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만 헤어져요 - 이혼 변호사 최변 일기
최유나 지음, 김현원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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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툰 "메리지 레드"로 넘나 유명한 이혼 전문 변호사 최유나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만남과 이별, 결혼과 이별에 관한 에세이다.

1,000건 이상의 이혼 소송을 진행한 9년차 이혼 전문 변호사가 쓰는에세이라니.

대한민국 결혼과 이혼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동안 만난 사람들과 소송들을 통해 어떤 경험들을 겪었을까.

참고로 이름과 그림에서 느껴지지만 이 분은 여자 변호사님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이혼의 유책사유 중 상당부분 차지하는 게 불륜이나 폭행, 가정소홀일텐데 내가 빡쳐하는 포인트들도 잘 짚어주어서 더 공감이 갔다.

어찌됐든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에 있어서 누굴 미워하고 싫어하고 괴롭히고 폭력을 가하는 일은 절대 절대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분명 발생하는 일들인 것을.

이혼 변호사라고 하면 왠지 드라마처럼 잘잘못을 따져가며 받을 건 다 받고, 챙길 건 다 챙기고 빠르게 일을 처리하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만화 속 "최변"은 꽤나 인간적이다.

내가 그동안 변호사에 대해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내 상상 속 변호사의 사무적인 태도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의 이야기, 결혼이라는 시작의 설렘, 그리고 이별의 아픔까지 고스란히 함께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홀로서기를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학창시절 때부터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들어주고 위로해주곤 했다는데 이혼 변호사라는 생소한 직업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 책에는 여러 명의 이혼 아픔이 담겨 있지만 그 속에 수 많은 희망과 응원도 함께 있다.

여기 나온, 그리고 앞으로 나올 사람들의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 행복의 시작이길 바란다.

 

 

 

나의 첫 증인 신문

-변호사가 되고 첫 증인 신문이 종종 기억난다.

피고(내연녀)가 외도 사실을 계속 부인하자, 남편을 증인 신청하게 되었다.

TV, 모의 법정에서나 봤던 증인 신문을 직접 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내 완곡 어법을 듣고 직접적으로 질문을 수정해주는 증인에게 오히려 고마웠다.

-나는 빙빙 돌렸고 증인은 솔직했고 피고는 분노했다.

"변호사님. 법정에서는 대리인과 증인의 자격으로 계신 거니, 증인이 어르신이어도 과하게 예의를 차리며 신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판사님의 충고는 내 역할에 대해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증인이 이토록 솔직하고 당당하 것은 죄의식이 전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판사님의 충고를 들은 나는 더 날카로운 증인 신문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법정은 합법적 싸움의 장소

-"변호사님과 저분은 여기 대리인과 증인의 자격으로 법정에 서 있는 겁니다. 밖에서 어른들을 대할 때만큼 예의를 갖추실 필요는 없습니다. '증인께서는' 등의 극존칭은 법정에서 어색한 표현이니 시정하시기 바랍니다."

판사님의 지적을 듣고 나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그제야 내 직업적 본분에 대해 자각할 수 있었다. 변호사는 다툼을 다루는 직업이다. 누군가의 편에 서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법정은 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싸움을 하는 곳이다. 내가 법정에서 나의 성향대로 행동한다는 것은 어쩌면 본분을 망각하는 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판사님의 감사한 충고대로 더 차갑게 증인의 정곡을 찌르는 신문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건 어쩌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번 이상 겪게 되는 페르소나 문제.

일과 나를 분리해야 한다.

일과 사람을 분리해야 한다.

내 실제 성격이나 말투, 태도를 내려놓고 일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우리 이만 헤어져요>의 똑부러진 최변호사님도 누구나 처음 시절이 있기 마련이구나!

자신도 모르게 증인을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 어르신이라는 일반적인 대상으로 지각하다보니 공손하고 예의바른 말투가 나왔나보다.

하지만 법정은 합법적인 싸움을 하는 곳!

