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다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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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블레즈 파스칼

 

 

 

나는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섬마을 보라보라에 살고 있다. 아마도 그 이름만 듣고 섬의 위치를 바로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항에서 탑승권을 발급해주는 직원조차 늘 어디에 있는 곳인지 묻고는 하니까.

...

이건 그즈음의 이야기다. 한국을 떠나는 게 집에서 멀어지는 건지 가까워지는 건지, 보라보라에 도착하면 여행이 시작되는 건지 생활이 시작되는 건지. '그'가 외간 남자인지 남편인지조차 몰랐던, 아직은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했던 나의 첫 보라보라. 그 시작을 함께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식 없는 결혼을 했고 검은 고양이 쥬드와 함께 보라보라섬에 살고 있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프롤로그, 보라보라 사람들

 

 

 

보라보라 섬이라.

아주 예전에 나 때는 말이야, 동방신기가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고 해서 처음 보라보라섬을 알게 되었다.

예쁜 휴양지 느낌의 멋진 바다가 펼쳐진 뮤직비디오였다.

그곳이 어딘지 무슨 언어를 쓰는지 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모른채.

<우리만 아는 농담>은 보라보라섬에서 지낸 일상을 엮은 에세이다.

그래서 보라보라섬이 어디라고?

초록창에 검색해보니 타히티에 있는 섬인데, 타히티는 어딘가하니 남태평양 중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는 소시에테 제도의 주도라고 써있다.

아~ 그래서 프랑스어를 하는거였구나!

아무튼 <우리만 아는 농담>에 중간 중간 실려있는 사진과 여행지 관련 연관 이미지를 보다보니 여행가고 싶어진다.

여행과 일상의 차이.

그곳에 살아보면 어떨까.

보라보라섬의 일상을 책에서 보물처럼 건져올리는데 참 가보고 싶어진다.

 

 

 

 

폴 고갱, <타히티의 두 여인>, 1982년

 

 

보라보라섬이 있는 타히티라고 하면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의 여인들>, <타히티의 두 여인> 그림이 떠오른다.

와, "고갱 타히티"만 쳐도 그것 말고도 참 많은 그림들이 있다.

이 자유롭고 아름답고 신 적인 여인들의 모습을 보니 타히티의 전경과 그림을 그리는 고갱이 눈에 그려진다.

폴 고갱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마음이 아려오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책까지.

이렇게 내 머리 속으로 조합해온 타히티, 보라보라섬의 이미지는 그랬다.

자유롭고 또 자유롭고. 물론 육지와 떨어져 있어서 삶의 제약은 있지만 예술이 살아 숨쉬고 삶의 애환이 있는 그런 곳.

생소하다 못해 낯설어서 이 <우리만 아는 농담> 책이 더 신선했다.

 

 

 

 

 

 

나는 지금도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반짝거리는 일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거나, 그저 지루함을 버텨내는 일이거나,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일이어도 괜찮다. 상대에 따라 전부이거나 혹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 운이 좋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낼 수도 있는 일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의 일들을 지나오는 동안 우리가 조금씩 성장해왔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작은 일도, 무의미한 일도 그래서 모두 의미가 있다.

우리들의 일

 

 

살아가면서 느끼는 게 있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 그리고 그리고 더 올라가 윗 세대까지.

일을 해보니 일이라는 게, 업이라는 게, 그 단어가 지닌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일하는, 아니 일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히어로다.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꾸준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 고수고 장인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일 아니더라도 무의미하고 사소한 일도 모두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라는 표현이 참 좋았다.

 

 

 

 

 

 

 

 

기뻤다. 그리고 망설어졌다. 좋아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의 차이. 곧 진심과 태도의 차이에 대해 나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사실 남편은 오래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했다. 자기가 모든 것을 감당하겠다고 했다. 건강검진도 데려가고, 놀아주고, 언젠가 우리가 섬을 떠날 때 필요한 고양이 여권도 알아서 만들겠다고 했다(지금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저녁마다 친구들과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친구들은 비틀즈의 노래 <Hey Jude>를 듣다가, 우리 고양이의 이름을 '쥬드'라고 지어주었다. 친구의 아이를 위로갛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던 폴 매카트니의 마음처럼, 쥬드에게도 우리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히려 우리가 훨씬 많은 위로를 받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도 고양이가 찾아왔다.

헤이 쥬드, 돈 비 어프레이드

 

 

오늘까지도 쥬드는 보라보라섬에서 내 한국말을 들어주는 유일한 친구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쥬드와 말이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

누가 그랬다. 잘 알려진 고양이 캐릭터에 입과 표정이 없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쉽게 투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나도 쥬드와 말을 할 수 없어서 안심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걸까. 상처 주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다.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간

 

 

 

보라보라섬이든 한국이든 길냥이를 입양하는 감동적인 순간은 같다.

그리고 고양이가 집사를 간택하는 그 순간까지.

