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베스 올리리 지음, 문은실 옮김 / 살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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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열리는 법.

필사적으로 좋은 점을 보고 싶다. 손톱만 한 구석이라도 주방 벽에핀 형형색색의 곰팡이는 문질러 없애면 된다. 잠깐이라도 그렇게 지내자. 더럽다는 말도 무색한 매트리스는 내버리고, 싸구려를 하나 사 오면 그만이다.

-"그 집에서는 나와야 해. 지금 당장, 설령 저스틴이 패트리샤를 데리고 다시 나타나는 걸 참으며 산다 해도, 그 집세는 어떻게 감당하겠어? 저스틴에게 돈을 잔뜩 빚졌고, 나는 지금 정말 누구한테도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아. 나 스스로 생활비를 내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데. 그래서 솔직히 말하는 거야... 이 집 아니면, 셰어하우스야."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동시에 한 침대에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뭐. 한 집에 같이 있을 일도 없다고."

독특한 영미 장편소설이 나왔다. 바로 <셰어하우스>.

원제는 The Flatshare 인데, 인터넷에 쳐보니 공유경제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주택 공유도 증가하여 스페어룸(Spareroom), 플랫셰어(Flatshare), 룸버디즈(Room buddies)처럼 이상적인 동거인을 찾아주는 인터넷사이트가 미국과 영국에서 인기라고 한다.

(정말인지는 안 살아봐서 모르겠다.)

그래서 이 소설도 바로 티피와 리언, 두 남녀가 한 집에 룸메이트로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얼핏보면 그저 로맨스소설이나 연애소설일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동거라는 주제로 벌어지는 당당한 홀로서기다.

여기서 홀로서기는 전 남친 저스틴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자 주인공 티비 뿐 아니라, 간호사 교대 업무와 감옥에 있는 남동생 등 여러가지 일들로 바쁜 남자 주인공 리언에게도 마찬가지다.

동거라는 주제는 종종 로맨틱 코미디와 소설 속 다뤄지는 주제인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를 아주 따끔하게 꼬집고 생각해볼 만한 거리도 많이 준다.

페미니스트 코드도 곳곳에 숨어있으니 읽으면서 현 시대를 바라보면 어떨까.

 

 

 

 

 

 

-"저스틴과의 관계에서 너는 상처를 입었어, 티피."

모가 사근사근하게 말했다.

"그는 널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머리를 흔든다. 저스틴과 나는 많이 싸웠다.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화해했고, 싸우고 난 다음에 우리 사이는 한층 더 로맨틱해질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다툼이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의 다툼은 다른 커플들과는 달랐다. 싸움은 한없이 아름답고 정신없는 롤러코스터 같았던 우리 관계의 일부일 뿐이었다.

"언젠가는 전부 이해되는 날이 올 거야, 티비."

모가 말했다.

"그때가 되면 나한테 얘기해, 알겠지?"

모의 말을 제대로 이해도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뭔가 불리한 듯한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네 스스로 이런 생각에 도달해야 했어. 그게 맞는 일이야. 남이 옆에서 얘기해줘서가 아니라. 예전의 너는 그에게서도 떨어지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그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강했던 거야."

-우리는 나의 기억대로 사건들을 짚어갔다. 고성이 오가는 싸움, 미묘한 힘겨루기, 심지어 더 교묘하게 내 독립성이 잠식되어갔던 방식. 나와 저스틴의 관계가 얼마나 건강하지 못했는지 믿을 수가 없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이해해야 할 문제였다.

앞 부분인 97쪽에 아리송하게 친구들의 조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과

240~241쪽에 이제는 깨달음을 얻고 잘못된 과거를 돌이켜보며 앞날을 바로 잡는 주인공과의 간극이 참 크다.

전 남친 저스틴은 바람을 핀 것도 모자라 티피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아주 나쁜 남자다.

하지만 드라마든 소설이든 현실이든 결국 본인이 그 잘못된 악이 구렁텅이에 빠져나오려면 직접 깨닫는 수밖에.

나쁜 관계도 중독이다, 중독.

아무리 주변에서 도와주려고 해봤자 관계만 나빠지고 오히려 이상한 불씨가 타올라 더 돈독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이 <셰어하우스>는 나름 사이다 책이다!

더 자세한 것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셰어하우스를 통한 동거가 이 둘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라는 책으로 유명한 크리스텔 프티콜랭의 최근 책을 읽어봤다.

제목은 <당신은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하군요> 라는 책인데, "나쁜 관계에서 나를 지키는 방탄 심리학"이라는 재밌는 설명처럼 정말 전 남친 저스틴 같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좋은 지침과 조언들이 들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심리 조종자"라고 일컫는다.

교묘히 사람을 조종하고 자존감 브레이커이자 가스라이팅 (요즘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처럼 바로 이런 상황을 대신할 만한 말은 없는 것 같다)을 당하게 만드는 사람들인데 참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럴 때 일수록 주변 좋은 사람들과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꼭 헤어나왔으면 좋겠다.

티피가 이 사실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당신은 집 냄새가 나."

"당신은 집이야."

그는 단순명료했다.

"당신은 침대고, 우리 집이고...."

그가 말을 끊는다. 무언가 큰 의미가 있는 단어들을 찾을 때 그는 늘 그러하듯이.

"당신이 오기 전까지, 그곳은 집이 아니었어, 티피."

셰어하우스의 룰 넘버1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인 한 집에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리언은 새벽 교대 근무를 해야해서 티피가 출근하는 시간이나 활동시간에는 겹치지 않는다. 그래서 둘은 만날 필요가 없고 만날 시간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작된 메모.

집안 곳곳에 서로의 메모 흔적들이 늘어가고 이제 셰어하우스라는 공간이 둘 만이 공간으로 자리잡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 리언, 그리고 제멋대로인듯하지만 누구보다 사랑이 넘치는 티피.

그 주변에 매력 넘치는 지인과 친구들까지 500쪽 분량의 베스 올리리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그래서 그 둘은 결국 어떻게 되는지... 전 남친 저스틴은 전 남친으로 이렇게 쉽게 물러날 것인지... 그리고 리언의 하나뿐인 남동생은 감옥에서 어떤 일들이 벌이지는지...

셰어하우스에는 함께 나눌 이야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 글은 살림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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