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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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게 특이하고 유쾌하고 재밌는 소설이 하나 나왔다.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암 선고를 받은 70세 할아버지 '빅 엔젤'은 생일 일주일 전 100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장례식과 자신의 생일파티를 한번에 치르려고 결심한다.

가족들도 그냥 가족들도 아니고.. 엄청난 대가족!

인원수도 많지만 스토리도 많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얽혀 각자의 입으로 그리고 기억으로 전해지는 과거와 현재, 미래 이야기가 뭉쳐있는데

웃기기도 하고 (속 시원한 욕도 많아서 빵빵 터진다)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철학적인 말들도 있고 슬픔도 있고 그렇다.

이 <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을 쓴 범상치 않은 작가,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아부터 찾아봤다.

소설에도 배경이 되는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태어나 멕시코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다양한 경험과 문화적 차이를 겪었다.

실제로 이 소설은 그의 형의 마지막 생일파티를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울다가 웃다가.. 필력이 장난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가족의 뿌리깊은 연대까지 연말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웃기고 재밌었다.

 

 

 

-빅 엔젤은 어머니의 장례식에 지각했다.

그는 침대에서 고개를 벌떡 쳐들었다. 발에 침대 시트가 이리저리 감긴 채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닫자 옆구리에서 땀이 송송 솟았다. 해가 중천이었다. 가늘게 뜬 눈꺼풀 사이로 빛이 환했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타오르고 있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먼저 가 있을 것이다. 안 돼. 이러지 마. 오늘은 안 된다고. 그는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빅 엔젤 데 라 크루스는 시간을 엄수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미국인들은 그를 카리켜 '독일인'이라고 부르곤 했다. 참 웃긴 일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멕시코인이라고 해서 시간을 안 지킬 거라고 생각하다니.

-병이 나기 전,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사무실에 도착했다. 회의할 때는 매번 남들보다 먼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올드 스파이스 향수 냄새를 온몸에서 자욱하게 풍겨대면서 말이다. 그는 종종 회의 참석자 전원을 위해 스티로폼 컵에 커피를 따라놓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잘해주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다들 지랄 떨지 말라는 의미였다.

-빅 엔젤은 자식들에게 말했다.

"뭐든 해내는 맥시켄 Mexi-can이 되어라. 우리는 능력 없는 맥시캔트 Maxi-Can't가 아니야."

-잠깐. 지금. 몇 시지? 우리 언제 출발하나? 페를라는 아직도 옷 입는 중인가?

그는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가문의 모든 역사와 이 세계, 태양계와 우주가 기묘한 침묵 속에서 그의 주의를 빙글빙글 돌았다. 몸속 피가 뚝뚝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며 그의 존재를 갉아먹었다.

-빅 엔젤이 최근 세 번이나 죽을 뻔한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예상치 못하게 부활하여 집으로 돌아와서는 더욱 오만하게 구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이 크기로 쪼그라들어 열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상태였고, 그마저도 보행기에 기대서 걷는 수준이었다. 그의 아들이 휠체어에다 자전거 경적을 달아주자 빅 엔젤은 빵빵 소리를 내면서 혼자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한 집안의 가부장이라기엔 참 열적은 꼴이 분명하지 않은가. 조그만 애들과 길 가던 놈팽이나 웃을 뿐이지.

책의 앞 부분에 많이 묘사되고, 그의 입을 빌려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인 빅 엔젤이다.

지금은 70세의 나이로 휠체어를 타며 자신의 손으로 옷도 못 입고 목욕도 할 수 없어서 답답한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한 때 그는 자식들에게는 강인한 아버지로 (때론 모진 매로 심하다고 싶을 때도 있다)

부인에겐 따뜻하고 로맨틱한 소년으로 산 한 사람이다.

책에는 멕시코와 미국인 모두를 까는 풍자적인 블랙 코미디 내용이 많은데 문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을 잘 해줘서

함께 공감하며 웃픈 ㅠㅠㅋㅋ 이야기들이 많았다.

빅 엔젤.

이름처럼 이 집안의 장남으로 여러가지 이야기와 행복, 그리고 슬픔이 가득찬 비운의 사나이다.

책의 제목처럼 100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장례식장에 온 가족들이 모이게 되는데 얼추 일주일 후면 자신의 생일과도 날짜가 가깝고

모두 바쁘기도 하고, 왔다갔다 교통비도 만만치않고 이래저래 다들 모이기 힘드니까 자신의 '마지막' 생일파티도 함께 하게 된다.

왜 자꾸 마지막이라고 할까.

생일이면 생일이지 마지막 생일파티라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암에 걸린 70세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글을 읽고 이해해보고 주인공이 되어보려고 읽었다.

어느정도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신 걸까.

그리고 책의 중간 부분에 보면 사랑하는 딸 '미니'가 목욕도 해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는데 문득 빅 엔젤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목욕도 하기 싫도 딸 앞에서 옷도 벗기 싫고 그래서 저항하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예전에는 내가 너를 목욕시켜줬는데... 이제는 당신이 아이가 되어 딸의 손을 살고 있는 모습에 가족애도 느껴지고 인생에 대한 뭉클한 슬픔도 함께 느껴졌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 그리고 가족이란 뭘까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대목이다.

 

-"나의 달콤하고 귀여운 페를라."

그는 이렇게 쓴 다음 이 말 뒤에 새로운 첫 마디를 써넣었다.

