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심는 꽃
황선미 지음, 이보름 그림 / 시공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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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을 기억하다"

-그다지 소통할 일이 없었던 대학 동기, 마지막 연락도 꽤 오래전이었는데 무슨 용건일까.

그가 물었다.

-맨 처음 데뷔할 때 그 원고, 책으로 나왔나?

나는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프로필마다 있잖아. <마음에 심는 꽃>.

나도 모르게 웃었던 것 같다.

-작가로 산 시간이 스물하고도 네 해째다. 그동안 아무도 그 원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프로필 맨 앞에 적으면서도 나조차 굳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데뷔작이 분명하니 언급은 하지만 그것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다. 수상작도 아니고 우수상. 내 시작은 그랬다. 주목받지 못하는 이등. 일등이 아니니 옆으로 비켜났고 책이 되기에도 어중간한 분량이라 그 작품은 제목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이라니.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었다.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워 가며 고친 원고가 대학 노트에 그대로 있었다. 시간을 먹은 종이가 누렇게 변했어도 흑연의 흔적은 선명해서 다만 뭔가를 쓴다는 것에 하루하루를 붙잡아 세우고 견뎌 냈던 서른 초반의 나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했다.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제목으르 바꾸려고 한 적이 없다. 초고를 완성하고 공모전에 보내고, 프로필에 데뷔작 제목으로 적을 때도 시골집을 벗어난 적이 없는 여자애 같은 젬족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래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것 말고는 달리 어울리는 제목이 없는 까닭이었다.

-이 작품은 스물하고도 네 해 전, 나의 시작 어떤 지점이다. 그런데 꽤 오래 걸어 온 나의 지금에 이것이 어떤 의미가 되려고 한다. 등을 구부려 손끝으로 발을 만지는 기분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우리에게 친근한 황선미 작가님의 신간 <마음에 심는 꽃>이 나왔다.

신간인데 가장 오래된 책이다.

작가님의 초고작이자 프로필 데뷔작인 <마음에 심는 꽃>이 2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24년.

24년을 작가로 산 시간이라는 점에서 나에게 그 기간이 꽤 무겁게 느껴지지만,

5년, 10년 훅훅 지나가는 시간을 보는 관점에서는 참 빠르게 달려오셨겠구나, 하는 여러가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건 그동안 수 많은 일들과 경험이 쌓여서 지금의 황선미 작가님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다.

책의 문을 여는 '작가의 말'에서 다정하게 말해주었지만 다소 촌스러워도 따뜻한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힐링 그림책이다.

그 시대 옛날 감성의 느낌이 많이 묻어난다.

그런데 아마 지금이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쓰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황선미 작가님의 좋은 점은, 나이를 불문하고 누가 읽어도 좋다는 것.

이제 막 글을 배우는 어린아이가 읽어도 좋고 청소년이 읽어도 좋고 어른이어도 좋다.

시골 학교의 수현, 서울에서 올라온 민우네 가족이 그려내는 이야기.

<마음에 심는 꽃>을 읽으며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감정의 한 부분을 탁! 하고 꺼내주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작가님이 시작을 기억하며 초심을 깨내볼 때, 우리도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현이는 꽃밭이 걱정되었습니다. 아직 꽃이 많이 없어서 풀인 줄 알고 꽃밭을 함부로 밟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줄 알았어!'

수현이는 울컥 울음이 솟았습니다. 어른의 발자국에 제법 자란 과꽃 줄기가 밟혀 있었습니다. 부러진 것도 있고 기우뚱 넘어진 것도 있습니다. 수현이는 쓰러진 꽃들을 세우고 돌멩이로 받쳐 주었습니다.

<마음에 심는 꽃> 책의 주요 배경은 바로 여기 인동집이다.

이름도 인동꽃이 피어서 인동집.

삼촌이 일하기 위해 집을 떠나기 전 수현에게 미션을 준다. 바로 여기 인동집에 꽃밭을 잘 가꾸라고!

이젠 모두 떠나 아무도 없지만 수현은 삼촌의 미션도 있고 꽃을 가꾸는 재미도 있어서 소중히 다룬다.

그런데 어느날!

서울에서 승용차 한 대가 오는데..!

바로 서울에서 온 민우네 가족이다.

