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방 - 우울의 심연에서 쓰다
메리 크리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북트리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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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로 바꿔 놓고 싶었다”

-이 책은 첫 번째 사진에서 두 번째 사진까지의 세월 동안 내가 걸은 힘든 길을 기록한 것이다. 갓 태어난 딸이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도무지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그 병 때문에 병원에서 자살을 시도해서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 뒤로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며 살고 있지만, 하마터면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 지금쯤 사람들의 머릿속에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때 아주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던 우울증은 지금도 완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뒤로 내게 다가온 수많은 행운들 가운데 그것은 불운의 흔적으로 끈질기게 남아 있다.

-외할아버지는 3월 1일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나는 예전의 내 모습을 흉내조차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주 오랫동안 본 적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야 하는 자리가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나눠 보려고 했지만, 내 말이 너무 느린 것 같았다. 몸도 느리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사와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 외할아버지의 집에서 손님들을 대접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 어느 침실에서 벽에 걸린 십자가 밑에 앉았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나를 찾으로 올라와 봤더니 내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점점 감정이 둔해졌다. 커다란 슬픔도, 커다란 분노도, 커다란 죄책감도 없었다. 그러다 아예 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 몸은 그저 찌꺼기일 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꼭 필요한 본질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 마음과 영혼이 모두 죽어 버렸기 때문에 내 몸은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확신이었다.

-이 몸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나의 강렬한 확신은 도무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내 삶이 부서져서 돌이길 수 없을 지경이라 아주 끝나버렸다는 믿음의 산물이었다.

-잭슨의 책을 비롯한 여러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진단서에 적힌 '멜랑꼴리아 동반'이 내 경험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하는 말이며, 멜랑콜리아는 주요우을장애라는 말에서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무서운 질병임을 깨달았다. 멜랑콜리아가 주요우울장애라는 서랍 속에 슬쩍 들어가 있는 꼴이었다.

-수면장애, 정신적 고통, 절망감, 병적인 죄책감, 자살 충동 등 일관된 증상과 징조가 자꾸만 반복된다는 것. 이들의 목소리 덕분에 나는 내 인생의 당혹스러웠던 기간을 더 장기적이고 더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우울증에 관한 아주 솔직한 책이다.

실제로 저자 메리 크리건은 첫 딸 '애나'가 심장 기형으로 거의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나고 심한 우을증에 걸렸다.

더 정확하게는 주요우울증 에피소드 진단을 받았고 그 뒤로 두 번의 자살 시도 끝에 멜랑콜리아를 동반한 주요 우울증 에피소드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더 더 정확하게는 딸의 죽음 전에도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이 일을 계기로 그 심연을 들여다보게 되어 정식으로 정신의학과 정신병원에 가게 되었다.

<내면의 방>을 출퇴근 길에 읽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읽었다. 한 챕터를 읽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져서 그 다음날까지, 만약 아침에 읽었다면 점심까지도 그 여파가 오래갔다.

그만큼 <내면의 방>은 작가가 겪은 삶과 죽음 (죽음에 더 가깝겠지만)에 대한 치열한 일기이다.

우울증에 관한 책은 많이 읽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내용이나 그림일기 등으로 심리치료상담에 대한 에세이가 나오면서 어느정도 거부감이나 낯섦이 줄어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이지 않은 시선은 여전하다.

나도 디폴트의 감정이 우울함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많다. 예전에는 막연히 밝은 모습 뒤에 어두운 모습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크고 나서 우울증과 심리학 등에 대해 알아보고 나니까 타고난 감성, 유전, 환경, 성향 등 여러가지에 대한 내 모습을 고민하게 되었다.

불행을 비교하지 말라는 말은 있으나 <내면의 방>을 읽고 나면 저자가 겪었을 심연은 차마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아이를 떠나보내고 빠르게 복귀한 회사생활. 퇴근 후 손목을 긋는다. 그게 첫 번째 '메리 크리건'의 자살시도였다.

담담하게 말한다. 자살을 할 것 같다고.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가족들의 진심어린 걱정과 슬픔 속에 저자는 로션이 담긴 유리병으로 목을 긋는다. 그게 두번째 자살시도였다.

