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굴곡진 인생에서 나만 믿고 세상에 당당하면 되는 거였는데 작은 티끌 하나 숨긴다고 나는 참 오래도 스스로 고립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세상과 단절해놓고는 괜히 쓸쓸해했다. 나에게도 세상에게도 당당하지 못했기에 온전히 속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의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어디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그럴 때 어디에나 속한다고 느끼죠.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커다란 보상을 얻게 됩니다."
나는 이 말을 나 또한 온전한 세상이기에, 내 의지에 따라 그곳에 속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할 수도 있으며, 비록 나 홀로 서 잇어도 초연하니 두렵지 않다는 뜻으로 알아듣고 마음에 새겼다. 내 지금 삶의 화두가 '존재감'이라면 이 작가의 오랜 고민은 '소속감'이었고, 이 둘의 해결방법은 그리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건 다름 아닌 의연해지는 것이다.
살다보면 자존감, 존재감, 자기확신, 자신감 이라는 의미가 흔들릴 때가 온다.
그럴 때 중심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을텐데 뿌리채 뽑고 흔들리는 순간은 어쩌면 좋을까.
그 질문을 아마 오랫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생각했을 작가님이 브레네 브라운의 책을 통해 전해주었다.
의연해지기.
꽤나 철학적인 말인데, 속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때 어디에나 속할 수 있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니.
그 의연함은 "자, 이제부터 의연해져야지!" 하고 나오는 게 절대 아니다.
오랜 시간 훈련과 수련과 경험을 해야지만 남들이 뭐라하던 나의 길을 가는 게 아닐까.
요즘 의미가 많이 변질되었는데 진정한 my way 란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사는게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길에 있는 장애물들을 점프해서 계속 걸어가는거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될 때마다 TED 강연도 꼭 챙겨보려고 노력하는데, 기억에 남는 강의 중 브레네 브라운 교수님의 취약성의 힘이 생각난다.
약함을 약하다고 드러내는 그 용기, 취약성이야 말로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아무것도 아닌 기분>인가보다.
누군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에게 있어 아무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내 삶이 있다.
내가 없는 시간은 그 무엇도 아니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죽고 난 다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은 나 자신에게 온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구절 하나 더.
-회사에서는 존재감이 없어 슬프지만, 내 아이에게는 내가 이 세상의 전부다. 내가 없으면 슬프고 내가 있으면 행복하단다. 내가 옆에 있어도 내가 보고 싶단다. 내가 사라질까 봐 무섭고 걱정된단다. 내가 뭐라고.
-서로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줄 때 의미가 된다. 언제나, 한결같이, 최악의 순간일지라도. 그러니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존재감이 없어 자존감이 바닥일 때라도, 적어도 아직까지 나는 누군가에겐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