이 부분은 수현이 잘 가꿔놓은 꽃을 이 집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니 헤쳐놓아버려 주저 앉아 서러움에 울컥 울음을 쏟는 장면이다.

역시 첫 만남에도 이야기거리가 가득하다.

그리고 수현의 꽃밭을 사랑하는 마음, 그 아이에게 꽃밭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었다.

그림 속 오버랩 되며 울고 있는 수현에게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싶기도 하다.

괜찮아 수현아. 살다보면 더 힘든 일도 많단다. 가 아니라 ㅋㅋ

얼마나 속상할까, 아마 저 사람들이 처음와서 잘 몰라서 그런걸까야~ 하는 위로 말이다.

수현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부분.

-"어디로 갔지?"

수현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꽃밭으로 달려갔습니다. 돌멩이로 받쳐 두었던 과꽃이 없습니다. 뽑아 버린 모양이었습니다. 게다가 노란 붓꽃이 피었어야 하는데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방문이 덜컹 열려서 수현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가 방 안에 앉아 있습니다. 수현이는 당황했지만 곧 괜찮아졌습니다.

"이 꽃들은 내가 키웠으니까 내 것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했어? 왜 네 맘대로 뽑아 버린 거냐구!"

수현이는 화가 나서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수현이는 방 안에 꽂혀 있는 노란 붓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자 더 속이 상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수현에게 소중한 꽃을 없애버리다니!

결국 내꺼니까 함부로 하지 말라고 담아둔 결정타를 날린다.

근데 구석을 보니까 민우가 있었고 꽃병에는 안보였던 노란 붓꽃을 발견한다.

흠, 이래저래 속상하지만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저마다 꽃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니까 말이다.

 

 

 

-"수현아, 인동집에 다녀와라."

어미니가 빨간 토마토를 소쿠리에 가득 담아주었습니다. 수현이는 낯을 찡그렸습니다. 낮에 좋지 않았던 기분이 되살아났습니다.

"낮에는 고마웠습니다. 엄마가 이것 좀 드시래요 하고 말하면 되는 거야."

수현이는 어머니가 들려 준 소쿠리를 안고 나왔습니다. 좋은 얼굴로 토마토를 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하는 수 업이 수현이는 인동ㅈ딥으로 왔습니다.

와, 이 부분은 너무 공감되서 적어봤다.

요즘은 이웃집 사람과 얘기도 잘 안하고 이 시골집처럼 친근하지 않지만 나름 예전에는 어른들끼리 서로 얘기도 자주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린 나를 이용(?)해 관계의 매개체로 저렇게 선물이나 먹을 것을 나눠주고 나눠받았던 기억이 난다.

직접 주고 받으면 되지 왜 나를 심부름시키는거야, 하는 어린 마음에 귀찮기도 했는데

이제야 <마음에 심는 꽃>을 읽으며 어른들의 마음에 대입해보니까 옆집의 어린 아이가 어른들이 시켜서 선물도 주고 인사하러 오면 진짜 귀여울 것 같고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그래도 그땐 정말 귀찮았지. 하지만 군말 없이 했던 소소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

수현이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민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삼촌이 돌아오는 날, 무슨 선물을 받고 싶냐는 질문에 수현은 "예쁜 꽃이랑, 머리띠 그리도 동화책"을 말한다.

"나라면 그런 것 안 갖는다."는 민우에 말에 수현은 그럼 무엇을 갖고 싶냐고 물어보는 대목.

민우는 "나라면 꽃밭을 가질 거야"라고 대답한다.

아픈 민우에게 꽃밭은 그저 꽃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질 수 없는 시간, 건강, 아름다움, 그리고 수현과 함께 가꿀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의미가 다른 사람에게는 더 큰 의미로 다가오다니.

잠시 잊고 있었던 책의 제목 <마음에 심는 꽃>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민우라면 선물로 달라고 말했을 '꽃밭'을 떠나면서 수현에게 남겨둔 편지에 "이거 너 가져라. 너 꽃밭 좋아하자나."라고 무심한듯 다정하게 말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그래서 과연 그 둘은, 민우네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지내게 될지 이야기 속에 계속 남아있겠지만

오랜만에 잊고 있던 감성들을 꺼내주는 힐링 북을 만난 것 같아서 꽃밭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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