저자는 이렇게 담담하고 솔직한 문체로 진짜 자기가 겪었던 슬픔과 우울증과 일상과 치료와 상담을 사실적이고 가감없이 써내려갔다.

우울증, 멜랑콜리아 진단을 받고 과연 누가 이렇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아마 이미 심연 끝까지, 저 끝까지 내려가보고 다시 올라가고 (그리고 다시 내려가기도 하는) 심정을 충분히 겪어보았기 때문에 이 모든 감정의 공유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심리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메리 크리건은 실제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노력했다.

종교 뿐 아니라 실제 어떤 증상을 가지고 있는지 의학적으로도 빠삭한 전문가가 되었고 자신이 받는 치료나 정신의학의 역사 등 다방면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메모하고 기록하고.. 쓰고 또 썼다.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지 못한다. 그녀가 먹는 약은 때론 기억을 잊게 만드니까 말이다.

ECT(전기충격치료)도 실제로 받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서술과 호전된 증상에 대해서도 적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 새>나 <샤이닝> 등을 통해 부정적이고 무서운 모습으로 표현된 점도 가감없이 기록했다.

저자는 ECT를 정말로 받았고, 만약 당사자와 보호자가 ECT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병원 측에서는 법원에 가서 치료가 필요함을 받아내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ECT 치료를 받고 힘들었던 점도 있고 병이 나아가는 부분도 있었고 슬프지만 다시 증상이 재발되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일상생활로 나아갈 때라는 터닝포인트도 있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그 사이 남편과 이혼도 하고 이 우울함은 언제나 곁을 맴돌고 있으며 새로운 가정도 꾸리고 소중한 아들도 낳고 지금은 뉴욕에서 영문학 강사로 학생들도 가르친다.

물론 저자는 알고 있다. 병이 재발될 수 있고 다시 우울증이 삶을 집어삼킬 수도 있으며 우울함으로 흘려보낸 나날들은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손목과 목에 생긴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물어온다는 사실을.

그래도 저자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죽음에 가까운 이야기들로 병의 중요성과 치료의 필요성과 삶을 다시 살아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겪는 인생이 다르다. 그리고 만약 같은 일을 겪었더라도 느끼는 아픔의 정도는 제각각 다르다.

함부로 남의 인생을 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빗대어 자신의 행복을 느끼는 잔인하고 무식한 짓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저자가 아이를 잃고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낯선 사람들을 피해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에서 <내면의 방>을 읽으며 처음 눈 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번.

조금 슬프지만 나는 삶은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은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부정적이지만 나는 이 인생의 격언들이 옳다고 느낀다.

그래도, 인생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게 맞다고도 긍정한다.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메리 크리건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내면의 방>의 마지막에는 새로운 삶의 다짐이 있다.

레너드 코언의 아름다운 노래 가사와 함께 끝과 시작을 응원한다.

-욕실 거울에서 나는 매일 그 흉터를 본다.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그 흉터는 이미 벌어진 일이라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항상 내게 일깨워 준다. 그것은 내가 30년이 넘도록 대부분 혼자서만 간직해 온 이야기의 흔적이다.

-아주 오랫동안 침묵 속에서 이 흉터를 견디던 나는 마침내 그때의 일을 말해도 좋다고 나 자신에게 허락했다. 이제야 알았지만, 나의 침묵은 단순히 정신적인 상처와 수치심 때문이 아니었다. 나 역시 우울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겪는 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어 하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과 공범이었다. 내 이야기는 일종의 증언이었다. 이미 엄청난 피해를 입은 뒤에야 병을 진단받은 내가, 우울증인 줄 모르고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지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 도저히 하루를 더 살아 낼 수 없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에게 이 증언을 바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나의 목적은 깊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격려해서 헤치고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점과 부족한 점에만 집착하기보다, 불완전한 부분을 인류 공통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정하면 된다. 레너드 코언은 다음의 가사를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의 노래 <축가>의 코러스 부분이다.

아직 울릴 수 있는 종을 울리고

완벽한 봉헌물을 잊어라

세상에 흠집 없는 것은 없어

그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법

나는 그의 훌륭한 조언을 받아들여, 빛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내 남은 생애 속으로 나아갈 예정이다.

*이 글은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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