참으로 귀중한 페를라

새장 속에 갇힌 새가 하늘을 그리워하듯, 나는 네가 그리워. 나는 지금 새장 속에 갇혀 있어. 하지만 자유로워질 거야. 그리고 널 찾아갈 거야. 내가 널 그리워하듯, 너도 날 그리워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될 거야!

그는 이런 맥락으로 몇 줄 더 쓴 다음 눈물과 크나큰 입맞춤과 온갖 열정을 담아서 편지를 끝매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부두에 있는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브라울리오는 1971년에 태어났다. 빅 엔젤은 아이들의 존재를 몰랐다. 그는 페를라에게 매년 편지를 보내서 자기가 있는 북부로 오라고 간청했다. 그 편지는 훗날 잃어버렸지만, 두 사람 모두 이 구절을 기억했다.

"우리에게 아직 삶이 있고 우리가 위엄을 지닌 채로 투쟁할 수 있을 때 나한테 와줘."

그건 페를라가 이제껏 들었던 말 중 가장 고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든 걸 던지고 그와 함께하기 위해 북부로 왔다.

-페를라에게 편지를 보내서 나에게 오라고 했어

아들이 둘 딸려도 괜찮다고 했어

나의 페를라에게 편지를 보냈어

동생 둘을 기르고 있어도 괜찮다고 했어

그래서 페를라가 내게 왔어

마침내

진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빅 엔젤과 그의 아내 페를라의 만남 이야기다.

그 둘이 처음 만난 것은 15살, 17살 무렵일 것이다.

경찰서인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에 들어가서 교통사고 관련 조사를 받고 있는 어린 페를라를 처음 만난 빅 엔젤.

빅 엔젤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지만 현실은 그 둘을 이어주지 못했다.

아버지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려 가정을 깨트리고 어머니는 빅 엔젤을 삼촌인 첸테벤트에게 보내 선원 생활을 하게 한다.

그 사이 용기를 내서 페를라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페를라는 연락이 없던 빅 엔젤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이렇게 또 우여곡절 끝에 페를라는 아이를 가지게 되고 이혼을 하게 되고

빅 엔젤은 그런 그녀에게 숱한 구해로 결국 둘은 함께하게 된다.

책의 앞 부분에도 더이상 육체적 사랑을 나눌 수는 없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눈으로, 과거의 소년 소녀의 만남의 감정이 남아있는 채로 아내인 페를라를 바라보는 눈이 참 따스했다.

"우리에게 아직 삶이 있고 우리가 위엄을 지닌 채로 투쟁할 수 있을 때 나한테 와줘."

이 말을 듣고 페를라는 빅 엔젤이 있는 북부로 떠나게 되는데 70세인 지금 빅 엔젤에게는 정말 결정적인 순간이자 영원의 순간일 것 같다.

 

 

-그는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 지금 빅 엔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 있던 자그마한 수첩. 그것은 빅 엔젤의 우주를 상징했다. 이름을 잇는 선들, 그 선들은 너무 복잡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 옆에 있는 이 여자. 페를라. 미니. 랄로. 사탄의 히스패닉. 파주주. 하지만 주로 그의 큰형을 생각했다. 형을 떠나 보낼 때가 다되어서야 불현듯 드는 깨달음은 자신이 빅 엔젤의 참모습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가족들.

내 평생을 함께 했는데도 내가 가족을 잘 모르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이 장면도, 빅 엔젤의 동생, 리틀 엔젤이 문득 가족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다. 참 공감이 많이 됐다.

70세의 형을 떠나보낼 때가 되어서야 진정으로 내가 형을 몰랐구나 깨닫는 장면인데 이것도 마음이 뭉클했다.

빅 엔젤이 아프고 나서 친구가 조언을 하나 한다.

수첩 하나를 쥐어주고는 이 안에 일상에 감사한 것들을 적으라고 한다. 거창한 게 아니어도 좋다.

항상 먹는 과일도 좋고, 어느 날 느낀 날씨도 좋고... 소소한 것도 좋으니 감사일기를 단어로라도 쓰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빅 엔젤이 뭐 이런걸 하냐고 욕도 하고 시덥지않아 하지만 언제나 주머니가 달린 셔츠에는 이 수첩을, 아니면 바지 뒷주머니에 이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적게 된다.

그 안에는 물론 "동생이 해준 키스"도 포함된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이 수첩을 가족들에게, 너무 빨리는 말고 나중에 꼭 꼭 전해주라고 동생인 리틀 엔젤에게 신신당부도 하면서.

나이가 들고 아프면 (나이가 들지 않아도 생활이 고달프고 아프고 녹녹치 않으면) 사람은 고약해진다.

그리고 나약해질수록 세월과는 반대로 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런 빅 엔젤이 측은하게 느껴지면서 일상의 소소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모습들이 멋졌다.

그런데 70세면 아직 창창일수도 있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젊은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만,

자신의 손으로는 일상적인 생활도 할 수 없고 암에 걸려서 아프고 하면... 삶을 점점 마무리하고 싶어질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진짜 이 책의 제목처럼 빅 엔젤은 '마지막' 토요일을 보내게 되는 건지.. 그리고 가족들끼리 숨겨둔 미스테리한 일들과 과거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이 책을 술술 읽다보면 인생의 비밀처럼 알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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