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티튜트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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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실종 학대 아동 방지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약 80만 명의 어린이들이 해마다 실종 보고된다.

대다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수천 명은 그렇지 않다.

한밤중, 미니애나폴리스의 교외에 위치한 열두 살 루크의 집에 괴한들이 침입해 부모님을 살해하고 루크를 납치한다. 루크는 원래 자신의 것과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꾸며져 있는 방에서 깨어난다. 그곳은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혹한 훈련과 실험을 통해 그들의 능력을 키워 테러에 사용하는 '시설'이었다.

올 여름은 생각보다 덥지 않지만 코로나, 장마로 기억될 것 같다.

좋지 않은 이슈들로 2020년을 보내는 와중에 만난 <인스티튜트>!

여름의 스티븐 킹은 큰 위로가 된다. 말해 무엇하나 싶을 정도로 믿고 보는 스티븐 킹.

공포나 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도 (또는 나처럼 무서워서 잘 보지 못하는 사람도)

킹 중의 킹! 스티븐 킹의 책이나 원작소설로 만든 영화라면 꼭 보게 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일단 나오기만하면 베스트샐러를 찍으니 촘촘한 플롯이나 반전의 반전은 당연하고 영화로 나오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하면서 머리속 이미지를 그리게 된다. (알고 보니 이미 미드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제작팀에서 드라마 제작을 진행 중이다!)

이번 <인스티튜트1>은 인스티튜트, 즉 '시설'에서 시작된다.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과 그 시설 사람들, 그것보다 더 큰 연구와 음모에 관한 이야기다.

시설에 잡혀가는 아이들은 크게 2가지 유형이 있다. TP(텔레파시)를 쓰거나 TK(염력)을 쓰거나.

그 안에서도 수도 없이 많은 검사와 테스트를 거치며 TP/TK 안에서도 능력치를 통해 분홍색 낙인을 찍지 않나, 두 가지 능력을 다 기를 수 있는지 실험을 시작하는 등 차마 눈 뜨고는 못볼 아동학대가 이어진다.

우선 아이들은 평범하게 산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너무나 뛰어나고 명석한 두뇌와 함께 텔레파시 or 염력의 소유자.

그걸 알아차린 '시설'에서는 한밤중에 한 명, 한 명씩 납치해서 잡아들이고 가족들은 살해한다.

세상에. 누구나 똑똑하고 비상하고 천재이길 원하지만 <인스티튜트>를 읽는 동안에는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건지 다시금 깨닫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아이들을 시설에 가두고 있으며, 그 아이들은 테러에 가담한다. 자신들이 무슨 검사와 실험을 하는지조차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고 폭행까지 당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시설의 어른들은 거짓말뿐이다.

(심지어 텔레파시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아이에게조차 거짓말을 한다! 신기한 장면이다. 그 아이는 능력으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더이상 따져물을 수 없는 폭력적인 상황조차 아이러니하다.)

벌써 늦은 오후였기 때문에 팀은 모텔을 찾아서 하룻밤 쉬었다 가는 게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분명 또다시 싸구려 숙소겠지만, 밖에서 자다가 모기 떼에게 산 채로 잡아먹히거나 어느 농가의 헛간 신세를 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때문에 그는 듀프레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엄청난 사건들도 경첩의 사소한 움직임 하나로 방향이 바뀔 때가 있다.

야경꾼, p.26

 

 

'시설'에 갇힌 열 두 살 소년 주인공 '루크'의 이야기와 함께 비밀을 품고 있는 전직 경찰관 '팀 제이미슨'이 이야기도 펼쳐진다.

그는 발길 닿는 곳으로 떠돌다가 어느 한 마을인 듀프레이의 야경꾼으로 취직한다.

"야경꾼은 소도시의 순찰 경찰관으로 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의 일을 한다" 고 <인스티튜트1> 책을 펴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과연 루크와 시설에 갇힌 아이들은 언제까지 고통받으며 지내야하는지, 그리고 테러의 위험과 결과는 어떻게 될지, 중간중간 사라지는 아이들과 더해지는 아이들의 운명을 어떨지, 그리고 또 한명의 주인공 야경꾼 팀은 무슨 역할을 하게 되는건지

<인스티튜트> 인물들을 나도 모르게 응원하다가 욕하다가 기뻐하다가 화내다가 끝까지 읽어본다.

 

-칼리샤가 말했다.

"저들이 나나 조지 같은 아이를 부를 때 양성이라고 해. 그러니까 기술자나 관리인이나 의사들이. 우리는 원래 그런 걸 알면 안 되지만....."

아이리스가 말문을 이었다.

"그래도 알고 있어. 그런 걸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지. TK와 TP 양성은 마음만 먹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적어도 가끔은. 그 나머지는 그러지 못하고. 내 경우에는 열 받거나 엄청 기분이 좋거나 깜짝 놀랐을 때만 물건들이 움직이거든. 재체기처럼 내 뜻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현상이야. 그러니까 나는 그냥 평범한 케이스지. 평범한 TK하고 TP는 분홍색이라고 불려."

-아이리스가 말했다.

"분홍색들이 검사도 많이 받고 주사도 더 자주 맞아. 나는 수조까지 다녀왔어. 구리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어."

-조지는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막강한 TK 양성이 들어왔으면 좋겠어. 우리를 이 엿 같은 곳에서 밖으로 순간 이동시켜 줄 수 있는 아이 말이야."

...

