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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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쉽게 모든 것을 멸망시키고 암흑의 어둠에 녹여 넣는 것이다. 만약 너 자신을 걱정한다면, 너의 영혼이 미래로 미루고 있는 그 일에 왜 바로 착수하지 않는가?

아마 신중하게 여러 계획을 미래의 장시간 동안 분배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눈먼 짓이야. 죽은 이후에 할 수 있도록 이것 저것 큰일을 꾸미다니!

인간 세상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알면서.

너는 아직도 오래도록 희망의 천을 짜낼 수 있나?

미래의 빛이 찾아오는 것을 정말 조금이라도 믿을 수 있는가?

네가 흙덩이가 되어, 피에 굶주린 독수리들이 너의 몸을 찢어 먹고

구더기가 창자를 갉아먹는 그 때에 너는 그것을 할 것인가?

오히려 지금, 지금이 그 시기인 것이다.

-나는 이제야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 어쨌든, 나는 시간이란 것을 알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간 자체가 나를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완전히 나를 버렸을 때 한층 더 분명하게 시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 우리는 비참하게도, 얼마나 좁은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것일까요! 단 하루도, 죽어가고 있는 인간은 얼마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탈리아의 고전학자이자 인문학자이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그의 글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깊이를 준다.

나도 이번 기회에 읽게 된 <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으로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참 기쁘다.

쉽게 말하자면 편지 형식의 에세이 글인데 읽는이의 주체는 다양하다.

자기 자신이기도, 문학이기도, 조국과 정치이기도, 지인이기도, 황제이기도, 무명씨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드넓은 자연을 꿈꾸며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기도 하고 어느 땐 나이듦에 대한 지혜로움과 함께 자신의 뜻을 힘있게 밝히는 모습은 철학의 대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상록>을 읽을 때 처럼 길지 않는 분량의 짤막한 챕터들은 그의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고 어떻게 시간을 써야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할지 잠시 멈춰서 돌이켜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만들어준다.

고전을 읽으면서 느끼지만 인생은 참 짧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우린 하루하루에 충실하지 못하고 죽음이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에서도 그가 곁에 두거나 위인으로 섬기거나 함께 하는 이들 중 많은 죽음을 겪어본 듯 하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인생의 대한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만약 이 책을 에세이로 분류한다면 내가 읽어본 에세이 중 곁에 두고 싶은 책으로 손꼽고 싶다.

이탈리아의 인문학자이자 고전학자인 페트라르카는 시대의 다양한 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편지 속 내용을 한번더 읽고싶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대부분의 고전은 아직 나에게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은 한 편지가 끝날 때마다 역자의 친절한 해설로 왜 페르라르카가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배경부터 시대상과 편지의 주체인 읽는이까지 우리에게 해설해주었고, 또 각자만의 생각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어주면서 열린 독서를 가능하게 만든다.

더 많은 고전을 읽고 싶은 나에게 <페르라르카 서간문 선집>은 더 소중하다.

페르라르카가 <노년서간집>에 남긴 글을 마지막으로 이 책을 나 자신에게 오롯이 받고 싶다.

-자, 이 책을 받아주세요. 현재 모습 그대로 받아서, 환영해 주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내 것은 모두 당신의 것으로 여기고 쓸데없는 사양은 하지 말아 주세요. 어느 것이든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거나 하지 말고 직접 가지세요.

안녕히 계세요.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겠습니다. 당신도 그리스도의 식탁에 초대받을 때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_1월 8일 아르과에서 (<노년서간집> 15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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