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음 / 수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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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물고기>는 악동뮤지션의 찬혁이 쓴 첫번째 소설으로, 이번 앨범 <항해>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서 더 기대가 됐다.

처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자유분방한 두 남매가 오늘도 라면이냐고 외치는 그 자작곡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간단한 멜로디에 아름다운 음색. 그리고 왠지 모르게 공감가는 가사들까지.

그 뒤로 악뮤 팬이 되어 꼭 챙겨듣게 되었다.

오랜만에 완전체가 되어 돌아온 악동뮤지션.

이 책 <물 만난 물고기>는 주인공이 살랑살랑 들려주는 아름답고 심오한 연작 이야기이다.

어떤 생각과 어떤 감성을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지, 아티스트의 철학을 알 수 있었던 책.

마냥 장난끼 많고 음악 잘 만드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런 섬세하고 섬세하고 또 섬세한 감성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동화같고 소설같고 일기같고 노래같은 책.

 

 

 

항해

-선홍빛 구름으로 물든 가을 하늘의 절경.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관객이 저 구름들이다. 하루의 끝에서 과연 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세상에 빛을 내리쬐는 준엄하고 고된 일과를 마친 후 누구보다 지친 기색을 하고 있을까, 그것의 퇴근길 뒤로는 거대한 그림자만이 고독의 안쓰러움을 알아주듯 한 발치 멀리서 새까만 이불을 들고 따라갔다.

-"나는 음악이 없으면 바다로 나갈 거야."

그녀는 의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이유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당장이라도 떠날 것 같은 그녀의 표정에 심술이 나서 말했다.

"왜 하필 바다야?"

"바다 소리가 가장 음악 같거든."

입을 꾹 다물고 들을 준비가 된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음악이 없으면 서랍 같은 걸 엄청 많이 사야 될 거야. 원래를 음악 속에 추억을 넣고 다니니까.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추억도 새로 산 서랍 속에 넣고는 겉에 '작은 별'이라고 쓴 테이프를 붙여놓아야 할걸. 아마 번거롭겠지. 근데 그럴 필요까진 없어. 우리에겐 바다가 있으니까. 바다는 아주 큰 서랍이야. 우린 먼 훗날 바다 앞 모래사장에 걸터앉아서 오늘을 떠올릴 수도 있어."

... "나는 음악을 사랑해. 하지만 이제는 이 바다 소리만큼 음악 같은 것도 없는걸."

... "전에 이런 장소를 혼자 지나쳤을 때는 단지 어둡고 조용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어. 지금 이 바람 소리를 들어봐. 난 너를 만나고 모든 게 음악이야."

항해

-"그건 바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그들은 예술가 사이에서도 진정한 예술가지. 자신이 표현한 것이 곧 자신이 되는 사람이거든. 예술가인 척하는 사람들은 절대 그런 삶을 살지 못해."

...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 그건 손이 떨리도록 멋진 말이었다. 나는 그날 합주를 거기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그 순간에 나는 다짐했다. 수많은 거짓과 모방이 판치는 그곳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이에서 '진짜'가 될 수 있다면, 그때 진정한 예술가로서 음악을 할 것이라고.

맞다, 바다는 음악 같다. 음악이 바다같고.

고요한 바다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리고 기억하지 못했던 추억도 떠오르고 이제 기억에 남게될 소중한 시간들도 생긴다.

어쩌면 제목 <물 만난 물고기>는 주인공 남녀인 '물고기들'일수도.

어떤 음악가가 진짜인지 어떤 노래가 좋은 노래인지 고민하는 부분.

책에도 고전이 있다면, 음악에도 고전이 있다.

클래식, 오페라, 판소리 같은 음악도 물론 좋지만 나는 옛날 흑백 영상이 나오는 시절의 음악도 참 좋아한다.

그리고 그 때 음악가는 진짜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수가 처음이라 한참 이슈가 됐었던 노래하는 음유시인 밥 딜런의 음악과 자서전을 정말 좋아한다.

한국에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책이 출간되었는데 밥 딜런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그리고 얼마나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책의 표지만 봐도 머릿 속에 울려퍼지는 밥 딜런의 음악과 기타 선율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이런 게 음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진정한 예술은 모르지만 진정한 예술가가 들려주는 음악의 한 단편은 알 것 같다.

 

 

 

 

 

물 만난 물고기

-"너와 즐겁고 행복했어. 하지만 널 만나고 내 꿈이 아주 조금 뒤로 미뤄졌을 뿐이야. 여전히 이 세상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 나는 내가 동경했던 바다를 만나는 거야."

... 뭐라도 해야 했다. 그녀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선 그녀의 표정은 겉으론 다 이룬 듯이 평온해보였지만 만지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눈물이 담겨 있는 것도 같았다.

"다만 내 이름을 기억해줘."

..."난 여기서 작품이 될 거야."

그녀가 자유롭게 두 팔을 벌렸다.

-한바탕 휩슬고 간 폭풍의 잔해 속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잔잔한 파도

비치는 내 얼굴, 울렁이는 내 얼구

너는 바다가 되고 난 배가 되었네

-너는 꼭 살아서

지푸라기라도 잡아서

내이름을 기억해줘

음악을 잘했던

외로움을 좋아했던

바다의 한마디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예언하듯이 살길

항해

-갈대밭에 그림을 그리던 우리의 뜀박질. 너를 껴안고 넘어졌을 때 뿜어져 나오던 입김. 너를 업고 질주하던 횡단보도. 흑백 세상에서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했던 너의 눈동자. 세상 모든 것을 빠뜨려 담을 수 있을 만큼 깊은 너의 눈동자. 나보다 바다를 사랑했던 너. 그렇게 두 팔을 벌리고 바다로 돌아가던 마지막 순간.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색깔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기운이 뭐였는지 알아채자마자 감정이 벅차올랐다. 여러 색으로 펼쳐진 이들에게 이름을 붙인다면 난 마땅한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정원'.

문 앞에서 작은 종소리가 울렸다.

띠링.

한동안 계속 듣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 책 <물 만난 물고기>를 읽고 나면 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더이상 전에 듣던 노래가 아니다.

귀에 들려오는 수현의 목소리는 선과 해야, 그리고 바다와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해야가 선에게 바다와 만남, 사랑과 이별에 새로운 의미를 준 것처럼 이 책은 노래에 새로운 의미를 주었다.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예언하듯이 살길

그래, 그렇게 살길.

*이 글은 다산북스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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