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 우리가 지나쳐 온 무의식적 편견들
돌리 추그 지음, 홍선영 옮김 / 든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묻기 전엔 몰랐다, 나도 당신도"

-이 책에서는 과학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안내하고, 이야기가 그 그확을 일상으로 끌어올 것이다. 이제 믿는 사람이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네 가지로 추려서 알아볼 것이다.

1. 이미 만들어진 선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 발전하는 선한 듯한 사람으로서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동한다.

2. 자신이 누리는 일상적 특권을 바로 보고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이 특권을 잘 활용한다.

3. 마음이, 삶이 의도적 무지를 고수하려 해도 의도적 인식을 추구한다.

4. 주변 사람들과 시스템을 끌어들인다.

심리학과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학문적 연구는 우리가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을 제시한다. 더불어 이들 연구는 선의에서 한 행동이 오히려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과학을 활용해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법

다양성과 포용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해 온 이들도 있고 이제 막 관심을 갖게 된 이들도 있다. 개인 대 개인의 역학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사회적 삶을 형성하는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해결을 구하기보다 성장하고 고심한다. 나와 당신처럼, 이들은 됟고자 하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선한 사람들이다.

구축하는 사람에게는 열과 빛 모두 필요하다

 

 

이번 책의 제목은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빳빳하면서 비비디한 컬러에 한 손에 들기 좋은 이 책을 읽고 내가 이렇게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묻기 전엔 몰랐다, 나도 당신도" 이 말이 딱이다.

편견에 관한 편린들이라고 생각했고

솔직히 건방지지만 나정도면 꽤 선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남에게 해코지 하거나 민폐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살고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 힘든 일도 많았다.

그런 내가 오히려 가해자라니?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선함이 칼이되서 꽂힌다면 상처이고 무기다.

그러고 보면 내가 힘들고 아팠던 그 상처들이, 사실은 상대방이 '상처 줄 생각 없이' 했던 '선한' 행동이었다면?

아 잠깐. 머리가 아파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게 정말 싫다.

무지가 싫어서 나는 평생 공부할 생각이고 지혜롭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 말해주거나 본인이 깨닫기 전에는 전혀 모를 또다른 세상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인기 미드 <굿 플레이스> 시즌을 다 챙겨봤다.

<굿 플레이스> 속에서는 사후 세계를 풀어낸 이야기인데 선한 사람들이 사는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가 있다. (흔히 말하는 천국과 지옥)

그런데 굿 플레이스에 오면 안될 법한 사람들이 와있다.

아무렇지 않게 인종 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은 물론이고 백인특권의식까지 두루 갖춘 재수탱이형.

하지만 더 무서운건 '그래, 내가 굿 플레이스에 올 만 하지' 라고 생각되는 인간형이다.

(더 말하면 이 재밌는 미드에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춘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를 보면서 미드 <굿 플레이스> 가 이 책을 보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주고 편견을 가졌던 '선한 사람'(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모습을 보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앞단을 읽으면서 무수히 든 생각인데 끝까지 읽어보고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이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주길 기대한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지 못하면 위협을 느끼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이렇게 자기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선한 사람이 되기 힘들다.

-연구 결과에서도 밝혀졌듯이, 자기 확인에 대한 욕구는 선한 동료나 선한 친구, 선한 지지자가 되고 싶은 욕구보다 우선한다.

-사람들은 자기 확인을 받으려 한다. 타인의 욕구는 밀쳐 내고 자신의 욕구를 중심에 두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의를 인정받으려 하는데 인정을 해주는 사람에게 꽤 큰 충격이 가해진다고 해도 굴하지 않는다. 이렇게 확인받고 싶은 갈망은 특히 믿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이 의심받을 때 더욱 커진다. 자기 확인을 받으면 자기 위협은 줄어들지만 역설적이게도 결국 되고자 하는 자기 자신과는 더 멀어지고 만다. 안타깝고도 맥 빠지는 패턴이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이 완벽히 윤리적이고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히며 완벽히 '선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환상은 문제가 있다.

-결과적으로 선한 사람들은 '제한된 윤리성(bounded ethicality)'을 드러낸다. ... '선한 듯한(good-ish)' 사람들의 심리를 일컫는 말이다. 선한 듯한 사람은 누구나 그렇듯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며, 때로는 고의적이로 때로는 고의적이지 않다. 제한된 윤리성은 자신이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방법에 이의를 제기한다.

-선한 듯한 사람의 심리를 고려하여 '윤리적 학습(ethical learning)'이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더불어 자신이 언제나 선한 사람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는 이들과 달리 실제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선한 사람에 대해 다시 정의 내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체로)

근데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를 읽어보니까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일까.