이 순간 만큼은 지나가는 나이 많은 어르신이 아니라 정확하고 예리한 질문과 답변을 받아내는게 본분이다.

판사님의 뼈 때리는 지적을 받고 자신만의 신문 방법을 개발하고 노력하는 최변호사님의 모습도 정말 멋졌다.

 

 

 

 

너무 뒤늦은 고백

-변호사님... 법이 저희를 갈라놓네요... 이혼 안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60대 후반의 남성분이 1심 판결문을 가지고 오셨다.

'가정 소홀과 폭행

주문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

-남편은 화가 나면 가구들을 다 부수며 저를 위협했어요. 10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후 피고는 원고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이들 다 결혼시켰고 이제 저 사람이랑 더 살 이유가 없어요.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조정이 끝나자, 의뢰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원고와 피고의 이혼은 2심에서도 받아들여졌다.

미안하다고 해줘서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이제 많이 받아들이셨나 봐요. 표정이 더 편안해 보이세요.

용서를 구했으니 이제 됐습니다. 제가 못나서 그런 건데 더 붙잡을 순 없죠...

-'먹고 살기 바빠서' '힘들어서' 란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미안하다는 말이 너무 늦은 한 남자의 이야기

기나긴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난 한 여자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부른 여보, 당신

-1심에서 피고의 유책 사유가 인정되어 이혼이 된 것이어서, 2심에서 이혼 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피고는 오랜만에 만난 원고에게 눈물을 흘리며 제발 심사숙고해달라고 매달렸다.

많이 늦었다는 것을 피고도 알고 있었다. 1시간의 조정 끝에 피고도 이혼을 받아들였다. 모두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피고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불러봐도 될까, 여보. 나랑 사느라 고생 많았어."

1심부터 2심까지 오직 이혼만을 외치던 원고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어.

이 에피소드를 보면서 참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이혼하고 싶지 않고 계속 함께하고 싶다면서 왜 그동안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을까. 함부로 대했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이게 드라마나 영화 속 한 장면으로 봤다면 꽤 로맨틱하고 가슴 아픈 사랑 노년의 사랑이야기겠지만

냉혹한 현실렌즈를 끼고 있는 나에게 이 아저씨를 차마 응원할 수는 없겠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분명 변할 수 있는데 쉽게 변할 수 없다. 거의 변할 수 없으니까 죽도록 노력해야 사람은 변한다.

이혼을 하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이 아저씨가 정말 변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었을까?

아직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내가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 둘의 해피엔딩이 있기 위해서는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어야한다는 건 장담할 수 있다.

그 오랜 시간 자식 때문에 참고 살았을 아내분도 참 가슴 아팠고,

나이 60 먹고 살아온 날들을 돌아 보며 (어쩌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짧음을 체감하며)

이제서야 잘못을 뉘우치는 남편분도 가슴 아팠다.

정말 사랑한다면, 정말 행복을 빌어준다면 1년 동안 억지로 이혼 조정을 끌기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따라주고 응원해주고 더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라거나 더 좋은 사람이 곁에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남편으로써든 이혼 후 남이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파트너로서든 말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한 사람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누군가 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거다.

역시 만남과 이별은 참 어렵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쓰는 에세이, <우리 이만 헤어져요>.

아직 이 책과 헤어지기 싫은데 웹툰이라 그런지 쓱쓱 읽다보니 어느새 앉은 자리에서다 읽어치워버렸다.

가슴 아픈 부분이 많지만 감동적인 부분, 그리고 최변호사님의 개인적인 웃긴 에피소드들도 가득하다.

껄껄 웃다보니 마지막 페이지를 만났네.

그래도 인스타툰 "메리지 레드"로는 계속 연재되고 있으니 팔로우해서 거기서 업데이트 툰들을 봐야겠다!

이 시대 만남과 이별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주는 책, 그리고 웹툰.

*이 글은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만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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