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
문은강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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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문은강 작가님의 한국소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뭔가 유쾌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띠지도 재밌다.

"2019년, 가장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소설! <오베라는 남자>보다 더 재밌고 감동적이다"라는 유성호 평론가의 힘있는 한마디와 함께 책을 펼친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를 봤었다.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할아버지, 오베.

아름다운 스웨덴 배경의 영화를 통해 인생의 쓸쓸함과 노년의 유쾌함을 배웠고 마저 읽게 된 원작 <오베라는 남자> 소설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믿고 보는 책이 되었다.

그런데 고복희와 오베라니?

무슨 연관이?

책을 읽다보니 알겠다.

아래 몇가지 고복희 사장님(?)의 이야기를 펼쳐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누구보다 까칠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함께 있으면 든든한 그런 사람.

살아온 길이 결코 평탄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함께 비를 맞으며, 해를 맞으며 디스코 춤을 추고 싶다.

 

 

 

고복희는 이해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가벼운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전쟁을 겪고 휘청이던,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는 없었다. 둥그런 굴렁쇠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동시에 숨을 삼켰다. 꿈, 희망, 미래와 같은 관념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날의 공기는 낙관으로 가득했다.

프롤로그

누군가는 고복희를 괴팍한 여자라고 정의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단지 고복희는 '정확한' 루틴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 원더랜드의 대문을 열고 닫는 시간은 오전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체크인은 정확하게 오후 두시 이후, 체크아웃은 오후 열두시 이전. 원더랜드의 투숙객은 모두 이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

뭐, 별수 없다. 어쨌든 지금 고복희는 원더랜드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건 언제나 고복희가 지켜왔던 삶의 원칙이었다.

잘못 오셨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박지우도 마찬가지다. 원더랜드에서 뭘 하냐면서 시간을 보내든 고복희가 상관할 바 아니지만, 며칠째 마주하다 보니 거슬린다. 이곳이 아무리 재미없다 한들 관광을 하러 왔으면 관광객다운 태도를 취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틀어박혀 있으니 괴상한 질문이나 하게 되는 거다.

"시장에 가겠습니까?"

고복희의 말에 박지우의 동공이 커졌다. 객실로 후다닥 달려가 목 늘어난 원피스를 벗어던지고 새로 산 티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의 배경은 캄보디아. 그것도 앙코르왓트와는 어느정도 가까운 곳에 있는 시암립이 아닌 프롬펜.

주인공 박지우는 슬프지만 노오력으로도 잘 풀리지 않아 무작정 여행을 떠나온, 그것도 첫 해외여행을 온 취준생이다.

그곳에서 원더랜드라는 호텔 사장님, 고복희를 만난다.

똑 단발에 까칠한 말투, 엄격한 원칙, 스위스 시계보다 정확한 입실 퇴실 시간까지.

쉽지 않은 한인 호텔 사장님이다.

요즘 여행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 중 또 유행하는 게 바로 한달 살기!

어느 한 국가와 지역을 정해서 한 달 오롯이 살아보는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도 아직 곳곳 안가본 곳, 모르는 곳이 많은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신기한 곳들이 많은데 여행지를 랜드마크 찍듯이 다니다보면 이렇게 진득하니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싶어질 때가 있다.

바로 그런 마음으로 한달 살기가 유행하나보다. 심지어 퇴사하고, 취업 전에 떠나는 나를 위한 여행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어떤 기사를 보니 요즘 핫한 여행지로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스페인 등 다양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마음에 나를 위해 선물하는 여행으로 떠나온듯 하였으나...

고복희와 주변 한인사람들, 그리고 현지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했던 여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게 여행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이 장면을 참 좋아한다.

"시장에 가겠습니까?"

고복희 사장님이 널부러져서 관광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는 박지우를 보고 건내는 말.

