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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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창비에서 출판한 <알로하, 나의 엄마들>.

제목처럼 "알로하~" 유쾌하면서도 가슴 아픈 역사가 담긴 이야기다.

이번 서평은 작가를 공개하지 않고 시크릿하게 진행되었는데 책이 출간되는 3월 말까지 너무 궁금했다.

작가는 바로! 이미 오십여권을 출판하며 어른과 어린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금이 작가님!

하와이를 배경으로 세 명의 엄마 (엄마이기전에 여자이자 사람이자 한 국가의 시민) 로 가슴 뭉클했고

하루 반만에 다 읽어버린 것 같다. (하루만에 읽고 싶었는데 밤 늦게 책을 붙잡다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우선 이 책의 배경은 '포와'이다.

하와이를 한자로 써서 한글로 음을 표현한건데 예전에는 하와이를 포와라고 불렀었나보다.

현대사를 배울 때 해외 이주 동포에 대해서 책의 한 페이지 분량도 채 되지 않게 배웠던 것 같다.

그저 지도를 통해 만주,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로 갔다는 사실과 혹독한 삶을 살았으며 지도를 통해 다음 지역은 어디일까요? 와 같은 객관식으로.

근현대사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하와이가 포와라는 말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를 했다는 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알로하, 나의 엄마들> 책이 더 소중하다.

1917년, 어진말에서 주인공 '버들'에게 "내년이면 열여덟이지예? 포와로 시집가지 않을랍니꺼?"라는 말로 시작된다.

포와, 사진결혼, 사진신부...

예전에는 멀리 하와이까지 간 청년(과연 청년일까? 이 책을 읽으면 답을 알 수 있다)들과 사진을 주고받으며 결혼을 맺었는데

바로 책 속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 세 명의 여자들도 사진결혼을 하기 위해 조선을 떠난다.

여리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버들과,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쿨한 신녀성 홍주, 그리고 그들 곁에 누구보다 따뜻하고 꼭 필요한 (무당 외할머니의 손주) 홍주가 있다.

스포같지만 스포는 아닌데 세 사람 중 제대로 된(?) 신랑을 만난 건 버들 뿐이다.

다들 사진으로 속았다. 알고보니 나이차이 한참 많은 아버지뻘 남자들. 그렇다고 다정하거나 능력이 좋은가? 그것도 아니다.

이 부분에서 아주 열불이 났지만 참 이게 비단 과거만은 아닌 게 아직도 국제결혼이 존재하고 "도망치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버젓히 걸리는걸 보면 이 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열불터지는 사회의 한 단면인가보다.

어쨌든 이렇게 세 여자는 신랑을 만나고,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라는 제목처럼 엄마가 된다.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누구는 아버지뻘 남편에게 맞고, 누구는 처자식을 두고 또다른 꿈을 꾸며 떠나고, 누구는 알고보니 한국에 본처가 있어서 핏덩어리 아들과 떼어놓고 떠나버리니까.

읽으면서 고되고 기구한 세 명의 삶이 마음이 참 아파서 몰래 꾹꾹 눈물도 닦았다.

이제 겨우 정착하나 싶으면 좌익/우익, 윗동네/아랫동네로 니편/내편을 가르며 정치사상으로 관계를 가른다.

과거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한 일들이 역사를 통해 말해주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세 명의 엄마들은 어떻게 다시 만나는지, 힘든 역경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나온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400여쪽을 달리고 또 달리게 된다.

 

 

 

 

 

-태완의 입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처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버들도 잘 알았다. 그 모든 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견디기 힘들 것이다. 태완이 그동안 닫아 두었던 문은 새 사람 쪽으로 향한 문이 아니라 자기 과거의 문이었을지 몰랐다. 버들은 태완에게 연민을 느꼈다.

-"딴 가시나한테 마음 다 준 사나라 캐도 지는 당신하고 계속 가볼랍니더. 가다 보면 당신 맘도 돌아오는 날이 있겄지요. 당신도 노력하겄다고 어무이 앞에서 약속하이소."

p.177, p.178

-"그동안 가장 노릇도 못 하고서 또 이렇게 떠나니까니 내레 면목이 없어. 나 없는 동안 정호 부탁하고 당신도 건강하게 잘 지내라우. 기러믄 낸중에 옛 말 하며 살 날 오지 않갔네. 편지 자주 못하더라도 걱정 말라. 무소식이 희소식이니까니."

-"기왕 가는 길 편하게 보내 드릴 겁니더. 하지만서도 한 가지만 약속해 주이소, 정호 아부지."

태완이 고개를 들어 버들을 보았다.

"절대로 죽으면 안 됩니더. 무신 일이 있어도 살아 돌아와야 합니더. 정호캉 날마다 기다릴 깁니더."

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끝까지 울지 않았다.

p.273, p.274

 

 

 

버들의 남편인 태완과 마음을 나누고 이별하게 되는 장면.

