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밤의 기차를 타본 사람은 안다.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은 아무 생각이 안들 정도로 너무 어둡다. 기차는 방학마다 할머니 댁에 가려고 탔다. 어린 눈에 비친 밤의 창밖은 그야말로 암흑의 세계였다. 그러다가도 안전하고 포근한 기차 품에 있다는 안도감에 금방 잠이 들곤 했다. 

 종종 지금 야간열차를 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처럼 시간이 금인 시대에 굳이 야간열차를 탈 필요도 없고, 대체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그래서 어릴 적 추억으로 그 느낌을 대신하는데, 『야행』의 기묘한 이야기에 묘하게 빠져들었던 건 그래서일까.




 10년 전 구라마 진화제에서 행방불명 된 하세가와. 그녀와 함께 했던 5명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이 같은 축제에서 10년 만에 다시 모였다. 약속시간 전, 하세가와와 비슷한 여자를 보고 따라간 화랑 안에서, 오하시는 ‘야행’이라는 동판화 연작들을 보게 된다. 5년 전 죽은 기시다 미치오의 작품으로, 그의 작품 속엔 얼굴 없는 여자와 함께 밤의 풍경들이 담겨 있다.

 후에 동료들과 만나 숙소에서 짐을 풀고, 한 사람씩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의 야행 이야기는 어째서인지 기시다 미치오의 연작 ‘야행’이 엮여있다.




 오하시 일행은 각자의 기묘한 여행담(경험담)을 꺼낸다. 그들의 묘한 경험 속엔 언제나 동판화 연작 ‘야행’이 있었다. ‘첫 번째 밤 오노미치’를 읽고서는, 이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하는 건지, 술에 취해 헛소리를 하는 건지 헷갈려서 다시 읽었다. 반도 안 읽었고 첫 번째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읽은 것뿐인데 내가 벌써 홀린 것인가. 기름에 물감을 천천히 풀어서 빙글빙글 저어도 섞이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빙글빙글 해진 물감에 내가 홀린 느낌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하나씩 읽어보았다. 동판화 ‘야행’ 속의 여자를 나도 만난 건 아닐까. 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그곳을 본 것은 아닐까. 상상 속에서 또 빙글빙글 돌아간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 상상이 계속 함께 했다. 하지만 책은 계속 읽고 있다. 묘한 책이다.




 책을 읽을 땐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지만, 나랑 전류가 맞는 책이었다. 재미를 떠나서 잘 맞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재미있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기묘한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엔딩도 좋았고, 동판화 연작 ‘야행’과 대비되는 ‘서광’의 의미도 좋았다.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보았을 때 책의 모든 것이 스쳐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내가 있었던가. 나의 밤도 그들의 밤과 함께 하는가. 


오래간만에 혼자만의 세계에 제대로 빠지게 한 책이었다.

서평도 홀린 듯 써서 묘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