마치 한 사람에게 이름을 불러줘서 의미를 만드는 것처럼, 수많은 장미 중 여우만을 위한 장미를 발견한 것처럼

나는 이 장면에서 복희와 지우의 관계가 사장-투숙객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시장에서 먹은 국수를 복희가 사주는 줄 알았는데 숙소에서 더치페이 받아낸 것은 함정!

벽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아올린 벽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단단하고 견고해졌다.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는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몸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다. 세찬 비가 내린다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니까. 지난함을 견디는 것이 인생이니까.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성가신 남자는 매일같이 찾아와 조금씩 그녀의 벽을 허물었다. 어떤 날은 달콤하게, 어떤 날은 아프게.

...

고복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낱낱이 새겨진 손금 사이로 무수한 시간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영원희 붙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

많이 남았다. 아직 못 해본 일들이 넘쳐났다. 디스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고 남쪽 나라에 놀러가지도 못했다. 바보 같다고. 늘 이상한 짓만 한다고. 무뚝뚝한 얼굴만 보여줬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당신이 안고 온 세상은 정말로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가 볼 때마다 울컥한 노년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디즈니 픽사의 영화 <업>에서 남자,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꿈꾸다가 아내를 떠나보내는 장면.

불과 1~2분 안에 빠르게 장면이 전환되면서 한 남자의 일대기가 그려지는데 그 장면이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먹먹하다.

또 하나는 책과 영화 <오베라는 남자>에서 주인공 오베 할아버지가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단정하고 또 단정하게 몸가짐을 한 뒤 자살을 하려고 목을 메는 장면.

굉장히 밝고 재밌게 그렸지만 이제 더이상 살고 싶지 않고 살만큼 살았다는 기분으로 넥타이와 양복, 그리고 자살할 올가미를 목에 메는 기분은 어떨까.

그리고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에서도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고복희가 있었다.

"사라졌다. 완벽하게."

이 문장으로 남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실감한다. 물론 책의 초반부터, 아니 책을 뒤집어서 뒷 표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고복희는 올해로 오십 살이 됐고 평생 밥해주겠다던 남편은 요리하기가 귀찮았는지 먼저 세사을 떠났다. 고복희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민박에 가까운 호텔 '원더랜드'를 운영한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성격 탓에 호텔은 망하기 직전. 그런데 이 호텔에 무려 한 달 동안 살겠다는 멍청이가 나타났다. 방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좀 나가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나 왔다는 스물여섯 살 백수."

그렇다. 스포는 아니지만 고복희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고 그렇게 신날 것 없는, 다를 것 없는 하루 하루를 버티고 살았다.

그런데 지우와 현지 직원 린이라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 새로운 감정과 인생들이 생겨났다.

 

 

 

 

 

 

원더랜드는 낙원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순간 틈입해 평화를 뒤흔들어놓고 떠나는 사건들이 넘쳐났다. 무엇보다 힘든 건 그로 인해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였다. 너는 별로인 사람이야. 세상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놓치는 순간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걸.

다 함께 모여 춤추는 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동그란 지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으로 빼곡할 것이다. 저마다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난 이들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고복희가 원더랜드 대문을 연다. 이 단순한 행위는 반복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저 남쪽의 어느 나라라고 기억될 이곳에.

이 책이 유쾌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옛날 옛적 동화책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감동적이다.

함께할 사람들은 함께하고, 떠날 사람들은 떠난다.

고복희가 혼자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이 생길수도 있다.

이 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한인타운의 한인교회에서 펼쳐지는 갈등, 그리고 고복희를 배척하는 텃세의 무리들과 주인공 지우의 혼란스러운 인생관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다녔던 여행지들,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 한인민박 사장님들까지 다 기억이 났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더 잘 알기 위해서인 것 같다.

이번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캄보다이 여행지를 다녀온 기분이 든다.

아마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제목과는 다르게, 고복희가 춤추는 장면은 이 책에 없다.

디스코 장에 가고, 미래의 남편이 될 사람이 댄싱머신이라도 고복희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언젠가 고복희가 춤출 날을 상상하며, 까칠해도 좋으니까 원더랜드에 가보고 싶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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