요즘 '분양하지 말고 입양하자'는 펫 캠페인이 많이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동물 관련 프로그램에서 나름 유명하다는 소장님이 나와 훈육할 때 "안돼, 이리와, 손, 저리가, 빵야" 같은 것을 가르치면서 먹이와 매로 훈육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소 스윗한 강형 선생님이 나와서 마치 사람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다정하고 감성적인 교육법들도 많이 나와서

세상이 바뀐 게 새삼 실감이 난다.

랜선 집사인 나도 참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냐는 질문, 그리고 왜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냐는 질문을 받으면

한 생명을 오롯이 책임지고 함꼐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두 번 세번 생각하게 된다.

"좋아하는 것과 책임지는 것의 차이".

더 많은 사람들과 동물과 생명체들이 행복하길 바라며, 반려동물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한번더 생각할 수 있는 구절.

그리고 사진 속 귀여운 쥬드. 야옹야옹.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말에 딴지를 걸자는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에 영화를 사랑하는 최선의 방법은,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결코 영화를 만들려 하지 않고 관객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영화를 하면서 영화를 싫어하게 되었다. 아니지, 영화가 나를 싫어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 20대에 영화를 만들지 못한 건, 영화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사랑해서 거리 조절이 안 된 거였다. 극장만 가도, 현장에 서 있기만 해도 몸이 바르르 떨렸다. 너무 좋아서, 그래서 더 괴로웠다. 하지만 30대가 되니 모든 것에 조금씩 시큰둥해지고, 영화도 예전만큼 사랑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편해졌다. 세상의 수많은 일처럼 영화를 만드는 일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노력은 필수다. 나의 재능 없음에 대해 전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그냥 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

 

 

이번에도 격하게 공감하는 구절.

그리 많은 삶을 산 건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낀 건 이제 어느 정도의 거리감, 그리고 내려놓음에 대해 배워간다는 거다.

무언가를 깊이있게 좋아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히려 더 안될 때가 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사랑해서 못하는 거다.

그럴 땐 욕심을 버리고 심호흡을 하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고민과 걱정을 잠시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

그게 쉽지 않을 땐 결국 지쳐서 나가 떨어지고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그래도 긍정적인 사람답게 밝은 구석을 보자면, 인생에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두근거리는 일, 하고 싶은 것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하하. 이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또 위안과 공감과 힘을 얻는다.

영화를 너무 사랑해서 이제서야 영화 일을 다시 시작하는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아직 김태연 작가님의 영상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우리만 아는 농담>에서 전해져오는 진심이 그래도 묻어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대화 소리에 깬 사촌이 엄마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모 이렇게 태연이랑 24시간 붙어 있는 거 오랜만이죠?" 엄마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있다가 갑자기 눈가를 쓱쓱 닦아냈다. 사촌이 헛기침을 해서 옆을 보니 그도 울고 있었다. "...왜 울어?" "몰라. 그냥 눈물이나." 덕분에 웃음이 터졌다. 사촌과 엄마는 한참 동안 조용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들 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모든 여행에는 여행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겨진 목적지가 있다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앤텔로프 협곡을 기점으로 이번 여행의 숨겨진 목적지는 장소가 아닌 사람, 곧 함께 여행하는 가족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조금씩 용기를 내주었던 것 같다. 우리는 점차 더 길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끔은 미웠고, 피곤했고, 자주 막막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유명 관광지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시간이 전처럼 지루하지는 않게 되었다.

의외로 엄마와의 대화가 제일 새로웠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한 가지 생각이 더 분명해졌다. 나는 엄마를 몰랐다. 물론 엄마도 나를 몰랐다. 이제는 엄마를 안심시키기보다, 진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곳은 목적지가 아니었을지도 몰라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데 가면 재밌고 힘든 일이 참 많다는 거, 그리고 돌아오면 함께 나눌 추억이 있다는 게 소중하다.

물론 여행지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들과 날씨 등등 힘든 순간들도 많지만 결국 다녀오면 행복함이 두고두고 쌓인다.

괜히 이 구절을 읽다가 마음이 뭉클뭉클해졌다.

보라보라섬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는 가족이 얼마나 보고싶을까.

요즘 시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슝~ 날아가서 만날 수 있고 필요하면 화상 채팅이나 보이스톡으로 통화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만날 수 있는데 안보는거랑 보고싶어도 못보는 건 천지차이다.

가족들간의 끈끈한 마음으로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는 그 부분에서 나도모르게 같이 웃고 같이 울게 된다.

여행지에 가면 느끼는 게 그거다.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 "영원할 수 있을까." "언제 또 다시 오게될까".

물론 영원한 건 없고 흐르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순간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여행을 가서 잠자기 전 하루를 마감하며 누워있는 시간 이런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르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계속 가고 시간과 추억은 같이 흐른다.

 

 

 

 

내일의 불확실한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어제오늘과 똑같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하루가 계속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 지루함이 축복이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뭐 그렇다고 별 수 있나. 무너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지루함을 만들 수밖에 없다. 오늘이 언젠가 우리만 아는 농담이 될 날을 기다리며,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에필로그,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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