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일들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법은 결코 없다. 마찬가지로 소나 포도나무나 돌들에게도 각각 그 자신의 본성에 걸맞는 일들만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은 자신에게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들만 경험하게 되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불평하는가? 우주의 본성은 결코 당신이 견딜 수 없는 일들을 일으키지 않는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당신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든지, 아니면 그럴 수 없는 것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약 당신이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일이라면 불평하지 말고 당신의 이성이 그것을 감당해 나가도록 참아라. 그러나 혹 당신이 이겨낼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에 반감을 나타내지는 마라. 비록 그 일이 당신을 정복했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언젠가는 소멸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당신이 참고 견딜 만한 일들은 무엇이든지 극복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나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참고 이겨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판단 그 자체이다.
-어떤 일이 성취하기 어렵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단정짓지는 마라. 오히려 쉽게 감당할 수 있고, 적절한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당신 능력의 범주 안에 있다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라. 당신은 절대 미래의 일로 인해 번민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반드시 부딪쳐야 할 일이라면, 당신은 오늘의 문제에 맞서기 위해 무장한 이성이라는 동일한 무기를 가지고 내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의 격언.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죽기도 전에 두 번 죽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우리는 죽음 그 자체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삶을 두려워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아직 와닿지 않은 나에게는 이 <명상록>이 더 소중하다.
사실 죽음이 두렵다기보다 오히려 노년의 후회 또는 이루지 못한 것들 그리고 인간다움을 잃게될까봐 두려운 게 크다.
하지만 그 해답도 멀리있지 않았던 게 '그러한 것들이 과연 두려운 것이었나?' 아우렐리우스의 물음을 되뇌이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려움에 대한 조언은 내가 살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꼭꼭 읽어보고 되새기고 싶다.
견딜 수 없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그 문장 하나로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하며 왜라는 물음을 비관하거나 남과 비교하고 싶어질 때마다 견디기 힘든 일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리미트리스! 한계를 정하지 않고 그 범위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장 마인드셋까지 가진다면 <명상록>을 읽기 전과 후의 나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삶 그리고 죽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적인 물음을 아우렐리우스의 입으로 들려주는 <명상록>은
불완전한 삶을 더욱 불완전하게 또는 더 완전하고 치열하게 살게 해주는 통찰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