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날
조지 실버 지음, 이재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지금 이 맘 때,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연말에 조금은 따뜻하고 조금은 헛헛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뭉클뭉킁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며, 크리스마스 풍경을 걸으며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12월의 어느 날>은 크리스마스 영화같다.

우선 작가인 조지 실버부터 알아봤다.

그녀는 '남부끄럽지 않은 로맨티스트'라고 스스로를 설명하면서, 22살 생일에 자신의 발을 밟은 남자와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 한 편의 영화같은 사랑을 한 작가다!

그런 작가가 한 편의 영화같은 로맨틱 장편 소설을 하나 썼다!

지금 읽으면 딱 좋을, <12월의 어느 날>.

4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로리, 잭, 세라, 오스카다.

주로 로리와 잭의 입을 빌려, 2008년부터 2017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이 책은 펼쳐진다.

12월의 어느 날 차안에 있던 로리가 버스 정류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잭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둘은 눈이 마주친다.

둘다 운명을 느끼고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 순간 버스는 떠난다.

그리고 오랫동안 로리는 이 버스보이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절친 세라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주는데, 그게 바로.. 역시 운명의 장난일까, 바로 그 버스보이, 잭이다.

참 영화같고 드라마같고 하지만 그게 인생같은 한 대목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절친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그저 축하할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또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부분은 책에서 직접 읽어보면 더 재밌을 것이다.

세라에게도 오스카라는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고 결국 세라와 잭은 더욱 가까이, 그리고 로리와 오스카는 관계가 깊어진다.

하지만 예기치않은 사건, 사고들로 4명의 주인공은 순탄치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이 책은 12월에 꼭 읽었으면 좋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책이다.

조금은 현실적이고 조금은 고약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과연 두 주인공 로리와 잭은 이어질 것인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둘의 사랑 또는 넷의 각자의 사랑을 응원하면서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

 

 

겨울철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죄다 병균 과적으로 쓰러지거나 죽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10분째 기침과 재채기 세례를 받고 있다. 그뿐 아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또다시 내게 비듬을 턴다면, 그때는 내가 이 미적지근한 커피에다 여자를 담가버릴지도. 아니 남은 커피를 여자에게 부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차피 커피는 여자의 두피 각질로 그득해 더는 마실 수도 없다.

죽도록 피곤하다. 술 취한 인간처럼 흔들대는 이 초만원 2층 버스의 위층에서도 절로 잠이 들 정도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휴가다. 일에서 놓여나 너무 기쁘다.

2008년, 12월 21일 _로리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기다리는 버스가 이 버스는 아닌지, 남자는 들고 있는 하드커버 책에 계속 열중해 있다. 남자가 시선을 끈 이유는 눈앞에 일어나는 밀고 밀리는 북새통 따위 안중에 없는 무심함 때문이다.

... 우리의 시선이 똑바로 만난다.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내 입술이 달싹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갑자기 그리고 난데없이, 이 버스에서 내려야 할 것만 같다.

... 제발 버스에 타요. 그가 별안간 움직인다.

... 안 돼! 안 돼! 이 정류장에서 떠나기만 해봐, 그러기만 해봐! 이러지마, 크리스마스잖아! 소리 지르고 싶다.

...

관객이 있었다면 아카데미상도 아깝지 않을 60초짜리 무성 영화였다. 만약 누군가 내게 첫눈에 빠진 적이 있는지 물어보면, 이제부터 나는 그렇다고 해야 한다. 2008년 12월 21일의 어느 눈부신 1분 동안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2008년, 12월 21일 _로리

운명적인 장면이다.

일에 찌들어 피곤한 주인공 로리와, 버스보이 잭의 첫 만남.

둘은 범상치 않은 운명을 느끼지만 역시 인생은 타이밍.

버스는 떠나고 둘은 만나지 못했다. (한동안은 말이다.)

2008년을 시작으로 영화같은 일이 펼쳐지는 바로 그 순간의 시작.

둘 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다면 다르게 행동했다면 이 책은 다르게 쓰여졌을까?

 

 

 

 

"저 남자를 사랑해?"

그녀가 머리를 내저으며 시선을 돌린다. 내겐 물어볼 자격이 없기 때문에. 특히 이런 질문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야, 잭." 그녀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 눈에 어린 연약함이 나를 더 개자식으로 만든다.

"알았어." 내가 말한다. 진심이다. 그녀를 당겨 포옹하고 우리의 우정을 있어야 할 자리에 도로 가져다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내 안의 뭔가가 로리와의 포옹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의 폭풍 치는 눈을 들여다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기분이 이상하다. 오늘 저녁의 내 행동만이 아니라 지난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는 기분이다. 오래전 그날 버스 정류장에서 본 기억이 없다고 거짓말해서, 눈보라 속에서 키스해서, 항상 빌어먹을 실수만 해서, 미안하다고.

실제로는 10초나 흘렀을까, 하지만 내게는 10분 같은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놓는다.

나는 미소 짓는다. "먼저 내려가, 금방 따라갈게."

그녀가 다시 끄덕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내가 보지 못하는 사이에 로리는 어른이 됐다. 이제 나도 그래야 할 때다.

2012년, 3월 10일

기억을 떠올린다. 세라를 처음 만난 날. 잭을 처음 본 순간. 그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뒤얽히고 복잡해졌는지. 우리는 삼각형이다. 하지만 변의 길이는 항상 변했다. 어느 것도 어느 한 순간도 동등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울 때가 온 것 같다.

2013년, 2월 16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큰 행복을 주지만 어쩌면 가장 많은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존재도 될 수 있는 것 같다.

버스보이 잭이 개자식이! 되는 순간들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사람이 아프고 인생에서 큰 일이 생기면 고약해진다.

바로 잭처럼...!

그래서 주변 사람들도 떠나가게 하고 본심과 다르게 퉁명스러워지지만 그럴 때 일수록 주변사람에게 잘해야한다는 교훈도 얻게 된다.

잭이 로리에게 남자친구인 오스카를 사랑하냐고 묻는 장면.

결국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게 되는데 미안해의 마법처럼 그 안에는 많은 사과와 후회와 감정이 담겨 있다.

스포는 아니지만 잭은 로리에게 버스에서 만난 기억이 없는 척, 세라 옆에서 처음 봤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잭도 그 날을 분명 기억하고 크게 느끼고 있었다.

잘생기고 남자답고 매력있게 나오는 잭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용기도 없고 심보도 나쁘고 자기만 아는 사람인 부분도 많아서

나도 모르게 로리를 응원하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잭, 그리고 뒤돌아 걸어가는 로리.

잭은 그때 로리가 낯설게 느껴진다. 자기와 떨어진 사이에 로리는 이제 자신만의 길을 당당히 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장면.

그리고 이어서는 로리와 절친 세라와의 이야기다.

자세한 내막은 <12월의 어느 날> 책을 읽어야 알 수 있지만 이 4명의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진짜 다양하고 각자를 응원하게 되고 안타깝고 그랬다. 아마 이 책이 영화로 나오면 진짜 좋을 것 같다고 느낀 포인트도 바로 이런 것 같다.

로리도 더이상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홀로 서기를 다짐하는 장면이 로리의 입으로 말하고 있지만 4명 모두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 같다.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관계,

그리고 사랑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도 마음에 품고 있는 이 복잡한 감정들 속에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는

<12월의 어느 날>을 읽다보면 모두 풀린다.

따뜻한 연말 더 따뜻한 책으로 읽어보면 좋을 이야기다.

*이 글은 아르테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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