넘아가는 것도 좋지만 서문을 읽어보고 만나는 것도 좋겠다.

-<작가 훈련>은 글쓰기에 대한 고별 에세이로 부코스키는 이렇게 선언한다. "내게는 신과도 같은 단순함에 몰두했다. 여유가 없고 적게 가질수록 실수나 잘못을 범할 기회가 줄어든다. 천재는 단순한 방식으로 완전한 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총알, 햇살과 같아 어둠과 지옥을 관통한다." 끝이 곧 시작이라는 말처럼 찰스 부코스키의 긴 문학 여정은 완벽한 하나의 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생의 마지막을 타자기, 와인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라는 마법의 불꽃으로 승화했다. _데이비드 스티브 칼론

문학계의 이단아, 반항아, 아웃사이더. 그가 가진 수식어는 한결같이 날이 서있다. 평탄하지만은 않은 삶과 문학세계를 몸소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가진 삐딱하지만 순수한 세계관도 보인다.

찰스 부코스키하면 또 떠오으른 것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소설같기도 하고, 논픽션같기도 하고, 노래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고, 저널같기도, 또는 서문에서 알려준 '메타픽셔널(작가가 독자에게 지금 읽는 글이 허구라는 걸 환시키기는 소설 방식)'이기도 한 그의 마법같은 글이다. 어떻게 읽느냐는 독자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번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도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으니, 어디까지가 진짜 에세이이고 어디서부터가 찰스 부코스키가 바라본 자기 자신의 이미지인지 맞춰가는 재미도 있겠다.

 

 

 

 

긴 거절 편지의 여파

-부코스키 씨 귀하

다시금 이 작품에는 엄청나게 괜찮은 내용도 있지만 매춘부 찬양, 과음한 뒷날의 역한 모습, 인간 혐오, 자살 미화 등 그렇지 않은 부분도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출간용 잡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특정 인간 군상을 다룬 이야기로 볼 수 있고 그 내용을 솔직하게 풀어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저희 쪽에서 이 작품을 출간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시기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 문제는 전적으로 귀하에게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_윗 버넷 올림

이 편지는 찰스 부코스키가 보낸 <하숙집 50곳 탐방기> 원고에 거절하는 보낸 편집자의 글이다.

보통 이렇게 길게 보내지 않는데 이 편지는 긴 회신만큼 일말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이 '긴 거절 편지의 여파'는 결코 작지 않다.

어느 한 술모임에서 윗 버넷인줄 알고 생기는 일들은 참 술냄새가 나기도 하고 삶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여자를 쉽게 보는 화남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글이니 어쩌겠는가. 여자+술+싸움은 빼놓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쿨한 부코스키에게도 거절의 편지는 보통 사람들처럼 유쾌하지 않음은 마찬가지인가보다. 글을 실리기 까지 49살을 살아온 그의 시선에서 진짜 문학에 대한 절실함과 계속하고픔에 대한 갈증이 느껴졌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독수리도, 당신 엉덩이의 들썩거림도 어쩔 수 없고, 내가 어쩔 수 있는 건 인간의 운명뿐이지..... 죽음. 세상에, 죽음이란 믿을 수 없어...... 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초록색 벽과 묵주 그리고 죽음을 마주했어. 잠긴 문에서 몸을 돌려...... 물기를 머금은 잔디를 보았어. 잔디는 항상 반짝이고 반짝이지...... 그 이유가 뭘까?

-우리의 예술은 우리를 고통을 이성으로 바꾸는 행위다. 우리는 뒤틀어진 마음, 점토 부스러기의 포상 같은 존재이며, 바보 같은 어둠 속 바보 같은 테이블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세상은 시라는 가느다란 바퀴살이 달린 능욕당한 바퀴 위에서 돌아가고 있다......

-난 술에 취해 여기 앉아 내일 어디서 어떻게 살지 걱정하고 있다. 생각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은 사람에게 여긴 있을 곳이 못된다. 사람들은 내가 괜찮은 시인이고 글을 꽤 잘 쓴다고 말하며 난 잘 모르는 여자들에게서 향내가 풍기는 편지를 받았지만, 내 이성의 해를 등지고 선 까마귀가 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니 분명 내일은 전당포에 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미친 부적응자이고, 먼지가 날릴 정도로 조용한 캠퍼스 창문에 서서 시를 가르치는 강사는 이 벽들 혹은 사우스할리우드의 집주인들 혹은 랭보나 릴케를 5센트 동전ㅇ보다 하찮게 취급하는 이 동네의 울상인 얼굴들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또 다른 시를 쓰기 위해 거짓을 적으라고 손에게 시키지 않을 거다.

-죽음은 아주 많이 늙었고 삶은 아주 많이 현실적이다.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끼적인 글

-옛날에는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고 굶주렸고 아무도 내 글을 출간해 주지 않아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낭비했다.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는 것이 가장 좋았다. 햇살이 목과 뒤통수와 손에 닿으면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아 붉은색, 주황색, 초록색, 파란색 표지 일색으로 꽂혀 있는 엉터리 같은 책들을 봐도 괜찮았다. ... 내가 천재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솔직히 난 어떤 부료에도 속하고싶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의 짐승 같은 에너지가 날 놀라게 한다.

-난 젊고 방황했다. 지금은 늙었고 방황한다. 도서관에서 세대를 이어 온 지식은 내게 망할 소용이 없었고 세상의 살아 있는 목소리 역시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다 한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 있는 대답과 그곳을 움직이는 힘(아주 미약해 보이는)은 소설, 단편, 시 같은 창의적인 예술의 글쓰기였다. 시가 가장 짧고 달콤하고 충격적인 방식이라고 결정한 지 오래이기에 이성(그보다 더 나은 이유가 있을까?)보다는 애정에 따라 움직여 왔다. 열 줄로 다 말할 수 있는데 뭐 하로 소설을 쓸까? 만 편을 쓸 수 있는데 소설 열 편을 써서 뭐 한담?

만약 와인을 마시고 이렇게 멋있는 단상들을 남길 수만 있다면.

그가 남긴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책 속 글들은 제목만큼 시크하고 멋있는 글들이 참 많다. 후대에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이렇게 사랑하고 부러워할 줄 그는 알았을까? 아마 삶에 대한 부조리와 불합리를 가지고 항상 세상과 대결하듯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이미 알고도 남을 것 같기도 하고.

술에 취해 내일을 걱정할지언정, 진실하지 못한 글을 쓸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그저 그에게는 글을 쓰거나, 글을 쓰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부코스키의 머릿속 단상들을 읽으며 한 줄 한 줄이 소설같고 짦은 문장은 시 같다. 그런데 또 에세이라니?

이단아같은 그의 실제 모습은 글 속에서도 여러번 사람들을 놀리고 놀래키고 당황시키면서도 제 갈길 가게 만드는 것만 같다.

죽음에 관한 그의 시선은 비판적이고 불만투성이이다. 하지만 그 속에 얽혀있는 삶에 대한 예찬과 무엇보다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늙은이'(자기 입으로 자신을 부를 때 늙은이라는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늙은이가 아니라 영원히 세상에 호기심을 가진 젊은이같다) 의 모습은 그에게 더 빠질 수 밖에 없는 글의 매력이다.

읽다보면 욕을 너무 많이 먹는 것 같지만 이렇게 세상과 글과 삶에 대해 욕지거리 해주는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얼마나 시원하고 명석하고 더 삶을 사랑하게 해주는지!

진정한 살을 오롯이 산 사람만이 술자리에서 들려주는 그런 이야기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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