-"저들이 우리를 납치한 거냐고? 맞아. 우리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냐고? 맞아. 저들이 우리를 어떻게 찾았느냐고? 그건 몰라. 하지만 엄청난 작전일 거야. 여기가 이렇게 엄청난 걸 보면. 씨발, 수용소잖아. 의사도 있고 기술자도 있고 자칭 관리인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숲속에 박혀 있는 소규모 병원이나 다름없어."

...

-급이 낮은 TP와 TK, 그러니까 분홍색들만 추가로 검사를 받았다. 이유가 뭘까? 그들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일까? 일이 잘못되면 더 쉽게 폐기처분할 수 있기 때문일까?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루크가 보기에는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 하지만 칼리샤나 조지처럼 강력한 TP와 TK들도 같은 검사를 받은 것을 보면 불빛 테스트에는 분홍색의 재능을 키우는 것 이상의 목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표가 무엇일까?

텔레파시와 염력을 자유자재로 쓰는 엄청난 능력의 아이들이지만 그 마음 속 깊이 들여다보면 아이는 아이다.

부모님을 그리워해서 야뇨증을 겪는 아이도 있고 문득 가족들이 보고 싶어져서 울거나 몇가지 질문을 좀 했다고 해서 관리자들에게 공포의 싸다귀를 맞고 피를 흘리며 상처받은 영혼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 시대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지만 전혀 말도 안되는 것도 아니다. 실상은 이것보다 더 참혹하기도 하니까. TP/TK만 없다뿐이지 아직도 너무나 많은 곳에서는 여전히 소년병과 아동 납치는 존재한다.

<인스티튜트>의 작가 스티븐 킹은 이 책을 쓰면서 “존엄성과 인간성이 박탈당한 환경에 놓인다면, 어떻게 사람답게 있을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빅터 프랭클 박사의 <죽음의 수용소> 책에서도 홀러코스트를 겪은 나치 수용소의 사람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모멸감", "인간의 정신적 자유"는 죽음 그 자체보다 더 심오하고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말하는 바로 그 자유,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루크'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꾀한다.

삶의 의미와 목적도 가르쳐주지 않고 아이들을 개개인의 사람이 아닌 능력을 가진 도구와 소모품으로만 바라보는 시설 사람들의 시선에 도전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 끝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루크는 특별함 속의 특별함을 지녔으니..!

더 자세한 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지만 루크가 TP/TK 능력을 발휘해서 꼭 시설을 탈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은 아픈 주사를 맞고 있어. 주사 맞고 점을 보고 점을 보고 주사 맞고. 샤는 뒤 건물에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대. 형은 어쩌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 모른대. 왜냐하면......"

그는 말문을 맺지 않았고 말문을 맺을 필요가 없었다. 루크는 잠깐이지만 눈이 부시도록 선명한 이미지를 보았다. 칼리샤 벤슨이 에이버리 딕슨을 통해서 보낸,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였다. 문이 열렸고 카나리아가 밖으로 날아올랐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형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들이 거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분명 그것이었다. 가장 좋은 걸 빼앗기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여기서 무기로 개조되고 거기로 가서 남는 게 없을 때까지 쓰임을 당했다. 그런 다음 뒤 건물의 뒤편으로 넘어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대열에 합류하는데..... 그것의 정체는 뭔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시설 같은 것도 특히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너도 나도 떠들어대는 비밀이라고는 지켜지지 않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면 말이 새어나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기 이렇게 있었다. 그들은 여기 이렇게 있었다.

<인스티튜트>를 읽다보면 되게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실상은 '아무렇'다.

능력이 좀 낮은 TK와 TP들은 종종 사라질 때가 있는데 시설 관리자들은 "분홍색이잖아" 라는 말로 누가 죽든 말든 사람이 아닌 실험체1 으로 대한다. 이 아이들은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원해서 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을 권리나 이유는 전혀 없다.

국가를 위해 더 큰 목적이 있다는 변명도 말도 안되고 그 이유가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지만) 테러라는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것이라면

마치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전국가적 행위같이 이것 또한 막아야할 것이다.

<인스티튜트> 시설에는 나쁜 사람만 나오는 건 아니다.

'모린'이라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도 나온다. 루크를 '아들'이라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

시설에 새로운 아이가 와서 인사를 하면 '친구'라고는 부르지 말아달라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왜냐하면 억지로 주사를 맞히고 지시하고 애들을 때리면서 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친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친구만큼 다정한 말이 없는데 누가 어떤 입으로 말하냐에 따라 친구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이 세상에서 시설 사람들의 '친구'만큼 못된 말도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모린' 아주머니가 좋은 사람일 것인가? 나는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인스티튜트를 읽다보면 나치 수용소가 정말 많이 떠오르는데 모린 같은 인물도 사실 인스티튜트 시스템에서 악을 행하는 직원1일 뿐이다.

이 시설이 뭐하는 곳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어떤 학대와 죽음을 당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돈을 위해, 친자식을 위해 시설 일을 한다.

아이를 괴롭히진 않되 그 악에 동조하는 사람을 과연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자신만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고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면?

그리고 만약 '나'라는 사람이 시설 속으로 빠진다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인스티튜트>는 TP(텔레파시)와 TK(염력)을 가진 아이들을 납치하는 '시설'이 배경이지만 아이들 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통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 피폐함을 파헤친다.

다시 한 번, 주인공 '루크'가 탈출에 성공하길 바라며 쫄깃한 마음으로 <인스티튜트 2>까지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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