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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누쿠이 도쿠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미소 짓는 사람』이나 『우행록』을 보면 사건이 일어났고 해결되었지만, 어떠한 큰 의문이 남았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읽고, 알게 된 사실들이 끝은 아니겠지? 더 있을 것 같은데?' 결국 그 의문은 내 상상으로 결론을 짓고, 찜찜함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에 읽은 같은 작가의 『프리즘』은 역시나 '본격! 찜찜 결말을 직접 만들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100% 사견-_-;) 열린 결말 같은 애매한 결말을 질색하지만 끌리는 것이 본능이듯 『프리즘』 역시 나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읽으면서 질질 끌려다녔다. (읽어보면 아는 느낌)
초등학교 여교사가 살해당한다. 첫 장에선 그의 제자인 초등학생 4명이 추리로 범인을 찾는다. 초등학생이지만 나름 논리적이고, 그들의 평소 모습이나 성격 등을 묘사하면서 독자로서도 그들의 추리가 일리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음 장을 읽으면서 나를 소리치게 만들었다. "이 작가, 또 시작이군!".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얇은 책이라 간단히 읽을 책을 골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작가 후기를 읽을 때까지 나 역시 탐정의 한 사람이 되어 범인을 추적하는 '피곤한 책 읽기'를 하게 만드는 책을 고른 것이다.
각 장에서는 살해된 여교사의 지인들이 나와 각각의 추리를 펼친다. 그들이 알고 있던 여교사의 모습에 맞는 추리인지라 사견이 많지만, 여러 사연과 사건들을 읽는 독자로서는 또 다른 새로운 추리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해준다. 작가는 대 놓고 이것을 노린 것이다. 초딩 제자들이 알던 여교사의 모습과 동료 여교사가 알던 그의 모습이 다르듯, 내가 읽는 여교사의 모습 또한 다르다. 한 사람의 모습은, 하나의 '빛'이라는 입력을 받아 여러 스펙트럼으로 분리되게 하는 프리즘처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날카로운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추리소설 스타일에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본질은 누구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고, 정의한다 해도 결국 보는 사람마다 다른 정의를 내리기 때문에 정확하다 할 수 없다. 평가받는 사람이 어떤 의도로 살아왔든 간에 보는 사람의 가치관과 성격 등에 따라 정반대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연히 회사 면접이나 어떠한 분야의 전문성 등의 평가는, 정해진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다르다) 이것을 살짝 비틀어 살해된 여교사의 범인을 추적하기로 만들 수 있었던 누쿠이 도쿠로에게 혀를 내둘렀다. (좋은 의미.....)
『미소 짓는 사람』에서 한 사람에 대한 평균적인 사회적 시선과, 각 개인들의 평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배웠으면서도 다시 한번 강화되었고, 서로 다른 시선들이 의도치 않게 화살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이란 게 원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기에, 다른 결론이 나오면 거부하고 부정한다. 조심하고 안 그러려고 해도 그렇게 생겨먹었고, 죽을 때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 『프리즘』은 단순히 다양한 추리를 유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명의 사람 역시 프리즘처럼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분리되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빛을 분리하는 도구에서 여러 가지를 비유할 수 있는 물건으로 보이는 건, 이 책을 읽고 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프리즘에 의해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역시나 누쿠이 도쿠로는 무서운 작가다.-_-