편견이 정말 무서운 건 색안경도 아니고 선글라스도 아니고 아예 안대라는 거다.

보이지가 않는다. 자기의 시야와 가치관과 잘못이.

"아직 이 책을 읽을 준비가 안 된 사람도 있다

(당신은 아닐 것이다)"

책을 펴면 서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되게 재밌다고 생각했다.

믿는 사람이 되려면 참담한 현실을 진짜로 믿어야 하는데 내가 믿고 있다고 착각했던 현실들은 결국 남에게 보이는 나,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확인'의 욕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뼈 때리는 말이 너무 많아서 아프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 책을 편 사람들만큼은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니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사라는 지타에게 인물을 설정한 계기가 무엇인지, 왜 아무도 라비의 이름을 발음하는 법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지 물었다. 지타는 그 즉시, 망설임 없이 분석했다. "거만해서죠. 다들 신경 쓰지 않는 거예요."

-사라는 깜짝 놀랐다. 거만하다고? ... 사라가 주장하려 한 자신의 정체성은, 혹은 지타가 인정해 줬으리라 짐작한 자신의 정체성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사라는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신경을 안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혹시나 나처해하지는 않을까, 상처를 주진 않을까 지나치게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불편한 상황에 처하면 누구나 그러듯, 사라는 선의만 있었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는 뚜렷이 드러났다. 지타에게 자신이 바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도 못하고, 자기 확인을 하지도 못한 것이다. 사라는 자신 같은 사람의 의도와 믿음을 지타가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런 인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알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사라는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나아갔다. 사라는 지타에게 지타의 성과 주인공의 성이자 결혼 전 지타의 성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타는 흔쾌히 응했다.

-일주일 뒤, 사라는 지타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타 수리아네리야난 버러다라전 씨 맞나요?" 지타는 울음을 터뜨렸다. 몇 년 전 미국에 온 뒤로 누군가가 가의 이름을 완전히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정말 처음이에요." 지타가 힘주어 말했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연구 결과 뿐 아니라 일생 생활에서 겪을 법한 실화들을 쏙쏙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표기도 이해하고 나중에 따라 찾아보기에 참 좋다!)

한 학생의 이름이 무지 어렵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풀 네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차마 물어보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만해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게 당사자의 시선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알고보면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조차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비단 이름 뿐만 아니라 입으로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나 불편한 순간들 우리가 항상 하는 행동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먼저 말해주길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하거나, 그냥 넘어간다. 휴~ 하는 안도감으로.

왜냐하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기 싫고 남에게 상처주기 싫거든.

내가 했던 수많은 행동들이 상처가 되었다는 걸 알았다.

왜 나는 내가 상처받은 것만 크게 생각하고 정작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줄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아주아주 작게 하는 걸까.

이 말로도 전혀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P.S 내가 상처줬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요. 정말로요. 정말 미안해요."

여기에 나온 노력이라는 건 거창한게 아니었다.

아주 작게 행동하는 것일 뿐. 그리고 솔직함의 힘을 다시 느꼈다.

먼저 생각의 필터링을 꼭! 거치고 그리고 나서 이게 상처주는 행동은 아닐지 타인에게 솔직하게 허락을 구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상처줄 생각은 아닌데"를 시전하면서 마치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니야" 시리즈가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솔직하게 발음하는 법을 찾아봐도 모르겠다고 알려달려고 하는 이 작은 걸음 하나로 상처가 눈물(처음 내 이름을 불러주는 기쁨)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뒷단으로 가면 우리를 '믿는 사람'에서 '구축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아니 구원해줄) 방법을 알려주는 고마운 책이다.

캐롤 드웩의 <마인드셋>을 여기서도 만나게 되다니!

이미 만들어진 선한 사람이 아니라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동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자신의 특권을 바로 보고 이 특권을 '잘' 활용한다. (나는 '잘'에 방점을 찍고 싶다.)

이건 로버트 프랭크의 <노력과 실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라는 책을 함께 생각하고 싶다.

흔히 생각하는 실력주의와 행운을 날카롭게 꼬집는 경제학 책인데 알고 보면 그게 실력과 운이 아니라 특권이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에 백인 남자에 중산층으로 태어날 확률을 계산하시오. 그리고 그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출생으로부터 얻은 베네핏을 잘 활용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가진 편견을 아주 작고 작게 나눌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의식적인 노력과 시스템까지 곁들인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은 보람은 엄청날 것이다.

뼈를 너무 많이 맞아서 흐물거리는 것 같지만 나는 이런 불편한 책들이 너무 좋다.

이제 나는 선한 사림이 되고 싶지 않고 그렇게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다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 듯한 사람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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