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 2
에밀리 M. 댄포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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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여름> 1권을 아껴 읽었는데 2권도 어느새 끝이 났다.

아직 올해 많은 책을 읽진 않았지만 단연코 2020년에 읽은 베스트 책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주인공 캐머런의 시선에서 "1992년~1993년 하나님의 약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돌이켜 쓴 일기장 같은 책인데

바로 옆에서 함께 떠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슬아슬한 현대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지금이야 헉! 스럽지만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1권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주인공 캐머런은 "하나님의 약속" 이라는 값비싼 학교에 들어간다.

이미 가족들은 내 편이 아니다. 할머니도 보이지 않고 하나뿐인 이모는 더욱 강경하게 보내버린다.

행동을 교정한다니. 게다가 동성애라는 단어도 인정하지 못해서 '동성매력장애'라고 부르다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너무 화가나고 어이가 없었으나 이게 실화인가 논픽션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서 또 화를 참고 한참 빠져서 읽었다.

동명의 소설이자 영화 <캐롤>에서도 이혼 후 양육권 소송 중인 주인공 '캐롤'에게 시댁 식구들은 정신과 병원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얼마전 알게 된 영화 <보이 이레이즈드>에서도 동성애 성향을 가진 학생들을 '하나님의 약속' 같은 종교적 학교에 보내버리고

정체성을 교화한다는 목적으로 전환치료를 한다. 영화를 보면 때리고 이상한 상담을 하고 그러던데...

퀴어 소재에서는 꽤 흔하고 진짜 일어나는 이야기인가보다.

하지만 역시 끝이 좋지 않다.

영화 <보이 이레이즈드>에서는 결국 친구 한 명이 자살을 시도하는데...

자세한건 스포라 말할 수 없으나 <사라지지 않는 여름2>에서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도 주인공 캐머론은 꽤 마음이 따뜻한 반항아인데 친구들이 차마 하지 못한 말이나 정곡을 콕콕 찌르는 발언들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해준다.

물론 실제 따뜻한 마음과는 다르게 이모와 할머니의 마음을, 친구들의 마음을, 릭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지마

이 시기의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불안한 환경에서 지내기 위한 방어기재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캐머론이 너무 좋아지는 소설이다.

마지막 장면에는 엄마 아빠를 잃은 그 호수로 가서 찬 물속에 한발, 한발 내딛게 되는데

이 모험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강한 응원을 하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라지지 않는 여름>이 내 기억속에 사라지지 않고 더 좋아지는 책이다.

<카메론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2018년에 제작되었는데 꼭 보고싶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 가짜 변화들에 속지 않고 진짜 '나'를 찾는 여행이 되길 바라며.

 

-'하느님의 약속 기독교 학교·치유 센터'에 온 루스 이모와 나를 공식적으로 맞이하고 센터 안을 안내해준 것은 제인 폰다였다. 우리는 여섯 시간을 줄곧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몸을 비틀어 이모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 "부모님 이야긴 하지 마세요." 내가 말했다. "내 부모님이었다면 절대 날 이딴 곳에 안 보냈을걸요."

...

"내가 이렇게 된 게 당신이 와서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어쩌면 나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는데, 엄마 아빠가 떠난 뒤에 당신이 했던 선택들이 다 틀린 건 아니었고요?"

이모의 표정을 보자 내 말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지 않았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저한테 당신 말고 누가 있어요, 루스? 그런데 이제 당신은 너무 늦기 전에 나를 얼른 고치겠다고 여기로 보냈죠. 나를 얼른, 빨리 고쳐버리려고요, 젠장. 평생을 이렇게 살지 않게 나를 치유하겠다고요!"

-"세상에 동성애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리디아가 말했다. "동성애라는 것은 일명 동성애자 권리 운동가들이 주입한 신화야." 리디아는 다음 말을 한 단어 한 단어 분명히 또박또박 발음했다. "세상에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은 없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부정한 욕망과 행동으로 인한 고통뿐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그 고통에 맞서 싸워야만 한다."

-어느 순간 제인이 느릿느릿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너도 이제 자기 자신을 망각하기 시작했어? 아니면, 아직이야?"

... "하나님의 약속에서는 우리가 자기 자신을 망각하게 만들거든." 제인의 말이었다. "아무리 네가 리디아의 말에 반박한들 이곳에서 너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거야."

"그래." 나는 대답했다. 여태 제인이 말하는 식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벌써 나 자신을 꽤 많이 잊어버린 것 같아."

-이곳 하나님의 약속에서 유예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처음 도착했던 순간부터, 줄곧 예전의 나 또는 예전에 나라고 믿었던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마 매주 일대일 면담을 통해 과거를 떠올리고 나면 반대로 그런 경험, 나를 '나로' 만든 배경과 더욱 긴밀히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들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제인은 이곳에서 하는 일이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거라고 했는데, 딱 맞는 표현 같았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곳의 가르침과 믿음 자체가 문제라는 거예요. ... 여기서는 마크처럼 그런 말을 진정으로 믿고 하나님은 물론 이곳의 바보 같은 체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조차 부족하다는 취급을 받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키라든지 귀 모양처럼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억지로 변화를 일으키려 하면서, 우리가 변하지 못한 것은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고,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믿게 만들어요. 마크도 그렇게 믿은 거예요."

-"난 영화 같은 데서 본 온갖 바보 같은 건 다 기억하면서, 엄마 아빠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어야 할 건 다 잊어버렸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오면, 미인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는 숨을 한번 들이쉰 다음 그냥 머릿속에 있는 말을 뱉었다. "아이린과 키스한 게 미안한 게 아니라,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으니까 그 사실을 모를 거라고, 들키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떤 게 미안해요. 돌아가시고 나면 어차피 모든 걸 다 알게 될 텐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죠. 그래도 미안했어요."

-"나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제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를 찾아온 건 그것 때문이 아니예요.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엄마 아빠가 돌아기시기 전에 다만 내 부모님이었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걸 이제는 이해한다는 거예요. 리디아의 말대로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부모님 탓으로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짜로 이해하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을 인간으로서 이하해고 싶었음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어요. 그리고 엄마 아빠도 날 몰랐떤 것 같아요.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것 외에는. 아마 두 분이 살아계실 때 난 아직 내가 되기 전이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지금도 나 완전히 나 자신이 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마침내 내가 된다면, 그땐 그 사실을 알 수 있는 건가요?"

-"중요한 건, 두 분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일어난 그 모든 일을 겪으면서, 두 분이 내 엄마 아빠라는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거예요. 고작 12년 동안이었지만, 그리고 만약 두 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아직도 몰랐을 테지만요. 여기 온 건 그냥 이제는 그 사실을 안다고, 그리고 너무 늦었고 충분하지 않겠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예요. 그래도 그동안 확실히 알게 된 게 하나 있어요."

... "뭍에 닿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난 몰라요." 내가 말했다. ..." 하지만 엄마 아빠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을 거라고,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일도 저를 넘어뜨릴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싶어요. 적어도 그리 심하게 넘어뜨리진 못할 거라고요."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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