버들-태완의 러브스토리를 살짝 보자면, 태완에게는 세상을 일찍 떠난 전여친 달희가 있었다.

버들은 그 사실을 알게되고 마음을 열지 않는 태완에게 울며불며 얘기하는데

태완은 동생 태완과 달희를 잃고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픔과 아픔을 통해 둘이 이어지는 이 부분이 참 좋았고 급하지 않게 기다려주는 버들의 인내심과 희생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둘의 인생이 평탄하지만은 않다.

무장투쟁파인 태완은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중국으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해야겠다고 달희와 아들 정호를 두고 떠나버린다.

어차피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도 아니고 가족보다 국가가 우선인 사람에게 무슨 말이 통할까.

버들은 여기서 또 한번의 희생을 감행한다. 울지도 않고 살아서 돌아오라는 그 말이 더 슬프고 애틋하다.

그래 죽으면 뭐하나. 살아서 만나야지.

그치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는 태완과는 어떻게 살아갈지...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책의 뒷부분에서 밝혀진다.

 

 

-오늘은 세 번째 곗날이었십니더. 계원은 일곱 명이라예. 구중 명옥 언니, 막선 언니, 백가 상회 영순이는 윗동네 교회에 다닙니더. 가입한 단체는 다르고예. 명옥 언니하고 막선 언니는 동지회고 영순이는 국민회라예. 우리캉 동갑인 봉순이는 아랫동네 교회에 다니면서 동지회 회원이고예. 젤로 어린 기화는 절에 다닌다 아입니꺼. 홍주는 교회도 동지회도 다 그만둬 삐릿습니더.

오늘 곗돈 타는 명옥 언니네 집에 모여 밥을 먹는데 스콜이 쏟아지고 무지개가 섰습니더. 언니가 우리 계 모임 이름을 무지개회로 짓자고 하데예. 계원이 일곱 명이라 그레 짓자는 줄 알았는데 성경에 무지개가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한다는 증표라고 나와 있답니더. 홍주는 무지개 색맨키로 우리도 다 다르다고 했어예. 우찌됐든 비 온 뒤에 환하게 서는 무지개처럼 우리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습니더.

p.312

 

언제, 어디로 보낼지 모르는 태완에게 보내는 버들의 편지.

태완 없는 버들은 꿋꿋히 아들 정호와 함께 궂은 일도 마다않고 씩씩하게 살아간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니까. 삶이란 그런거니까.

버들이 일하는 하와이의 와히아와에서 무지개가 떳다.

계모임 하나 결성하는 것도 쉽지 않은 버들에게 친구 홍주와 주변 한인사람들이 모여 계모임을 시작했다.

다들 정치적 이념도, 종교도 다르지만 이 순간 만큼은 무지개의 의미처럼 모두 행복하게 살길을 진심으로 바랬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그런 일을 어떻게하지? 싶은 일들이 많지만 태완없는 버들과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닌 홍주, 송화 (그리고 수많은 포와 이주 동포들) 는 그렇게 또 하루를 보낸다.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황금의 땅, 카자흐스탄> 특별전을 본 적이 있다.

드넓은 초원을 말을 타고 다니며 붉은 빛의 멋진 옷을 입고 그들만의 특별한 음악을 연주하며 황금으로 가득한 장신구를 차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으로 유물과 그들의 생활품을 보았고 전시가 마지막 끝날 때 즈음에는 자그마한 영상화면과 함께 헤드폰이 놓여있었다.

무심코 그 헤드폰을 귀에 대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한 15분 정도 영상이 2개였는데 끝날 땐 누가 볼사레 살짝 눈물을 닦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카자흐스탄 교포 3세가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인터뷰이로 있었고 지난했던 그들의 삶과 가족이야기, 힘들었지만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고맙고 좋았던 사람들, 그리고 멀어서 한번도 가진 못했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한다고 어색한 한국어를 통해 말했다.

고려인 할머니가 부르시는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듣고 나왔다. 내가 흔히 알고 있는 "아리랑~ 아리랑~ "이 아닌 조금 생소한 아리랑 노래였는데 각 지역마다 다른 아리랑인 것 같았다.

한국인 생김새지만 푸른 눈을 하고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 그들의 삶도 이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처럼 어떤 사연들이 있었을지 문득 궁금함이 떠올랐다.

우린 모두 다르지만 더 좋은 삶을 꿈꾸며 떠난다는 것이 같다.

버들과 그의 친구들, 태완과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도 각자가 꿈꾸는 세상이 있었을 것이다.

가슴 아픈 과거지만 그 무엇보다 응원하게 되는 세 엄마, 그리고 그의 아이들에게 "알로하"라고 외치며 더 큰 삶의 기쁨을 얻는다.

책의 마지막 구절과 함께, 알로하!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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