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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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운동을 한다. 가늘고 길게, 미래의 내가 쓸 체력을 비축하려고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마음으로. 남 보기 예쁜 몸이 아니라, 적절한 나의 동반을 만드는 마음으로. 나약한 나를 극복하여 '더 강한' 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약점이 있거나 아픈 몸이라도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좌충우돌을 엮었다.

프롤로그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이것은 본격 운동 일기, 운동 에세이다.

아기자기한 일러스트에 적당한 분량의 챕터들, 그리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훌륭한 그립감의 책은 들고다니면서 읽기 딱 좋았다.

이진송 작가님의 책에는 운동을 결코 하지 않은 사람이나 작심삼일로 끝나버린 사람이 격하게 동감할 얘기들도 많고,

누구보다 재밌고 치열하게 운동해본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감도 있고,

운동이라는 매력 요소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페미니스트 코드도 있어서 진짜 재밌게 읽었다.

책은 가벼우나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제 슬슬 사회초년생을 벗어나다보니 주변에서 하나둘씩 운동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퇴근 후 PT를 끊거나 출근 전 새벽수영을 하는 사람들부터 요가 자격증을 따서 프리랜서 강사를 하는 친구들까지.

우스개소리로 나이가 들면 살기위해 운동한다고 하는데 진짜 일이든 공부든 생활이든 취미든 체력이 중요하다.

체력과 건강이 받쳐줘야 더 재밌고 더 신나고 더 알차게 살 수 있다.

문제는 그걸 알고 있으나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운동을 '꾸준히'하기가 말이다.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지만 운동을 강하게 해야하는 필요성이 있으나 현실에서 쉽지 않은 우리들의 이야기다.

나만 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음을 참지 못해서 괜히 핸드폰을 보고 심각한 생각을 하고 그랬다.

근데 어쩌겠나. 재밌는걸.

물론 화가나는 부분들도 많았다. 이건 겪어봐야 아는 일들.

기분 더럽고 무례한 시선부터 식단조절과 체중 감량을 여성의 필수 전유물인양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들까지.

그래도 어쩌겠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운동하러 가는 든든한 메이트를 얻은 기분이다.

 

 

 

생각해보니 몸의 변화는 내가 가장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복근과 등근육이 발달하면서 구부정하던 자세가 많이 좋아졌고, 통증이 사라졌다. 예전보다 근육이 더 단단해졌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훨씬 수월했다. 변수가 있는 검사 기기보다 나의 24시간을 운영하는 동력에 집중하자 성과에 대한 집착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황의 말처럼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무언가를 조금씩 적립하는 중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문무겸비 그녀

때리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깬 것도 성과라고 했다. 사람을 때리자는 말이 아니라 유독 여자에게만 적용되는 엄격한 기준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때 드세다는 말 좀 들었던 여자아이치고 '조폭 마누라' 아니었던 자 푸처핸접? 요즘에는 이 힘센 여자에 대한 조롱이 '캡틴 마블'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좀 착잡해졌다. 짓궂은 남자아이에게서 친구들과 자신을 지키느라 바쁜 여자아이를 꽉 죄어오던 금기의 압력. 남자아이는 맞고 오는 것보다 때리고 오는 게 낫다면서, 여자아이가 싸우면 세상이 뒤집어진 양 호들갑을 떨던 어른들. 남자아이의 주먹다짐은 뜨거운 우정을 다지는 이벤트 중 하나로 연출하면서 여자아이의 싸움은 '머리채' 정도로나 표현하는 미디어.

문무겸비 그녀

 

 

여자의 물리적 힘 행사를 괴상하고 기이한 것, 특별한 폭력성의 표출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관습 안에서 복싱과 주짓수는 황에게 자신의 힘을 긍정하고 정확하게 행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도. 황은 운도 따랐다. 좋은 관장님과 선생님을 만나, '운동하는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는 나'에 구속되지 않고 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재미가 아니라면 아무리 당위가 충분해도 꾸준히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은 몸과 마음이 모두 따라야만 하는 행위다.

문무겸비 그녀

 

 

여자가 운동을 하면 맨스플레인을 피하기 어렵다. 전문 선수의 운동 영상에도 여성이면 자세를 트집 잡는 댓글이 달리니 일반인에게는 우죽할까. 스쿼시는 맞붙어 승패를 겨룰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에, 계의 가냘픈 몸매를 보고 함부로 말을 얹는 놈들은 식빵 위 땅콩버터처럼 발렸다. 운동 능력에서 여자의 열세를 당연시하는 세상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승리를 쟁취하고, 자신의 우위를 확신하는 느낌은 아주 특별하고 소중하다. 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의 얇은 귀가 정신없이 팔랑거렸다. 필라테스로는 맨스플레인하는 남자를 때려눕힐 수 없는데... 나도... 지금부터라도?!

