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태도에 관하여
제프리 마송 지음, 서종민 옮김 / 유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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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우리 곁을 떠날 때"

-개나 고양이 혹은 다른 동물들을 오랫동안 사랑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닫는다면 무척 혼란스럽고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때의 우리는 정말이지 복잡한 감정을 견뎌야 한다. 우리 일생의 어느 한 부분이 막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그토록 사랑했고 우리 일상의 중요한 일부였던 반려동물이 곧 우리 곁을 떠남을, 곧 추억밖에 남지 않음을, 그리고 늘 너무 빨리 찾아오는 죽음을 우리 힘으로는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잃었을 때 슬퍼하면 누구나 이해해 주지만,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슬픔에는 누구나 그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 듯하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슬픔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동물의 슬픔에 관해서는 우리 인간의 슬픔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기는 하지만, 두 슬픔의 결은 분명 같다. 우리가 동물 때문에 슬퍼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 때문에 슬퍼할 수 있다.

-인간 이외에도 수많은 동물이 슬픔을 느끼며, 그중에는 인간만큼이나 강렬한 슬픔을 느끼는 동물(이를테면 코끼로)도 있다는 점은 이젠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이 누군가를 잃고도 슬퍼하지 않았던 때는 한 번도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이 진화를 거치는 내내 느껴 온 슬픔을 동물이라고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느낀다. 워딩이 달라졌을 때.

예전에는 애완동물이라고 했다. 그리고 TV를 개에게 보면 '앉아, 기다려, 엎드려, 안돼, 빵'을 훈련시키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이제는 사지말고 입양하세요 동물인권 캠페인을 한다.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좀 더 친밀한 훈련법이 나온다. 그리고 세상에 나쁜 동물은 없다고 가르쳐준다.

"너를 내 삶에 받아들인 순간부터 우리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책 표지에 써있는 말인데 읽기 전에 한참을 들여다봤다.

장수하는 거북이나 고래가 아닌 이상 일반적인 동물들은 사람보다 수명이 짧다.

특히 반려동물로 많이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20년이 채 안될 것이다.

만남과 함께 이별을 준비해야하다니.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섭리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마지막을 준비하는 법, 그리고 함께 있는 순간들을 의미있게 보낼 필요가 있다.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책은 제목에서느 느껴지겠지만

반려동물과 함께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더 나아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법을 알려주는 에세이이다.

이해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는 건 사람이든 아니든 같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느끼는 사람이 정할 문제이지 제 3자가 관여할 일이 절대 절대 아니다.

우리에게 애도할 권리가 있음을 힘있게 알려주면서 동시에 반려동물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시선들을 따뜻하게 전해준다.

 

 

 

추측일 뿐이지만,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사랑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이 우리든지 다른 동물이든지 사랑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인식이 왜 이토록 극적으로 변화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하였든 큰 변화가 있었다.

사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떤 동물들은 우리보다 더 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이제는 상당히 많아졌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개를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개들은 다른 종류의 사랑, 양면성 없이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앞에서도 여러 번 했던 말이지만, 이를 깨달은 사람들 중 거의 모두가 아마 난데없이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견과 함께 산다는 것

동물들만큼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

심지어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그 사랑을 나누어준다.

외국이든 우리나라든 예전에는 동물들이 사랑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에 1차 충격.

그리고 여전히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2차 충격을 먹는다.

하지만 이 충격도 일단 귀엽고 사랑스러운 댕댕이와 야옹이들을 보고 힐링을 받는다.

인간이 가진 나쁜 능력 중 하나는 인간 우상주의라고 생각한다.

인간 이외에 자연이나 동물, 식물들은 그 아래의 하급으로 취급하고 어떻게 감정이나 생각, 아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일까?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것밖에 다를 게 없는데.

<우리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을 읽어보니 사랑과 교감을 나누는 반려동물이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조용하게 준비하기도 하고

예상치못하게 작별인사조차 못하는 경우도 있고 죽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동물들도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다고 생각할까?

well-dying 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에게 존재한다.


 

-심리학자인 나는 하나의 상실이 과거의 다른 상실까지 불러일으킨단 걸 안다. 눈덩이가 비탈길에 굴러 내려가면서 크기와 속도를 더해 가듯, 고통도 점점 커진다. 내가 느끼는 깊은 슬픔 중 일부는 내가 지나온 언젠가 떠나보냈으나 충분히 슬퍼하지 못했던 다른 누군가를 위한 슬픔이라는 걸 안다.

-나는 고통을 묻어 버리려 애썼다. 부정은 당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외상후스트레스 분야에서 가장 선도적인 연구원 중 하나인 베셀 반 데어 콜크의 말처럼, "우리의 몸은 전적을 기억한다." 슬픔은 늘 우리 몸과 마음 어디에인가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매일 망고를 생각하지만, 그를 잃은 고통을 없애 준다 하더라도 절대 그를 모르던 때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 심장 한구석에는 더 이상 햇볕이 닿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사랑할 기회를 붙잡지 않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 우리는 쥐들을 위해 슬퍼하고, 러셀은 살해당한 곰들을 그리워하고, 플럼우드는 웜뱃을, 킴은 칠면조들을, 로린은 앵무새를 그리워한다. 그것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슬픔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동물답게 만든다.

저자인 제프리 마송이 어릴적 키우던 새 '망고'를 떠나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픔과 상실감은 충분한 감정의 이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배웠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 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사람이 5년~10년 후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크다는 사실로 충분하겠다.

"슬픔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동물답게 만든다."

이 자연스러운 말이 참 좋았다.

유난이라고 이해하지 못하기 전에, 그저 슬픔은 슬픔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좀 더 열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충분한 이별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동물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동물들을 떠날 보낼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이 태도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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