멋의 폭발, 스쿼시 8년사

 

 

 

내가 생각한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입에서 맴돌고 있을 때

어떤 책에서 정확하게 그 표현과 감정을 끄집어내주는 순간을 만나면 정말 통쾌하다.

바로 지금 같은 아하 모먼트.

P&G위스퍼, #여자답게 위스퍼 (#LikeAGirl Whisper Always 캠페인 영상

P&G위스퍼에서 칸 광고제를 수상한 광고 캠페인이 있다.

여자아이들에게 "여자답게 뛰어볼래" 라고 요구하는 장면을 화면에 담는다.

아이들은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마치 영화 속 "나 잡아봐라~" 포즈로 살랑살랑 뛴다.

어떤 아이는 뛰는 척 하다가 연약하게 넘어진다.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여자다운" 모습이다.

이번에는 "남자답게 뛰어봐" 라고 요구하자 아이들은 강한 힘을 느끼고 전속력으로 카메라 밖을 향해 돌진한다.

타이슨 같은 권투 자세를 취하며 힘센 포즈도 보여준다.

우리는 왜 여자다움, 남자다움을 나눠서 제약하는걸까.

역시 P&G라는 찬탄과 함께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다.

얼마 전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논픽션 하이퍼리얼리즘 책도 감명 깊게 읽어서 이건 무조건 봐야해 라는 영화가 되었다.

아마 지금 이슈가 많은 것 같지만 볼 사람들은 다 봤을 것이다. 그런 건 상관도 안하고 말이다.

극 중 김지영의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영아, 너 하고싶은 거 다해. 막 나대고 살아, 막!"

이 한마디를 듣는 순간 그동안 내가 느꼈던, 그리고 앞으로도 느낄 부당한 상황과 감정들을 그나마 위로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내 딸에게,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해주고싶다.

나대고 살라고. 자신을 제약하지 말라고. 왜 그렇게 자기 검증과 불신을 하냐고. 정작 해야할 사람들은 하지도 않는데.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으면서도 <82년생 김지영>을 봤을 때처럼 위로를 받을 줄이야.

이 귀여운 책 표지에서는 절대 몰랐다. 이건 읽어보고 겪어봐야 안다.

그리고 내 몸과 내 정신, 영혼을 위한 운동이라는 점에서 이 운동에세이는 특별했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과 TED를 정말 좋아한다.

그 책에서도 체중이나 운동과 관련하여 여성에게만 부여되는 한정된 제약과 시선들을 말해주는데 그 책과 더불에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로 운동과 몸과 재미의 밸런스를 맞춰야겠다.

 

 

 

 

저만치, 나보다 일찍 운동을 시작했거나 오래 한 사람들이 보인다. 이 속도와 방향대로 꾸준히 나아가면 석 달 후, 1년 후,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제 막 출발한 나는 내세울만한 성취와 성과가 없다. 대신 누군가 지금 당장 운동을 시작하면 사이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봐서 안다는 말 대신 다가올 미래를 함께 궁금해하며 설레고 싶다. 멋진 몸으로 운동의 효과를 증명하는 대신 주어진 세트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철푸덕 주저앉는 허망함에 공감하며 킬킬대고 싶다. 번번히 100일을 못 채우고 동굴을 뛰쳐나온 호랑이가 처음으로 인생 운동을 찾아 재미를 느낀 썰을 풀면서, 운동을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끌고 와서 죄책감을 주입하려는 시도를 바로 뻥뻥 차면서, 필라테스가 끝난 직후의 '좀비 워킹'을 뽐내면서, 역시 못 하겠다고 팽개치고 도망갔던 사람이 돌아오면 팔 벌려 반기면서.

에필로그

 

 

이젠 뭐 빼도 박도 못 한다. 큰일 났다. 운동 에세이를 냈으니 나는 앞으로 이 책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또 운태기가 와서 드러눕더라도, 누가 귀에 대고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라고 속삭이면 벌떡 일어나 맨손체조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틈만 보이면 농땡이를 피우고 싶어 하는 이 운동 유목민을 감시해주세요.

에필로그

 

 

이건 뭐, 책이 끝까지 유쾌하다.

"운동 에세이"라 하면 트레이닝 기초부터 식단 방법, 그리고 책의 표지와 마지막엔 저자의 멋진 근육이 빰! 하고 나오는 실사 이미지가 있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경기도 오산.

이건 진짜 실 생활 200% 공감 에세이다.

공감에서 시작해서 공감으로 끝나는 운동 에세이.

다만 이 글을 쓰기 위해선 꽤 오랫동안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포함한 기간 말이다)

운동에 애착이 있고 (애증도 포함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썼다는 느낌을 팍팍 받았다.

그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그 뒤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는 운동을 하고 나서 투비컨티뉴!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책의 이진송 작가님을 포함해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건강이 깃들기를!

 

 

*이 글은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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